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또한 내 삶인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 무거운 것을 털어 내야 한다는 것 /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지 않고 / 가벼이 가진 것을 내어 주는 것 /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 단단한 뿌리와 기둥만으로 / 겨울을 준비하는 것.

채유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중에서

겨울바람이 매섭다. 여름 태풍처럼 눈보라를 몰아 때린다. 남자는 바람에 쓰러진 쓰레기 봉지를 일으켜 세우며 마당 구석에 선 감나무를 쳐다본다. 하나 남은 까치밥마저 없어져 버린 감나무 가지에서 칼바람 소리가 난다. 이제 나도 다 벗고 저렇게 서야 하는가? 내 나이가 벌써? 남자가 쓸쓸해진다.

작은 창에 기댄 노을이 남기고 간 짙은 고독이 벌써 내 곁에 다가와 더없이 외로워져

 

남자는 얼른 나이 먹고 어른이 되고 싶었던 시절을 떠올린다. 별 맛도 없는 떡국을 후루룩 후루룩 마시면서 나이를 키웠던 시절이 있었지.

남자가 웃는다. 그렇다고 옛날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삶도, 뭐,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찮은 것 같다. 남자가 부르르 떨면서 집 안으로 들어간다.

보이는 건 어둠이 깔린 작은 하늘뿐이지만 내게 열려 있는 것 같아 다시 날 꿈꾸게 해

다들 그렇듯이, 남자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기호가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음식도 친구도 이성도, 옷도 술도 운동도, 좋아하는 노래도 달라진다. 남자는 조용필 애호가다. 그 많은 조용필의 노래를 알고 있고 즐겨 부른다. 나이에 따라 즐겨 불렀던 곡이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다 그런 것이다.

손 내밀면 닿을 듯한 추억이 그림자 되어 지친 내 마음 위로해 주고 다시 나를 살아가게 해

굴렁쇠 하나 굴려 놓으면 알아서 굴러 간다. 관성 법칙이다. 그 굴렁쇠는 언젠가 넘어져 더이상 구르지 않는다. 중력의 법칙이다. 굴렁쇠는 때로는 신나게, 때로는 아슬아슬하게 굴러간다. 그것은 삶의 법칙이다.

계절 따라 피어나는 꽃으로 세월을 느끼고 다시 고독이 찾아와도 그 또한 내 삶인데

남자는 날마다 죽어가고 있다. 모든 생명의 종착지는 죽음이니까. 그것이 자연이니까. 그래도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젊음이 부러운 것만은 아니니까. 나이를 먹어서 좋은 점도 꽤 있으니까.

더는 사랑이 없다 해도 남겨진 내 삶인데 가야 할 내 길인데 그것이 내 삶인데

 

「그 또한 내 삶인데」 임보경 작사/오석준 작곡/조용필 노래

 

조경 노동자 장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