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가난한 사랑은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 (중략) /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쉬우면서도 공감력이 뛰어난 시다. 가난 때문에 외로움도 그리움도 사랑도 다 포기해야 하는 시 속의 주인공. 가난 때문에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요즘 젊은이들의 마른 입술들이 오버랩된다. 그런 생각을 할 즈음 UMC의 ‘가난한 사랑 노래’를 듣게 되었다. 리듬은 흥겨운데 내용은 참 안타깝다. 가사가 긴 랩이라서 내용을 요약해야겠다. 우선 첫 부분에서는 남자가 자신의 평소 행동을 되돌아보는 가사가 나온다. 여친 만나서 무심한 척, 남자다운 척하는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 생각해 봐도 ‘정말 지겨울 것 같’다고 반성한다. 그 다음 이어지는 말을 보면,

 

여기서 일하면서 보니까 말이야 / 샴페인 안에 반지를 넣어준다거나 / 아니면 꽃을 만땅 채워놓고 차 트렁크를 열게 하거나 / 정말로 멋진 방법들이 많고 많던데 / 꽃을 그렇게 살려면 이달 방세는 포기야 / 차는 빌려 쓰면 돼도 방은 빼줘야 되는데 / 같이 살고야 싶지만 먼저 고백을 멋지게 해야지 // 그치만 시간이 있을까 싶어 / 너는 하루에 열 시간 / 오빠는 하루에 열두 시간이 일하면서 지나가고 / 한 달에 이틀 쉬는데 / 누워서TV를 보든지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게 되더라 / 어쨌건 마음만은 제발 받아달라는 / 구질구질한 말들은 이제 하고 싶지도 않다 / 친구들 만나면 재밌게 잘 놀아 / 오늘은 니 생일이잖아, 니 생일// 너무 가난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기를…….

UMC, ‘가난한 사랑노래’

 

 

 

이렇게 자조적인 고백을 날린다. 멋지게 프러포즈할 능력도 없고 마음 편히 연인을 만날 시간도 없다. 이 가난한 남자는 ‘마음만은 받아달라는 구질구질한 말’은 하지 않기로 한다. 더군다나 오늘은 여친의 생일인데 말이다. 후렴구는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패러디해서 ‘너무 가난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기를’, 하며 반어적인 탄식을 쏟아낸다. 그 말을 4번이나 반복하면서 가난을 원망하는 듯, 무기력한 자신의 사랑을 후회하는 듯, 슬프다.

 

그 뒤에 이어지는 서사는 영화 속 장면들 같다. 여친이 어떤 회사 경리로 취직을 했는데 부장이 추근댄다. 남자는, 예쁜 애들 팔자는 다 그런 거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또, 추석을 맞이하여, 고향 내려가는 여친에게 지갑을 선물하려고 세탁소에서 양복까지 빌려 입고 역 앞에 나갔는데, 그가 부자로 보였는지 오토바이가 그것을 채가 버린다. 이어서, 술 먹고 주정하듯 신세 한탄하는 이야기, 여친을 피자 배달 오토바이 뒷자리에 태우고 데이트했던 추억, 옥상에서 빨래를 너는 여친의 모습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장면 등이 이어진다. 중간중간에 ‘너무 가난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기를’을 반복하면서 가난한 청년의 심정을 무심한 듯 툭툭 뱉어낸다. 오늘은, 나를 따라 서울까지 올라온 여친의 생일인 것이다!

 

‘곡간에서 인심 난다’는데 이제 사랑도 곡간에서 나는 세상이다. 이 노래는 그런 세상에 대한 항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신경림의 시나 UMC의 노래는 우리를 아프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사랑도 진정이라는 것은 안다. 그래서 이렇게 가사를 바꾸어 흥얼거려 본다. 너무 가난한 사랑도 사랑은 사랑이었음을…….

 

장진규(조경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