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 한옥 우리나라 고유의 형식으로 지은 집을 양식 건물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나는 전주를 모른다. 복잡한 서울 지리도 한 번 지나간 길은 어림잡아 짐작하기도 하고 때론 정확하게 되짚어가기도 한다. 헌데 전주라는 도시는 나를 쉽게 길치로 만든다. 몇 번 다녔던 길도 이상하리만치 낯설고, 왔던 곳도 갔던 곳도 쉽게 길을 잃는다. 내비게이션이 생활화되었지만 나는 내비게이션을 믿지 않는다. 차를 세워 길을 묻고 손가락을 가리키며 길을 안내하는 우리의 역할을 앗아가 버린 이기적인 현대문물이라 치부하기 일쑤다. 물론 길에서 만나는 짧은 인연도 기대할 수도 없겠지만. 한옥마을로 향한다. 책상 서랍을 뒤져 예전에 얻어놓은 한옥마을 지도를 챙기고 카메라도 챙긴 뒤, 문을 열었다가 다시 들어와 지도며 카메라며 모두 내려놓는다. 아무것도 없이 운동화를 신고 휴대폰에 내장된 카메라만 들고선 한옥마을로 가기로 한다. 계획도 없고 대책도 없이 어스름이 깔린 초저녁 한옥마을로 간다. 어둑시니가 내려앉은 한옥마을, 골목골목이 오늘의 계획이고 여행의 목표이다. 시내버스에서 내리자 저녁의 향이 물씬 풍긴다. 장마는 아직 올라오지 않았고 저녁 바람은 한낮의 더위를 식히기 충분했다. 무
“프로틱스 줘 봐” 첨 들어보는 약? 어르신들 물음이니 어서 번역기를 돌려봐야지. ‘프로바이오틱스?’ 그렇지! 언제부터 정장제가 프로바이오틱스라는 영어로 대체되어 회자되어서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어려운 이 말이 대세가 되었다. 정장제의 연원을 따라 올라가보면 원기소란 약을 만나게 된다. 1955년 창경원에서 개최된 해방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에 출품되어, 1956년 본격 시판된 약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1960~70년대에 어린이들에게 결핍되기 쉬웠던 필수 영양소를 보충해주는 건강보조식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주전부리가 흔하지 않던 시절 콩가루, 미숫가루 같은 고소함과 흔치 않은 단맛에 끌려 한꺼번에 몇십 개를 먹고 어른에게 들켜 등짝을 맞던 50~60십 대들의 추억의 영양제다. 1980년대 중반 서울약품공업의 부도로 생산이 중지되어 한 세대를 사랑받던 원기소는 20여 년 동안 약국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2005년 과거 서울약품공업에서 근무했던 이들이 서울약품이라는 신 법인을 설립하고 2012년경부터 ‘원기쏘’로 이름을 바꾸어 재생산하고 있다. 원기소는 보리 분말에 황국균을 접종해 발효시킨 것으로 식혜에 쓰는 엿기름처럼 아밀라아제와 프로테아제 같은 효소가
성호 씨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간이 좋지 않아 오래 고생하시더니 덜컥 가셨다. 아빠를 좋아했던 성호 씨의 아내가 영정 사진을 쓸며 많이 울었다. 그러던 참에 전인권 가수의 조화가 들어왔다. 영정 앞에 서 있던 아내가 그걸 보고 ‘풉~~’, 울다가 웃었다. 전인권 노래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머리 모양까지 따라 하는 남편이 철없어 보였는데 이렇게 웃음을 주는구나. 성호 씨도 웃었다. 참 고마운 형님이다. 아내의 슬픔을 덜어준 것 같아 성호 씨는 기분이 좋았다. 장인어른도 돌고 돌아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니까 슬프지만은 않다. 해가 뜨고 해가 지면 / 달이 뜨고 다시 해가 뜨고 / 꽃이 피고 / 새가 날고 / 움직이고 / 바빠지고 / 걷는 사람 뛰는 사람 / 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 속에 / 다시 돌고 돌고 돌고 / 춤을 추듯 돌고 노래하며 / 다시 돌고 돌고 돌고 돌고 성호 씨는 어릴 때부터 비트가 강한 노래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들국화’라는 밴드에 매료되었다. 친구들끼리 밴드를 만들어 놀면서 ‘들국화’를 흉내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몸치장도 ‘들국화’를 따라 했다. 성호 씨는 지금도 머리가 길다. 성호 씨가 전인권 가수를 처음 만난 것은 팬클럽 모임에
완주군이 자랑하는 대둔산 산행은 단풍이 붉게 물드는 계절에 절정을 이룬다.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단풍이 물든 대둔산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느껴보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가을철 대둔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대둔산 둘레길을 걷는 것이다. 대둔산 둘레길은 대둔산의 아름다움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걷는 길인데, 총거리가 3.4km로 부담 없이 편하게 걸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둔산 둘레길 걷기를 케이블카 승강장 바로 아래에 있는 대둔산 산악정보센터 건물 앞에서 시작했다. 방향을 정하는데 건물 앞쪽에 세워놓은 안내도가 도움이 되었다. 처음 가는 길이라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는 것이 포인트 찾기가 수월해 보였다. 둘레길로 접어들면 바로 숲길이 시작된다. 숲 사이로 넓은 길이 나 있어 여유 있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숲길을 지나 계곡물소리가 들릴 즈음에 쉼터가 나온다. 초가지붕을 얹은 쉼터가 정겨워 보였다. 쉼터 아래로 계곡물소리가 숲속의 정적을 뚫고 청아하게 들린다. 시작점에서 500m 거리에 있는 취수정이다. 정자를 지나면 좁은 숲길로 바뀐다.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운치 있는 길이다. 길가에는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
장진규의 <노래로 보는 세상> ‘청자 피우는 남자에게는 선도 보지 말고 시집가라.’ 흡연 자체가 질병으로까지 취급되는 요즘 시대에는 참 어처구니없는 말이겠지만 ‘청자’ 담배가 처음 나왔을 때 그 인기가 어땠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표현이다. 워낙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담배 파는 가게에 ‘금일분 청자 매진’이라는 문구는 당연한 일이었고, 보급소에서 담배가 풀리는 날에는 다방에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였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다방에서 담배를 팔았다는 사실도 흥미롭겠지만 말이다. 한편, 김추자의 등장은 트로트 일변도의 한국 대중음악계에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었던 모양이다. 음악 스타일뿐만 아니라 무대 의상, 화장법, 몸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생소한 것이어서 대중들의 입에 빠짐없이 오르내리는 논란거리였다고 한다. 더구나 그 당시 다른 가수들과는 전혀 다른 빳빳한 자존심 또한 무수한 가십거리가 되었고 여러 사건 사고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 당시 김추자가 워낙 인기가 높아 생긴 일들이다. ‘청자’ 담배와 가수 김추자는 똑같이 1969년에 등장했다. 청자는 한국 최초의 고급 담배라는 타이들을 달고 출시됐고, 김추자는 한국에서 이전에 본 적 없
아파트 [명사] 공동 주택 양식의 하나. 오 층 이상의 건물을 층마다 여러 집으로 일정하게 구획하여 각각의 독립된 가구가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든 주거 형태이다. 북한어-고층살림집 나는 방금 13층 아파트를 삼켰다. 13층 아파트의 맛은 맵고 짜다. 좀 더 쉽게 말한다면 뜨겁고 매우므로 얼큰하다. 우리네 입맛에 뜨겁고 맵고 짜야만 하지 않던가. 그러므로 아파트를 씹고 삼킬 때 알싸한 얼큰함에 취해 땀이 봉긋 맺히는 이도 있고 허겁함에 기침부터 뱉는 이도 있다. 이 13층 아파트를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 ‘아, 전원주택 혹은 마당 있는 집을 선호하는 사람이겠군.’이라는 상상은 하지 마시길.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에서도 나는 즐긴다. 이 13층 아파트를. 아파트, 이 반듯하고 네모난 정형적인 틀을 가진 것들의 이야기가 뉴스에서 넘쳐난다. 몇 년 사이 누구는 억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는가 하면 떨어진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사지 않고 버틴 사람들은 정부를 원망하며 아예 편을 갈아탔다라는 말도 들린다. 인구는 자꾸 줄어들어 국가의 존폐마저 위협한다는데 아파트들은 죽순처럼 대나무처럼 쑥쑥 들어서지 않던가. 집 맞은편 고층아
나이가 들면 키도 줄고, 머리숱도 적어지고, 침과 소화액 같은 점액도 줄고,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내부 장기 벽도 얇아진다. 그런데 나이들어서 커지는 것도 있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자에게만 있고 여성에게는 없는 이 기관, 전립선! 약국에 오시는 만성질환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전립선비대증, 남성 5대 암에 속하는 전립선암, 연령을 가리지 않고 오는 전립선염. 오늘은 부끄러울 것도 없는 전립선비대증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 전립선은 방광 밑에서 요도를 감싸고 있는 밤알 크기의 전립선액을 만드는 분비기관이다. 고환에서 출발한 정액이 정낭을 지나고 이 전립선에 묻혀 전립선액과 더불어 음경으로 배출되는데 전립선은 일종의 정거장 역할을 하는 거다. 이 정거장을 거쳐야 소변과 정액이 구분되어 섞이지 않는다. 정액에 합류하는 전립선액은 질 내의 산성 환경을 중화시키고 정자를 안전하게 운반하는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 이런 곳에 무슨 변화로 비대증이 생기는 걸까? 가장 큰 원인은 나이 들면서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의 영향을 오랫동안 받다보면 전립선기질이 늘어나고 요도를 압박하면서 잔뇨감이나 변기 앞에서 오래 기다리는 주저뇨, 하룻밤에 두세 번씩 일어나 소변을 보러
코스모스길을 가꾼 봉동 구만리 마을 가을이 찾아오면 보고 싶은 것 생각나는 일들이 많다. 코스모스꽃이 활짝 핀 길을 걷고 싶은 것도 그중 하나이다. 코스모스꽃은 귀한 꽃이 아니기 때문에 완주 어느 곳에서나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잠시 손을 놓고 집 밖으로 나와 주변을 걸어보면 분명 코스모스꽃과 마주칠 확률이 높다. 조금 더 오랫동안 코스모스꽃과 눈 맞춤하고 싶다면 봉동읍 구만리 코스모스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봉동읍 구만리 원구만마을은 만경강변에 기대어 있는 마을이다. 마을 옆으로 만경강 제방이 지나고 있는데, 마을에서는 이 길을 활용해서 코스모스 꽃길을 가꾸었다. 그리고 코스모스꽃이 활짝 피면 강변에서 작은 마을축제도 열었다. 올해는 아쉽게도 코로나19 상황으로 축제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코스모스 꽃길은 봉동교에서 시작해서 원구만마을까지 약 2km 구간에 펼쳐져 있다. 주변 만경강 풍경과 잘 어울려 산책로로 손색이 없다. 고산 쪽에서 흘러온 만경강 물줄기는 봉동읍 상장기공원 앞 멍에방천을 타고 내려와 원구만마을 옆으로 지나간다. 그래서 상시 만경강 맑은 물을 보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특히 만경강 봉동읍 구간에는 강물을 농업용으로 사용하기 위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직장일로, 누군가는 학업 때문에 산더미처럼 싸인 과제들을 해결하느라 생각할 시간도 없이 시간에 쫓기고 또 쫓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리게 되면 왜 이렇게 시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는지, 시간을 아끼지 못해 후회한다. 미하엘 엔데가 쓴 소설 『모모』는 위처럼 시간에 쫓기는 현대 사람들에게 잊고 있었던 가치들과 시간에 대한 고찰을 담아 소설로 표현하였다. 이야기는 버려진 원형극장 옛터에서 시작된다. 그곳엔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모모라는, 누더기를 쓰고 삐쩍 마른 여자아이가 있다. 베포 할아버지와 안내원 기기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 있는 모모를 발견하고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모모는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경청하는 능력이 있어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에 기다란 시가를 문 시간저축 은행의 회색 사람들이 나타나 시간을 절약할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일러주고, 정확히 낭비되는시간을 계산하여 설득해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마을 사람들은 서서히 이들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그 뒤 마을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게 되며 여유를 잃어버린다. 모모는
▲ 화암사로 오르는 돌계단 입추가 지나서 그런지 아침저녁 불어오는 바람결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늘이 없는 곳을 걷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그래서 시원한 그늘이 있는 곳을 찾게 된다. 그런 장소로는 완주 화암사 숲길도 좋다. 완주 화암사 가는 숲길 입구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다. 화암사는 이곳에서 800여 미터 떨어져 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이기 때문에 걷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주차장에서 화암사로 향하는 길은 두 개로 갈라져 있다. 하나는 차가 다닐 수 있는 정도로 넓은 길이고, 또 하나는 계곡 건너편으로 걷는 좁은 산책로다. 지금 시기에는 좁은 산책로를 따라 걷는 것이 좋겠다. 산책로를 따라 맥문동 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천천히 꽃길을 걸으면서 꽃과 대화를 나누어본다. 보랏빛 꽃 색깔이 주변 색과 잘 어울린다. 산책로는 계곡을 건너 계속 이어진다. 계곡을 건너는데 계곡물 소리가 시원하게 전해왔다. 잠시 계곡물에 손을 담가 보기도 하고, 계곡물이 연주하는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숲길을 걸으면서 듣게 되는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는 마음을 참 편하게 해준다. 계곡을 지나서도 맥문동 꽃길은 계속된다. 보랏빛이 꼬리를 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