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깍는 고통, 부모 등골을 빼 먹는다, 뼈 때리는 논평, 언중유골, 뼈대 있는 가문…. 뼈는 몸을 세우고 지탱하는 구조물이고, 뇌, 심장 등 중요기관들의 보호막이며, 칼슘 등 무기질을 저장하고, 적혈구 백혈구를 생산하는 생명활동을 활발히 하는 기관이다. 콜라겐 등의 교원섬유 그물눈에 칼슘염과 단백질이 촘촘히 채우고 있어서 가볍고 깨지기 쉬우면서도 의외의 탄력성을 가진 기관이다. 뼈는 골기질을 보태는 조골세포와 묵고 낡은 골지질을 청소하는 파골세포의 활동이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 건강하다. 성장기엔 조골세포가 파골세포보다 활성 있어서 골량은 많아지지만, 중년 이후엔 파골세포가 조골세포를 앞질러 골감소증이나 골다공증이 생기게 된다. 혹시라도 당신이 여성이고, 나이도 있고,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아왔거나, 갑상선 약을 복용한 지 수년이 되었거나, 갑상선 기능항진증이거나, 신장이 약해져 있거나, 오랫동안 실내에서만 일하거나, 흡연 과음을 자주하거나 저체중이거나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골밀도 검사는 필수이고 뼈를 세우는 노력과 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어르신들의 출입이 많은 약국이라 골다공증약 처방도 많다. 비타민D, 칼슘염제, 파골세포가 준동하지 않
번역 [명사]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김. 얼마 전 한국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외국인 교수를 만났다. 떠듬거리는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프랑스어 사이를 눈치껏 오가며 서로 소통하며 웃고 떠들었다. 물론 약간의 술이 가미되었음은 물론. 술은 때로 사람을 과감하게 만들지 않던가. 영어는 귀동냥하는 수준이고 프랑스어는 귀머거리 수준이었으므로. 시를 이야기했고 이방인이 한국 생활에서 오는 낯섦과 한국어 음절이 외국인에게 들리는 묘한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인에게 프랑스어가 들리는 리듬감처럼 한국어도 외국인의 귀에 들리는 즐거움은 상당하다고 했다. 그러다 한국어의 깊이를 이야기했고 한국시의 깊이를 이야기 했으며 그로 인하여 얻는 번역의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다 그녀가 던진 말‘번역은 반역이다’. ‘그렇지, 번역은 반역이지. 한국인만의 정서를 프랑스어로 바꾼다고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해? 한국어의 뉘앙스를 프랑스어의 뉘앙스로 바꿀 수 있어야만 진정한 번역이지 않을까?’ 술김도 있었고 번역에 대한 여러 가지 상상의 나래가 펼쳐져 그녀의 말은 이제 들리지 않는다. ‘문학작품만 번역하지 않고 나를 번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정말 어
송 여사가 베란다에 놓인 화분들에 물을 주고 잎을 닦는다. 송 여사 얼굴이 꽃처럼 피어난다. 송 여사가 꽃잎을 쓰다듬는다. 손주들 어깨 쓰다듬듯이. 젊었을 때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꽃들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예뻐 보인다. 산에 들에 핀 꽃을 보다가 너무 예뻐서 울컥 눈물이 날 때도 있다. 전에는 시내에 나가 쇼핑하는 것이 좋더니 이제는 한적한 곳에 가서 꽃구경하는 것이 더 좋다. 송 여사 나이 80대 중반. 언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참 숨찬 세월이었는데, 이젠 잔잔하다. 봄 산에 피는 꽃이 그리도 그리도 고울 줄이야 /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정말로 몰랐네 송 여사는 오빠들만 있는 시골에서 막내 고명딸로 태어나 세상 물정 모르고 살다가 도시로 시집을 왔다. 시아버지는 무뚝뚝했고 시어머니는 무서웠다. 남편은 시동생들까지 층층이 딸린 대가족의 가장으로서 늘 엄격했다. 귀여움만 받고 자라던 친정과의 문화 차이가 송 여사를 숨 막히게 했지만,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거려니, 운명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시동생들이 결혼하여 떠나는 만큼 자식들이 태어나서 집안일만으로도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줄줄이 딸만 넷을 낳으니 아들 못 낳는 며느리, 시어머니 앞
호남을 수호해 나라를 지킨 웅치전투의 현장을 찾아서 광복절을 맞이해서 완주군에서 기억해야 할 장소가 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호남을 지켜내고 나라를 구한 전투가 있었던 웅치전적지입니다. 이 전투를 치르면서 많은 장수와 병사들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왜군에도 많은 피해를 주어 왜군을 조선에서 물러가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했던 역사적으로 대단히 가치 있는 장소입니다. 그 소중한 교훈을 되새기기 위해 웅치전적비를 찾았습니다. 웅치전적비 가는 길 웅치전적비를 가기 위해서는 순두부로 유명한 완주군 소양면 화심을 지납니다. 화심의 옛 지명은 구진벌이었습니다. 옛 웅치전투와 관련이 있는 지명입니다. 이곳에서 아홉 번 나아갔다가 아홉 번 후퇴한 구진구퇴(九進九退)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구진벌이라는 지명이 생겼습니다. 화심을 지나면 진안으로 가는 길이 두 갈래로 나누어집니다. 여기서 오른쪽 옛 모래재로 가는 길을 따라서 가면 신원리 신안마을입니다. 이곳에서 다시 길이 갈라지는데요. 바로 올라가면 모래재로 가는 길이고요. 오른쪽 길은 일제강점기 때 만든 신작로가 지나는 곰티재 가는 길입니다. 곰티재 가는 길을 따라가면 두목마을이 나오고, 두
생태와 건강 내게도 ‘사추기(思秋期)’가 왔다. 13세 막 피워낸 꽃봉우리 같던 사춘기(思春期)의 다른 쪽 사추기! 가슴이 봉긋하게 오르고, 허리가 잘록해지던 그 시절과 다르게 복부는 지방으로 차오르고 피부는 얇아지며 콜라겐이 지탱해주던 탄력은 급격하게 꺼지면서 주름이 늘어간다. 점막도 퍼석퍼석 건조하고, 갈라져 당긴다. 내 난소가 노화에 의해 호르몬 생산을 못 하고 있다는 증표를 다 보여주고 있다. 내가 모르고 있었지만, 사춘기 시절부터 여성호르몬이 피부, 점막을 보호했다는 건데, 알고 보니 이것뿐이 아니었다. 혈관, 신경, 뼈, 관절들이 이 귀한 호르몬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50대를 전후한 갱년기 때부터 현저하게 혈중 콜레스테롤량은 많아지고, 혈관의 탄력도 떨어져 고혈압, 협심증, 심근경색 등 심혈관계 질환이 이 나이대 남성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발생한다. 이 시기엔 갑상선 기능도 온전하기 힘든지 먹는 것도 없이 대사량은 줄고, 아랫배가 도톰해지고 체중은 늘어나면서 몸은 무겁고 기운이 없다. 그러니, 짜증스럽고 무기력하고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잠도 들기 힘들다. 이러다 치매 걸리는 것 아닌가 싶게 기억력도 떨어졌다. 앞으로 인생의 1/3을
대동세상 大同世上 명사,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울려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 진안 천반산에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정여립(1546~1589)이 있다.‘천하의 주인이 따로 없다’는, 왕권체제하에서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언사를 서슴지 않았던 반체제적인 인물 정여립. 금방이라도 폭발할 화약처럼 위험한 사상으로 장전되어‘대동세상’을 꿈꾸던 인물이었지만 한편으론 개혁과 실용을 앞세운 조선왕조 최초의 공화주의자이다. 그의 말은 선비사회인 조선에게는 벼락 치는 소리였고 천둥소리였다. ‘어찌 임금 한 사람이 주인이 될 수 있는가? 누구든 섬기면 임금 아니겠는가!’ ‘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랴 ‘인민에게 해가 되는 임금은 죽여도 괜찮고, 올바름을 실행하기에 부족한 지아비는 떠나도 괜찮다’ ‘백성과 땅이 이미 조조와 사마씨에게 돌아갔는데, 한구석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유현덕의 정통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여립. 그는 서인(西人)의 수장이었던 율곡 이이의 후원으로 승승장구했다. 거칠 게 없었으며 선조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이율곡도 그를‘당대 천재’라 말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율곡이 죽자 그는 동인(東人)으로 정치노선을
용규 씨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5년째다. 아직 50대 나이에 혼자가 된 용규 씨는 얼굴이 좀 어두워졌을 뿐 별로 달라진 것 없이 살아왔다. 20대인 두 딸은 이제 아빠가 새 여자친구를 만나도 된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도 좋은 사람을 만나서 새 출발 하라고 부추겼다. 그러나 용규 씨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한사코 여자를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러던 용규 씨가 친구를 통해 그녀를 수소문한 것은 지난봄부터다. 친구와 같은 업종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근황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막상 연락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놓은 것도 없으면서 그녀 소식이 궁금했다. 친구와 만나 대포 한 잔씩 나눌 때마다 졸라댄 끝에 전화번호를 받았다. 뭐라고 말하지? 그녀도 결혼해서 아이와 남편이 있겠지? 나를 기억하기나 할까? 내가 혼자가 되었다고 하면 그녀의 반응은 어떨까? 장맛비가 몹시 쏟아지는 날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참 조심스럽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우리 한번 만나도 괜찮을까요?’
쌀 수탈의 수단으로 건설된 철도 삼례에 철도가 처음 개통된 것은 1914년이다. 처음에는 전북경편철도주식회사가 운영하는 사철(私鐵)로 영업을 시작했다. 일본인 농장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서였다. 1899년 군산항이 개항되면서 군산항을 통해서 농산물을 일본으로 반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일본인들은 내륙 농장에서 생산된 쌀을 군산항을 통해서 일본으로 반출하기를 원했다. 당시 삼례에는 이엽사농장이 있었고, 동산에는 미쯔비시 계열에서 운영했던 동산농장 있었다. 인근 춘포에는 호소카와농장과 이마무라농장, 다사카농장 등이 있어 이들은 서로 뜻을 모아 사철(私鐵)을 운영하게 되었다. 일본인 농장에서 수확한 쌀을 현미로 가공해서 창고에 보관했다가 기차를 이용해서 군산항으로 보내졌고, 그 쌀들은 다시 군산항에서 배를 이용해서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일본인 농장은 쌀 수탈의 전초기지였고, 당시 철도는 수탈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삼례역 주변에 옛 창고들이 많이 남아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경강 철교 준공 경편철도는 그 이후 1927년 조선총독부에서 인수해서 국철로 흡수되었고 명칭도 경전북부선으로 바뀌었다. 1929년에는 협괘 레일을 표준괘로
지난 여름, 봄부터 앓았던 마스크 대란을 이기고 마스크 공급이 원활히 되고 나서는 이 뜨거운 여름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답답해 했던 것은 이제 추억이 되려나, 종전의 백신과 사뭇 다른 형태의 유전자백신을 백신 접종 역사 이래 압도적인 접종 수로 맞고 있다 보니 접종 후 반응에 대해 두렵고 걱정되는 게 당연하다. 요양병원 어르신들, 80대 70대 60대 이렇게 순서대로 백신을 맞으며 올해 상반기를 보냈다. 어쨌든 우리는 전 국민의 30%가 넘는 수가 한 번 이상 백신을 맞았다. 아직까지 약국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후유증을 앓으신 분은 없어서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1~2주 이상 근육통, 관절통, 식욕부진, 복통, 설사, 기운 없고 어지러움 때문에 고생하시는 분들이 오실 때마다 안심시키고 다독이는 게 일상이다. “코로나 확진자 중에도 멀쩡하게 무증상이었던 사람, 폐렴에 폐혈증으로 생명을 잃은 사람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인 것처럼 백신반응도 천차만별이더라. 백신에 대한 내 반응이 이정도면, 코로나19에 감염되었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백신맞기를 참 잘하셨다”고 위로한다. 백신수급에 어려움이 있는 중에도 바이오 강국으
노래 [명사] 1. 가사에 곡조를 붙여 목소리로 부를 수 있게 만든 음악. 또는 그 음악을 목소리로 부름. 2. 가곡, 가사, 시조 따위와 같이 운율이 있는 언어로 사상과 감정을 표현함. 또는 그런 예술 작품. 비가 왔었다. 아니 비가 안 왔었다. 아니다 비가 온 것 같기도 하고 비가 안 온 것 같기도 하다. 중3에서 고1로 올라갈 즈음이었고 나는 그 해 고입고사를 봤다. 시험을 앞둔 아침, 지금은 노모가 된 엄마와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학교에 입장해 또 한 번의 전쟁을 치렀다. 시험이 끝나고 발걸음은 무거웠고 왁자지껄한 친구들과 달리 나는 얼굴이 굳어있었다. 지금은 이유도 떠오르지 않지만, 어머님께 미안함이 앞섰고 시험을 앞두고 괜한 오기를 부렸나 싶은 후회를 했던 것 같다. 느릿느릿 학교 정문을 나서자 누나가 서 있었다. 누이는 고맙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앞서 걸었다. 누이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니 익산역 앞, 새서울악기사였다. 누이는 고2였고 나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사춘기 소년이었다. 중3였던 나는 음악을 몰랐다. 라디오조차 들을 줄 몰랐다. 그런 내게 누이는 수많은 카세트테이프와 LP판 앞으로 이끌었고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