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사전: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명사]

공동 주택 양식의 하나. 오 층 이상의 건물을 층마다 여러 집으로 일정하게 구획하여 각각의 독립된 가구가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든 주거 형태이다. 북한어-고층살림집

 

나는 방금 13층 아파트를 삼켰다. 13층 아파트의 맛은 맵고 짜다. 좀 더 쉽게 말한다면 뜨겁고 매우므로 얼큰하다. 우리네 입맛에 뜨겁고 맵고 짜야만 하지 않던가. 그러므로 아파트를 씹고 삼킬 때 알싸한 얼큰함에 취해 땀이 봉긋 맺히는 이도 있고 허겁함에 기침부터 뱉는 이도 있다. 이 13층 아파트를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 ‘아, 전원주택 혹은 마당 있는 집을 선호하는 사람이겠군.’이라는 상상은 하지 마시길.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에서도 나는 즐긴다. 이 13층 아파트를.

 

아파트, 이 반듯하고 네모난 정형적인 틀을 가진 것들의 이야기가 뉴스에서 넘쳐난다. 몇 년 사이 누구는 억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는가 하면 떨어진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사지 않고 버틴 사람들은 정부를 원망하며 아예 편을 갈아탔다라는 말도 들린다. 인구는 자꾸 줄어들어 국가의 존폐마저 위협한다는데 아파트들은 죽순처럼 대나무처럼 쑥쑥 들어서지 않던가. 집 맞은편 고층아파트가 또 들어섰다.

 

나는 종종 이 무지막지한 자본의 상징인 아파트를 먹어 치운다. 어찌 보면 내가 먹어 치우는 속도만큼 거대한 아파트들이 전국 곳곳에 들어서는 것일지도 모른다. 먹어 치우는 버릇을 없앤다면 이 아파트 공화국 같은 모습은 사라질까?

 

어릴 적 어머니와 군산에서 익산으로 넘어오는 직행버스에 오른 적이 많다. 군산에서 출발해 대야에 이를 때쯤이면 어머니는 졸음에 빠진 아들을 깨우셨다. 자칫 익산에 도착할 때까지 잠이 들면 짐과 함께 아들을 업어야 했으므로. 졸음에서 겨우 일어나면 나는 어김없이 창턱에 턱을 괴고 지나가는 나무를 바람을 탄 벼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멀리 5층짜리 주공아파트가 보이면 곧 익산이었다. 당시 5층 아파트는 익산을 상징한 랜드마크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보잘것없는 5층짜리 모현아파트였지만.

 

지금의 도시는 빽빽한 고층 건물들투성이다. 그중 아파트가 절대다수. 어제 저녁에도 아파트를 먹어치웠다. 13층 아파트. ‘도대체 당신이 먹어 치운다는 아파트는 뭐지?’라는 궁금증을 가지셨다면, 당신도 분명 이 초고층 아파트를 먹어 치운 적 있다는 사실. 13층의 높이는 40m쯤이다. 나도 아파트에 살지만 여러 채의 아파트를 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먹어 치우는 높이가 대략 40m. 고로 나는 아파트를 자주 먹는다.

 

네모반듯하고 아니 어떤 것들은 둥글기도 한. 사실 아파트가 아닌 라면에 대한 이야기다. 면발이 40m이니 13층 만큼의 높이. 한 해 우리 국민이 대략 75개를 먹는다는데 1인 가구인 나는 더 많이 먹어 치우는 듯한? 여튼 아파트로 난리다. 누구나 화를 내고 누구는 땅을 치고 누구는 땅 꺼질 한숨을 짓고. 인구는 지난달에 비해 3,300명이 줄었다 한다. 지난달에 비해 전국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는 몇 채일까? 궁금한 지금. 나는 어쩌면 오늘 저녁 또 아파트 한 채를 먹어 치울지도 모른다.

 

김성철 시인. 시집으로 『달이 기우는 비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