사랑, 참 쓸쓸한 일

 

 

용규 씨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5년째다. 아직 50대 나이에 혼자가 된 용규 씨는 얼굴이 좀 어두워졌을 뿐 별로 달라진 것 없이 살아왔다. 20대인 두 딸은 이제 아빠가 새 여자친구를 만나도 된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도 좋은 사람을 만나서 새 출발 하라고 부추겼다. 그러나 용규 씨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한사코 여자를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러던 용규 씨가 친구를 통해 그녀를 수소문한 것은 지난봄부터다. 친구와 같은 업종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근황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막상 연락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놓은 것도 없으면서 그녀 소식이 궁금했다. 친구와 만나 대포 한 잔씩 나눌 때마다 졸라댄 끝에 전화번호를 받았다. 뭐라고 말하지? 그녀도 결혼해서 아이와 남편이 있겠지? 나를 기억하기나 할까? 내가 혼자가 되었다고 하면 그녀의 반응은 어떨까? 장맛비가 몹시 쏟아지는 날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참 조심스럽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우리 한번 만나도 괜찮을까요?’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용규 씨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30여 년 전 미팅 자리에서였다. 친구가 3대 3 미팅을 주선하는 자리였는데 용규 씨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파트너는 여성들 마음대로 정하기로 했고 남자들은 따르기로 했다. 거기 여자들 중 가장 예쁘고 몸매 좋고 지적이기까지 한 사람이 용규씨를 선택했다. 의외였다. 그녀는 일단 3개월만 만나자고 했다. 두 번째 만나 차 마시고 헤어진 날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 용규 씨는 자기 때문에 사고가 난 것 같아 마음이 아팠지만 그녀를 찾아갈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 버렸다. 이제는 그녀를 만날 권리도 없어져 버렸다. 용규 씨는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 이 세상도 끝나고 / 날 위해 빛나던 모든것도 / 그 빛을 잃어버려

그렇게 그녀는 용규 씨의 마음에서 지워지는 듯했다. 그런데 용규 씨가 괜찮은 기업의 공채시험에 합격하자 그녀에게서 축전이 왔다. 어떻게 알고 축전을 보냈는지는 모르지만 용규 씨는 그녀의 축하가 정말 반갑고 고마웠다. 그녀는 용규 씨보다 더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첫 월급을 받는 날 그녀를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집에까지 바래다 주었다. 그 뒤로도 둘은 웬일인지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용규 씨는 자기에게 그녀가 너무 과분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가끔씩, 그렇지만 오랜 기간 동안 그녀를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들 키우면서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해왔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과속하는 심장 때문에 심호흡을 하며 문자를 열었다. ‘당신의 연락을 10년 동안 기다렸어요. 당신을 기다리기로 나 혼자 정한 시효가 끝나서 저도 엄마와 아내로서 살고 있답니다. 저도 당신이 궁금하지만 얼굴 보기에는 세월이 너무 길었군요. 행복하세요.’ 용규 씨는 크게 얻어맞은 듯했다. 그녀에게 또 하나의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친 놈! 용규 씨가 볼륨을 올렸다. 오, 내 생의 쓸쓸한 사랑이여. 왈칵 눈물이 났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양희은 작사, 이범우 작곡, 양희은 노래)

장진규(조경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