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낙원, 失樂園, Lost Paradise

#1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이브는 에덴의 원주민이었다. 그곳엔 선악과를 따먹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 외에는 아무런 제약도 없는 완전한 땅, 낙원이었다. 하지만 금기의 유혹은 늘 강력한 법. 그들은 결국 유일한 계율을 어기고 거기서 쫓겨난다. 낙원을 잃게 된 것이다.

 

 

 

#2

 

사랑 없는 결혼생활과 권태로운 생활에 지친 린코와 구키는 비 오는 날 미술관에서 처음 만나 서로에게 젖어 든다. 남자는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아내와 딸을 두었고 잘나가는 출판사의 편집부장까지 오른 50세의 유능한 직장인이다. 여자는 의사 남편을 두었고 문화센터 서예 강사로 나가며 많은 이의 부러움을 사는 38세 주부다. 두 사람은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 둘의 관계가 탄로 나고 그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그들의 사랑은 위독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뒤늦게 찾아온 진짜 사랑이 무엇보다도 소중해서 잃고 싶지 않다. 결국 두 사람은 자신들의 낙원을 찾아 떠나게 된다. 영원히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낙원을 향해 기꺼이 서로의 여행 동반자가 된다.

 

 

#3

 

 

이제 그 눈을 거두어 마지막 세상을 봐 / 다시 깨어난 시린 아침 / 그래, 함께 가는 거야 / 서로의 가슴 안고 / 끝내 돌아오지 못할 길고 긴 잠속으로 / 거역할 수 없는 건 시작된 사랑일 뿐 결코 이별은 아닌데 / 가혹한 운명의 얼굴 / 이 끝없는 형벌에 두 마음 쉴 곳 없어 / 이대로 떠나가려 해 / 늘 쫓겨온 사랑 / 비로소 자유로워 / 영원한 꿈을 꾸면 돼 / 편한 여행처럼 이제 곧 닿을 세상에서 // 지친 가슴 안았지 / 아픔에 몸을 떨며 이미 미쳐버린 사랑 / 비웃으며 돌아서는 이 잔인한 세상엔 아무런 미련 없어 / 이대로 떠나가려 해 / 늘 쫓겨온 사랑 / 비로소 자유로워 / 영원한 꿈을 꾸면 돼 / 편한 여행처럼 이제 곧 닿을 세상에서 

(조관우 작사, 위종수 작곡, 조관우 노래)

 

이 노래는 자살을 미화하는 가사라고 방송 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다. 조관우가 성수대교 사고 때 딸을 잃은 아빠를 소재로 했다고 말했지만, 그냥 노래에만 집중하자면 실낙원에서 영원한 낙원을 찾는 연인의 노래로 들린다. ‘늘 쫓겨온 사랑’에서 자유롭고 영원한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해 떠나려는 마음이 절실하다. 낙원을 향한 꿈이다.

 

#4

 

 

 

아담과 이브가 금기를 어겨서 인간은 인간답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실낙원에 인간들의 규범과 문명이 생기고 끝없이 낙원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다. 영화 속 구키와 린코는 그들의 사랑이 폄훼되는 세상-실낙원을 떠나 영원한 낙원을 향해 여행한다. 어쩌면 그 여행 자체가 낙원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조관우의 노래는 어떤 고난이 따를지라도 자기들의 사랑을 잃을 수 없다는 결연한 외침이 될 수 있다. 낙원을 갈구하는 자의 절박한 노래가 되는 것이다. 어떤 작가의 말마따나 실낙원 연인들은 ‘그들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실락원’은 꿈에 대한 노래다.

 

장진규(문화재 돌봄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