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강과 잘 어울리는 봉동 구만리 코스모스 길을 걷다

코스모스길을 가꾼 봉동 구만리 마을

가을이 찾아오면 보고 싶은 것 생각나는 일들이 많다. 코스모스꽃이 활짝 핀 길을 걷고 싶은 것도 그중 하나이다. 코스모스꽃은 귀한 꽃이 아니기 때문에 완주 어느 곳에서나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잠시 손을 놓고 집 밖으로 나와 주변을 걸어보면 분명 코스모스꽃과 마주칠 확률이 높다. 조금 더 오랫동안 코스모스꽃과 눈 맞춤하고 싶다면 봉동읍 구만리 코스모스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봉동읍 구만리 원구만마을은 만경강변에 기대어 있는 마을이다. 마을 옆으로 만경강 제방이 지나고 있는데, 마을에서는 이 길을 활용해서 코스모스 꽃길을 가꾸었다. 그리고 코스모스꽃이 활짝 피면 강변에서 작은 마을축제도 열었다. 올해는 아쉽게도 코로나19 상황으로 축제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코스모스 꽃길은 봉동교에서 시작해서 원구만마을까지 약 2km 구간에 펼쳐져 있다. 주변 만경강 풍경과 잘 어울려 산책로로 손색이 없다. 고산 쪽에서 흘러온 만경강 물줄기는 봉동읍 상장기공원 앞 멍에방천을 타고 내려와 원구만마을 옆으로 지나간다. 그래서 상시 만경강 맑은 물을 보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특히 만경강 봉동읍 구간에는 강물을 농업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중간중간 보를 설치해서 물이 풍부하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강물에 비친 반영이 멋진 그림을 그려놓아 보는 이의 눈이 즐겁다.

코스모스꽃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다. 꽃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해가 된다. 우리는 코스모스꽃을 볼 때 일반적으로 전체적인 모습만 보게 되는데, 가까이 다가가 꽃 중앙을 보면 그곳에 작은 꽃들이 별 모양을 하고서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스모스꽃 한 송이가 하나의 작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환상적인 꽃길 2킬로미터

제방 도로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지만 통행이 많지 않은 편이다. 자전거 길과 함께 사용하는 구간이기도 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사람들을 가끔씩 볼 수 있다. 만경강 자전거 길이 강 양쪽에 만들어지면서 만경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나 보다. 제방길을 따라 달리는 이 구간은 전망이 좋아 평소에도 아름다운 자전거 길로 손꼽히지만, 코스모스꽃이 활짝 핀 시기에는 환상적인 길이 된다. 한 번쯤 이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려본 사람이라면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바람이 잔잔한 날에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온몸으로 바람을 맞게 된다. 그 시원함과 코스모스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간지러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는 가능하면 천천히 페달을 밟는 것이 좋겠다. 2km 정도의 거리는 걷기에는 충분한 거리이지만, 자전거로 달리기에는 짧은 거리이다. 한순간에 슬쩍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쉽다. 천천히 가능하면 아주 천천히 지나면서 분위기를 만끽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회안대군의 이야기가 서린 원구만마을 버드나무

코스모스 꽃길을 따라가다 보면 강 안쪽에도 코스모스꽃이 넘실대는 풍경이 보인다. 원구만마을과 가까운 곳에 있는 만경강 둔치에도 코스모스꽃을 가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만경강 제방길에서 둔치로 내려가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 코스모스꽃이 가득 피어 있는 풍경이 연상되는 장면이다. 그래서 그런지 더 풍성하게 느껴진다. 코스모스꽃으로 가득한 둔치에는 여러 갈래의 산책로가 있다. 미로 정도는 아니어서 부담 없이 산책로를 선택해서 걸어도 되겠다.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오가며 꽃길을 거닐 수 있도록 배려했다. 산책로에는 야자 매트가 깔려 있어 편하게 걸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이곳에는 그늘이 없기 때문에 한낮 더운 시간은 피해야 한다. 그 시간만 피한다면 날씨가 선선해서 걷기 좋은 곳이다. 둔치에는 편의시설들도 있다. 봉동교 아래에 주차장이 있지만, 둔치 코스모스 산책로 옆에도 넓은 주차장 시설이 되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겠다. 주차장 바로 옆은 원구만마을에서 운영하는 연날리기 체험장이다. 코스모스꽃이 지고 날씨가 더 선선해지면 연날리기 체험장에도 사람 발걸음이 잦아지겠다. 쉼터도 몇 군데 있다. 예스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정자도 있고, 현대 감각에 잘 어울리는 쉼터도 보인다. 산책 후에 정자에 올라 멀리서 꽃길을 조망해 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둔치 주차장을 지나 제방길을 따라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마을이 보인다. 마을 주민들이 코스모스 꽃길을 가꾸어 온 원구만마을이다.

 

 

원구만마을은 조선시대 초기 2차 왕자의 난 때 태종 이방원에게 패한 회안대군 이방간이 내려와 귀양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마을에는 지금도 회안대군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마을 바로 옆 선산 묘지에서 바라보이는 물가에 있는 버드나무에는 회안대군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회안대군이 의지하던 지팡이를 땅에 꽂아두었는데 뿌리가 내려 거목으로 자랐고, 그 나무가 쓰러지고 지금의 후계목이 남아 회안대군의 회한(悔恨)을 전해주고 있다. 봉동 구만리 코스모스 길을 걷게 된다면 원구만마을에 잠시 들러 회안대군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좋겠다.

 

아름다운 코스모스 꽃길은 원구만마을 앞에서 끝난다. 하늘이 맑은 날 봉동 구만리 코스모스 꽃길을 거닐고 나서 여러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작은 수고로움이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다는 생각도 했고, 완주군에서 발원해서 완주군을 관통해서 흐르고 있는 만경강의 가치도 생각해 보았다. 가을 정취를 물씬 느끼며 걷는 행복한 산책이었다.

 

김왕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