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늙음’을 위하여!

안치환 <위하여>

친한 친구들이 모여서 환갑잔치를 하기로 했다. 잔치는 우리끼리의 여행. 5년을 준비했다. 그러나 우리는 환갑 기념 여행을 떠날 수 없었다. 유행병은 세계적인 것이라서 누구를 탓하기도 어려웠다. 친구 하나는 우리가 ‘죽기 전에 100번 이상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야 한다며 부지런히 전화를 돌려 만남을 재촉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이 죽기 전에 100번을 만난다는 것은 과연 커다란 숙제인 것 같았다. 그 친구가 노래를 보냈다.

 

위하여! 위하여! 우리의 남은 인생을 위하여! 들어라. 잔을 들어라. 위하여! 위하여!

 

이렇게 시작하는 안치환의 노래다. 제가 가끔 부르는 노래까지 동원하여 친구들의 감정을 충동질해대는 것이다. 노래는 시원하고 구구절절이 공감 100%지만, 늙어가는 자들의 추한 몸부림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실버산업이 최대 유망직종으로 꼽히는 시대고 실버 시장 규모가 수 십 조 원에 이른다고 하니 어깨에 힘 좀 주면 어떠랴 싶기도 하다. 감상에 빠져 안치환처럼 목을 빼고 노래를 한참 불러 본다.

 

목마른 세상이야 시원한 술 한 잔 그립다.

푸르던 오솔길 자꾸 멀어져 간다.

넥타이를 풀어라 친구야. 앞만 보고 달렸던 숨 가쁘던 발걸음도 네가 있어 이렇게 내가 있어 이렇게 이 순간이 좋구나 친구야.

무정한 세월이야 구름처럼 흘러만 간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다. 청춘의 꽃이 시들어 간다.

 

-‘위하여’(안치환 작사/작곡/노래)

 

노래 핑계 대고 노령층 머릿수에 편승하여 힘 좀 주어보려 하니 그것도 왠지 떳떳하지 못한 듯하다. 우리가 살아온 세월의 흔적과 공적을 후배들에게 인정받으려 들자니 좀 쪼잔한 것 같고, ‘인생 다 그런 거지 뭐’, 하며 쿨하게 넘어가자니 어쩐지 좀 아쉬운 것 같다. 옛날이야기 하면서 큰소리 치는 ‘꼰대’는 질색이지만, 늙었다고 허무와 권태에 빠져 사는 것은 더더욱 우리답지 못하다. 뿐만 아니라 은퇴한 친구보다 아직 현역인 친구들이 더 많은 상황인 데다가, 이제 겨우 환갑 나이에 ‘늙음’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영 어울리는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인생을 세 토막으로 나누자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사는 인생 1기,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인생 2기, 자기가 자신을 위해 사는 인생 3기로 나눌 수 있다. 바야흐로 나만의 시간이 열리려고 한다. 그러니 이제 기꺼이 늙을 준비를 하자. 인생 살아온 만큼의 숙성된 지혜를 갈무리하자. 슬슬 욕심 내려놓고 비워낼 준비도 하자. 이제 실속 차리는 것보다 점잖게 체통을 지키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잘 늙은 신사가 될 준비를 하자. ‘위하여 위하여! 우리의 늙음을 위하여, 보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