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사전 17

대동세상 大同世上

명사,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울려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

진안 천반산에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정여립(1546~1589)이 있다.‘천하의 주인이 따로 없다’는, 왕권체제하에서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언사를 서슴지 않았던 반체제적인 인물 정여립. 금방이라도 폭발할 화약처럼 위험한 사상으로 장전되어‘대동세상’을 꿈꾸던 인물이었지만 한편으론 개혁과 실용을 앞세운 조선왕조 최초의 공화주의자이다. 그의 말은 선비사회인 조선에게는 벼락 치는 소리였고 천둥소리였다.

‘어찌 임금 한 사람이 주인이 될 수 있는가? 누구든 섬기면 임금 아니겠는가!’

‘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랴

‘인민에게 해가 되는 임금은 죽여도 괜찮고, 올바름을 실행하기에 부족한 지아비는 떠나도 괜찮다’

‘백성과 땅이 이미 조조와 사마씨에게 돌아갔는데, 한구석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유현덕의 정통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여립. 그는 서인(西人)의 수장이었던 율곡 이이의 후원으로 승승장구했다. 거칠 게 없었으며 선조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이율곡도 그를‘당대 천재’라 말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율곡이 죽자 그는 동인(東人)으로 정치노선을 바꾼다. 돌연한 변신에 서인들의 격분을 샀음은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서인들은 복수의 칼날을 갈았고 그는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대동계(大同契)를 만들었다.

그는 ‘같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꿨고 ‘백성이 잘사는 나라,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원했다. 양반, 상놈, 농민, 노비 할 것 없이 누구든 뜻을 같이하면 계원이 될 수 있었다. 대동계원들은 천반산에 모여 무술단련과 함께 세상 이야기도 나눴다. 전라도뿐이 아니라 저 멀리 황해도에서도 참가자들이 몰려들었다. 또한 대동계를 이끌고 남해안을 침범한 왜선 18척을 물리치기도 했다.

하지만 사대부가의 낙향한 벼슬아치 출신이 천민들과 어울린 것도, 병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적인 모임을 만든 것도, 왕위 세습을 거부하거나 충군의 이념을 부인하는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서슴지 않은 것도 반대 세력에겐 좋은 사냥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와중에 역모를 고발하는 황해도 관찰사의 비밀장계가 조정에 당도했고, 곧 토벌과 함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시작됐다.

첩보는 구체적이었다. 하지만 정여립과 한 길을 걸었던 동인 계열과 선조는 정여립이 모반할 까닭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가 스스로 한양에 올라와 무고를 주장하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곧이어 금부도사 유담으로부터 정여립이 도주했다는 급보가 당도한다. 변고는 거듭됐고 얼마 후 정여립은 진안 죽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선조가 직접 나선 정옥남에 대한 친국(임금이 직접 죄인을 문초함)을 시작으로 기축옥사(己丑獄事)가 시작됐다. 옥남은 정여립의 아들이다.

이듬해 7월까지 무려 1,000명의 목숨을 잃었다. 조선조 4대 사화의 희생자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모반에 대한 치죄는 매우 엄했다. 삼족을 멸하고, 정여립과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정여립의 시신은 능지처참 된 후 조선팔도로 흩어지고 그와 서신 한 번, 대화 한 번 한 이력이 있는 사람도 죽었다. 정여립의 근거지 전주는 동래 정씨가 아예 살 수 없게 됐고, 그의 고향 금구는 현으로 강등됐다. 그리고 호남은 반역향으로 지목돼 이후 인재 등용에서 배제가 되었다.

인민에게 해가 되는 임금은 죽여도 괜찮고, 올바름을 실행하기에 부족한 지아비는 떠나도 괜찮다’고 떠들어대던 이가 있었다. 몇백 년 앞서 살았던 이가 부르짖던 세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권력과 자본에 대해 반역을 꾀하는 자, 대동의 세상을 꿈꾸는 자는 정녕 없는 것인가?

김성철

시인, 시집 『달이 기우는 비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