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질병인가 미용인가

“윤*렬은 누구를 같잖다는 거야? 지가 같잖은 놈이면서!”

“김*희는 사과는 쥐꼬리만큼 하고 지 서방한테 연애편지를 쓰냐.”

 

약국 안에 앉아서 세상민심을 듣는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20대 대통령선거 운동이 이 겨울을 달구고 있다. 후보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고 검증의 칼날로 후보의 말과 행동, 태도, 인생을 헤집고 있다. 3월 9일까지는 뉴스를 점유할 시끄럽고 혼란스런 주장과 비판, 반론이 이어질 게다. 어쨌든 정치가 미워도 우리 삶을 크게 좌우하는 면에서 피할 수 없다.

 

며칠 전 여당 후보가 들고 나온 탈모약 건강보험적용이라는 어젠다가 여론을 술렁이게 한다. 논쟁의 중심에 선 탈모약은 남성호르몬의 과도한 활성을 억제하는 약과 두피 쪽으로 흐르는 혈액의 흐름을 좋게 하여 모근에 영양을 잘 공급하도록 하는 약이다. 전자는 복용하는 약으로, 후자는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이 있다. 어떤 약이나 부작용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 호르몬의 과활성을 막아서 호르몬에 예민한 장기인 전립선이 비대해지는 것을 막고 탈모를 막는 바람직한 효능 외에도 성욕 감퇴라는 바라지 않는 작용이 따라올 수 있다. 혈액순환이 잘되게하는 정작용과 기립성 저혈압이라는 부작용을 감수해야한다. 최근 몇 년 사이 탈모 처방전을 들고 오는 영리한 젊은이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최근엔 유방암 항암치료를 받던 후배가 탈모 때문에 항암을 포기한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아침마다 머리를 감고 한 움큼씩 빠진 머리를 수습하고 미녹시딜을 바르고 있기를 몇 개월째인 탈모인의 한 사람으로, 탈모약을 조제하고 판매하고 설명하고 있는 약사로서 할 말이 생긴 어젠다이다.

 

나의 아버지는 대머리시다. 이제 중년이 된 남동생은 모발이식을 하고, 약을 먹고 바른 지 20년째다. 그렇게 성실하게 관리해 온 덕에 아버지처럼 민둥산이 되는 것은 면했다. 오히려 친구들보다 나아 보인다. 지난달엔 약 타러온 동생에게 ‘유전을 이긴 노력’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평생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해 오셨던 아버지의 삶을 봐왔기 때문에 동생의 탈모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낭비라고 보지 않는다. 이런 가족사에도 불구하고 약사로 탈모약 보험적용을 어떻게 봐야할지 고민되는 지점이 있다.

 

건강보험적용은 질병과 미용을 구분하고 있다. 질병에 한해서는 공동체의 공동의 비용을 부담한다. 돈이 있는 사람에게 많은 보험금을 부담시키고, 아픈 사람에게 더 큰 혜택을 준다. 강제된 공동체의 아름다운 나눔이다. 단, 질병에 한해서다. 그래서 ‘탈모는 질병인가?’라는 물음이 논쟁의 중요한 잣대가 된다. 현재는 탈모인의 열광적인 환영에도 여론은 찬반 48.3% : 45%로 팽팽하다. 각각의 논리는 모두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이 있다. 갱년기증후나 치매를 어쩔 수 없는 노화과정으로 보다가 사회적 비용을 들여 치료하는 ‘질병’으로 인식이 바뀐 것처럼 탈모를 앞으로 하나의 ‘질병’으로 받아들일지, 생명과 직접 관련 없는 노화현상이나 유전현상으로 남겨둘지 두고 볼 일이다. 이른봄! 유권자는 어떤 후보를 선택할지 궁금하다.

 

김선화(천일약국 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