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 명사1 상처가 아물고 남은 자국 대여섯 살 무렵, 할아버지 댁에는 큰 개가 살았다. 곧게 솟은 꼬리마저 늠름했으니 덩치야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우직했다. 어린 꼬마의 눈에도 늠름함과 우직함은 경이롭게 다가왔고 직접 손으로 끌어봐야겠다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어른들이야 대여섯 살 사내아이에게 개를 직접 끌게 할 리 없었으므로 나는 때를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다. 살아있는 먹이 향해 웅크린 사자처럼, 소리 지운 치타처럼. 집안 가득 모인 어른들이 제사상으로 우르르 몰려들 무렵, 소리 없이 현관으로 향했고 입 벌린 신발 아무거나 발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 물소처럼 얌전한 개의 목줄을 풀었다. 그리고는 의기양양 대문을 여는 순간, 개는 순식간에 자신의 숨겨둔 엔진을 가동했다. 어설픈 어린 맹수를 흉내 낸 꼬마쯤은 안중에도 없었다. 허나 아이도 사내인 법, 목줄을 움켜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부지불식간, 움켜쥘 새도 없이 목줄과 함께 날았다. 늠름한 개의 반동에 마른 사내아이쯤이야. 거기에 더해 급히 신은 신발마저도 문제였다. 젊은 고모의 굽 높은 구두 아니었던가. 개는 놓쳤고 대문 앞 계단에서 구른 나는 벌떡 일어섰다. 자유를 만끽하며 이리저
봄꽃이 몇 번 피고 지기를 반복하더니 금새 계절이 바뀌었다. 봄철에는 산과 들 구분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걸었는데 여름에는 아무래도 장소 선택을 하면서 신경이 쓰인다. 그렇다면 지금 시기에 걷기 좋은 곳은 어디가 있을까? 완주군은 산세가 좋아 발 닿는 곳이 다 걷기에 무난하겠지만 그중에 봉실산 둘레길도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둘레길 산책을 하면서 가벼운 등산도 함께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봉실산 봉실산은 완주군 봉동읍과 비봉면에 걸쳐있는 산이다. 해발 374m로 높지 않은 산이지만 평지에 노출되어 있는 덕분에 제법 큰 산같이 느껴진다. 봉실산 둘레길을 갈 수 있는 코스가 많지만, 주로 완주과학단지에서 가까운 봉실산 둘레길 주차장이나 학림사를 많이 이용한다. 이번 봉실산 둘레길 걷기는 완주과학단지 가까운 봉실산 둘레길 주차장에서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둘레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둘레길과 등산로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RC(Radio Contol, 무선조종) Car 동호회를 만났다. 봉실산은 단순한 둘레길과 등산 코스로 만 알았는데 무선조종 차를 가지고도 다니는 코스였다. 봉실산 둘레길 조금 더 오르면 옥녀봉으로
2. 석전리 경지정리사업과 수로의 변화 석전리는 오른쪽에 수계리, 왼쪽에 신금리를 두고 있다. 또 북쪽에는 봉동읍 구암리가 있고, 남쪽에는 삼례읍 구와리가 있다. 삼봉신도시가 삼봉로 건너편에 들어섰고, 삼봉로 남쪽에 위치한 삼례동초등학교도 석전리 남신정 구역이다. 왼쪽 우동천 일부 지역도 석전리 구역이다. 현재 석전리를 지나는 가장 큰 수로는 우산천(제1도수로)이다.5) 석전리 남단을 동에서 서로 횡단하는 우산천은, 석전리 맨 왼쪽에서 우동천과 합수한다. 우동천은 북쪽 구암리에서 남쪽 석전리로 흐르는데, 석탑천이라고도 부른다. 따라서 석전리는 동에서 서로 흐르는 우산천과,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우동천이 합수되는 곳이고, 이곳에서 하나의 몸이 된 하천은 우산천이라는 이름으로 신금리를 지나 삼례리 찰방다리를 건넌다. 찰방다리를 건너는 구간을 ‘독주항’(犢走項)이라고 하며, 독주항을 빠져나온 후 ‘대간선’ 이름으로 옥구저수지까지 치닫는다. 그런데 우동천과 우산천의 현재 위치와 모습은 모두 1987년 「석전지구 경지정리사업」의 산물이다. 경지정리사업 이전만 해도 두 개의 하천은 심하게 곡류하는 사행천(蛇行川)이었다. 직선화된 현재의 모습도 이때 새로운 하천구간을 신
석전리는 말 그대로 ‘돌밭’(石田)이라는 지명이다. 현재는 일부 텃밭을 제외하고는 밭을 거의 볼 수 없다. 그러나 100년 전만 해도 밭이 천지였다. 달리 밭이 많았던 것이 아니다. 지대가 높아서 물이 닿지 않으면 밭이고 낮아서 물이 들어가면 논이었다. 석전리는 우산천과 우동천이 합수되는 곳으로, 큰비가 쏟아지면 수로가 좁아서 배수가 원활하지 않았다. 그러니 논이며 취락지로 물이 쏟아졌다. 제방이 재래식이던 시절에는 홍수에 제방도 터져 나갔다. 삼례 ‘동부리’지역 토질은 사석토 지대가 매우 광범위하다. 석전리 북쪽 구릉성 야산 아래쪽, 가령 청등, 정산, 학동과 신정리 일부에 해당하는 점질토지대를 제외하면 전체가 사석토이다. 1990년대에 가장 왕성했던 육상모래 채취는 다 사석토지대에서 이루어졌는데 신탁리, 석전리, 하리, 구와리, 신금리 등 채취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현재 삼봉신도시 택지구역으로 수용된 곳도 ‘모래거리’를 비롯하여 완전한 사석토 지대이다. 석전리에는 어떠한 자연현상으로 사석토지대가 형성되었을까? 우산천이 수백 년을 범람해 왔다고 해도 수로의 폭이 좁고, 구불구불해, 범람시에 모래자갈이 휩쓰는 영향권은 한계가 있다. 그렇게 볼 때 이
지난 호 칼럼(“용진 봉서사에 깃든 진묵대사와 중태기 이야기”)에서 소개한 용진 봉서사에서 전승되고 있는 전통 무형유산으로 영산작법(靈山作法)이 있다. 영산작법이란 불교에서 행해지는 복합적 종교의식으로, 49재나 점안식(불상에 눈을 그리는 의식)을 할 때 베푸는 영산재(靈山齋)와 작법(作法)을 아울러 통칭하는 표현이다. 영산재란, 석가모니가 인도의 영축산에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법화경(法華經: 불경의 일종)을 설법한 일인 영산회상(靈山會相)을 기리고 재현하는 의식이다. 영산재를 시연할 때는 스님들이 부처를 향해 불공드리며 범패와 작법을 부처와 재에 모인 대중들 앞에서 선보인다. 범패(梵唄)란 불교에서 불공을 올릴 때 부르는 전통음악으로 판소리, 가곡과 더불어 한국의 3대 성악곡으로 알려져 있다. 작법(作法)은 범패에 곁들여지는 불교무용으로 바라춤, 나비춤, 법고춤 등이 있는데 대중적으로는 바라를 들고 추는 춤인 바라춤이 널리 알려져 있다. 범패는 불경에 수록된 진언(眞言: 신비한 뜻이 담긴 주문)을 스님들이 장단에 맞추어 느릿느릿한 음률로 부르는데, 지역마다 장단과 음이 다른 것이 특징이다. 서울에서 불리는 범패는 “경제”라 하고 호남 지방에서 불리는 범패는
영양제 대표 선수는 뭐니뭐니해도 비타민이다. 오메가3도, 유산균도 인기 있지만, 비타민은 꼭 챙기는 게 좋다. 한 알 먹는 것 아침에 잊었는데 생각났을 때 얼른 먹고 써야겠다. 오늘은 비타민 중 주목받지 못했던 못난이였다가 기형아 예방 영양제로 떠오른 엽산을 꺼내 본다. 새 세포가 만들어지려면 어떤 일이 세포 내에서 일어나야할까? 세포에 핵심 중심인 핵 속에 꼬불꼬불 꼬여있던 DNA라는 유전물질이 풀리고, 이 원본 설계도를 그대로 복사한 DNA 가닥을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 엽산이 부족해진다면, 제대로 세포분열이 일어날 수 없다. 엽산은 세포분열이 왕성한 암세포에서도 끊임없이 필요한 영양소라서 항암제 중 엽산의 합성을 억제하여 암세포가 성장하는 것을 막는 약도 흔하게 쓴다. 태아의 경우 뇌 척수 신경계의 모체인 신경관이 제대로 만들어질 수 없어, 대뇌가 거의 없거나, 척수에서 뇌에 이르는 신경관이 열리는 이분척추증을 가진 선천성 기형아를 낳게 된다. 임신 사실을 알기 전인 임신 4~5주 사이에 뇌 척수 신경이 만들어지기에 적어도 임신 한 달 전, 안전하게는 3개월 전부터 엽산이 모자라지 않도록 미리 보충해야 한다. 엽산이 충분하지 않다면 기형아 출산은 물
고양이 동물. 고양잇과의 하나. 원래 아프리카의 리비아살쾡이를 길들인 것으로, 턱과 송곳니가 특히 발달해서 육식을 주로 한다. 발톱은 자유롭게 감추거나 드러낼 수 있으며, 눈은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볼 수 있다. 애완동물로도 육종하여 여러 품종이 있다. 창밖에서 튕긴 빗방울 하나가 이마를 적신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자동차의 경적이 내리기 시작하는 빗방울처럼 소란스럽다. 친구는 떠난 제 여인에 대해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친구의 음성 너머로 들려오는 경적소리에 귀를 세운다. 울음과 경적과 비. 나의 일상 속으로 느닷없이 뛰어든 몇 마리의 고양이들을 생각한다. 나는 동물들과의 친분관계가 그리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이모 댁에서 키우는 하얀 바탕에 검정 무늬를 지닌 나비라는 녀석은 잔정이 많은 이모부 덕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암컷 고양이였다. 나보다 2살 아래인 사촌에게 나비라는 녀석은 부하이자 때론 적군이었다. 거실 한가운데로 나비를 유인한 뒤, 허리춤에 찬 권총을 뒹굴며 멋지게 빼 들고선 탕탕. 나비는 퇴로를 차단한 거실 구석에 박힌 채 비비탄 총알을 맞을 때마다 움찔대고 있었다. 총알이 다 떨어져 장전하고 있는 사
5. 만경강과 살아온 이영이의 ‘가난타령’ 한평생 이영이(85세, 1938년생) 씨는 태어난 삶터가 비비정이다. 결혼도 비비정 총각이랑 해서 지금껏 비비정에 산다. 친정아버지도 시아버지도 마찬가지로 안좌리에 사셨다. 안좌리가 침수피해를 입자 비비정으로 이주하였고, 그 후손이 된 이영이씨는 비비정에서 태어난다. 안좌리에 대한 그의 기억은 전언(傳言)일 뿐이다. “그전에는 안좌리에서 농사를 지었는디 한물이 졌어. 물이 논으로 쏟아져서 논을 메꿔버렸어. 그러니 빚내서 장리쌀로 살았어. 거기가 비만 오면 한물져버리는 디여.” 부모나 조부가 안좌리에서 이주했다는 점에서 비비정 사람들의 기억은 거의 동일하다. 그는 앞에서 인용한 것처럼 모래자갈 채취나 고기잡이 등에 대해서 기억을 상세히 구술해 주었다. 어린 시절에 겪었을 해방이나 전쟁에 대한 기억을 물었다. 참혹한 가난이 딸려 나왔다. “내가 여덜인가 아홉에 해방되고, 열세 살 때 전쟁 났어. 나는 가난해가지고 전쟁 때 여기서 안 살았어. 우리 엄마가 딸도 하난디 넘의집 보냈어.” 절대가난의 시절, 자식들은 또 거듭거듭 생긴다. 먹을 것 없는 입이 무섭다. ‘입 하나라도 던다’고 남의 집으로 보낸다. 여아는 심부름꾼이
4. 김영두 초대 이사장의 비비정 사모곡 1) 삼례 2층 한옥집에서 비비정으로 피난살이 김영두(75세, 1948년생) 씨는 공모 당시 추진위원장을 역임했고, 이후 <사단법인 비비정> 이사장도 역임한 바 있다. 김영두 씨는 삼례신협에서 전무로 퇴임한 후 신협 이사장도 역임하였다. 김영두 씨는 비비정 마을에 현재도 거주하고 있지만, 비비정 마을의 형성배경이었던 안좌리 침수지역 이주민과는 입향 사정이 달랐다. 그의 조부는 삼례초등학교 부근에 있던, 삼례에서 유일했던 2층 한옥집이었다. 삼례 사람들은 익히 아는 집이다. 조부는 정치운동가로서 김구 선생이 당수였던 ‘한독당’ 활동을 하였다. 6·25전쟁이 터지자 조부와 가족은 비비정으로 피난을 나온다. 세 살 남짓 어린 김영두도 가족 따라서 비비정에 들어온다. 미군의 폭격이 심할 때였다. 비비정 산기슭에는 몸을 숨길 수 있는 반공호가 많았다. 폭격을 피해서 숨기도 하고, 우익도 숨고 좌익도 숨어서 화를 피하던 굴이었다. 삼례 2층집이 이때 폭격으로 불타버렸다. 돌아갈 집이 사라졌다. 어른들은 대책이 없었던지 비비정 마을에 주저앉아 버렸다. 조부가 사거(死去)하고, 당시 대장촌초등학교 교사였던 부친마저 병환으
배우들의 죽음을 ‘별이 졌다’라고 한다. 얼마 전 별 하나가 졌다. 동경과 사랑의 대상이었던 그들의 예고편 없는 죽음은 자못 당황스럽다. 그렇게 강수연 배우 님이 50년 연기생활을 마감했다. 아니 마감되었다. 이제 그 강단 있고 아름다웠던 그녀를 현상계에서는 만날 수 없고, 스크린을 통해야만 볼 수 있다. 심정지가 온 날로부터 겨우 3일간 의료진이 손 쓸 방법 없이 의식이 되돌아오지 못하고 떠나버린 그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전문가들은 그녀의 뇌출혈이 중풍과는 무관한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것으로 본다. 뇌동맥류는 뇌동맥 일부가 약해져서 그 부분이 풍선이나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질환이다. 뇌동맥의 혈관 벽은 매우 얇으며, 구조적으로 정상 혈관과 달라 쉽게 파열된다. 뇌동맥류가 파열되면, 지주막하 뇌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그녀의 경우처럼 매우 위험하다. 강 배우가 겪었던 반나절 남짓 심한 두통은 동맥류가 찢어져 피가 쏟아져 나오기 전 선행 출혈 시 나타나는 것으로 이때만 해도 동맥류를 묶어주거나, 동맥류 내부를 코일로 막아줘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거라고 한다. 그녀의 배우로서의 삶처럼 고통을 인내하는 것으로 목숨을 잃었다니, 참 황망하다. 본격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