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사전 18

번역

[명사]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김.

얼마 전 한국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외국인 교수를 만났다. 떠듬거리는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프랑스어 사이를 눈치껏 오가며 서로 소통하며 웃고 떠들었다. 물론 약간의 술이 가미되었음은 물론. 술은 때로 사람을 과감하게 만들지 않던가. 영어는 귀동냥하는 수준이고 프랑스어는 귀머거리 수준이었으므로.

시를 이야기했고 이방인이 한국 생활에서 오는 낯섦과 한국어 음절이 외국인에게 들리는 묘한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인에게 프랑스어가 들리는 리듬감처럼 한국어도 외국인의 귀에 들리는 즐거움은 상당하다고 했다. 그러다 한국어의 깊이를 이야기했고 한국시의 깊이를 이야기 했으며 그로 인하여 얻는 번역의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다 그녀가 던진 말‘번역은 반역이다’.

‘그렇지, 번역은 반역이지. 한국인만의 정서를 프랑스어로 바꾼다고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해? 한국어의 뉘앙스를 프랑스어의 뉘앙스로 바꿀 수 있어야만 진정한 번역이지 않을까?’

술김도 있었고 번역에 대한 여러 가지 상상의 나래가 펼쳐져 그녀의 말은 이제 들리지 않는다.

‘문학작품만 번역하지 않고 나를 번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정말 어려운 일일까?’

뭐 이름이야 영문으로 그대로 쓰면 될 것이고, 짧은 머리니까 평소에 해보지 못한 장발은 어떨까? 그래, 짙은 갈색의 장발을 머리에 이는 거지. 눈매는 어떻게 할까? 도드라진 눈두덩이를 움푹 패게 하면 어떨까? 너무 이질적이지 않을까? 아냐, 프랑스 사내처럼 번역하려면 그들과 조금 더 유사해야겠지. 눈동자는? 푸른 눈은 너무 흔할 거야. 그래 눈동자는 지금 그대로 까맣게.

나를 두고 쉴 새 없이 그림이 그려졌다. 머리와 눈 이외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는 변모했다. 어두운 피부색을 지닌 인종이 되었다가 여름 한낮의 땡볕같이 창백한 인종이 되기도 했다. 아이의 스케치북처럼 어느 땐 삐뚤게 어느 땐 정성 가득, 동양적인 나를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으로 변모시켰다.

“선생니임, 무얼 생각하죠? 혼자서 웃고 왜 혼자서 괴로워하세요? 얼굴에 다 쓰여 있어요.”

외국인 여교수가 나를 골똘히 쳐다보며 묻는다.

번역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그녀의 중요한 가르침을 전해주는 중이었다.

“텍스트(문학작품)에 연연해하지 마세요. 작품 속에 들어있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그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스스로 해석하세요. 그리고 그다음 말로 옮기세요.”

순간 깨달았다. 나는 나의 의미를 아직 정확하게 깨닫지 못했다. 나의 의미를 정확하게 찾고 해석해야만 내가 나를 번역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찾는 일. 나라는 텍스트는 왜 이리 어렵고 난해한 것이냐?

김성철

시인. 시집으로 『달이 기우는 비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