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강사랑지킴이와 함께하는 만경강 야행

토요일 오후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진다. 일기예보에는 저녁부터 비가 내린다고는 했지만 하늘이 잔뜩 흐려져 있어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오후 5시부터 완주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인 만경강사랑지킴이가 주관하는 만경강 야행 두 번째 행사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가 조금 일찍 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산과 우비까지 챙겨 만경강 야행 집결지인 삼례 비비정으로 향했다.

 

익산천 합수부

집결지가 삼례 비비정이었지만 오늘 걷기의 목적지이기도 했다. 집결지에서 인원 파악을 마치고 참가자들은 만경강사랑지킴이 회원들이 준비한 승용차를 타고 익산시 춘포에 있는 익산천 합수 지점 전망대로 이동했다. 출발에 앞서 만경강사랑지킴이 손안나 회장으로부터 만경강에 관련된 설명을 들었다.

 

만경강사랑지킴이는 만경강을 완주 답사하면서 8개 걷기 코스를 만들었다. 단기간에 걷는다면 2박 3일 정도면 완주할 수 있는 거리이지만 8개 코스로 나누어 여유를 가지고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겠다. 만경강사랑지킴이는 앞으로 8개 코스를 정기적으로 답사활동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만경강을 걸으며 유심히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예부터 만경 8경으로 알려진 곳이다. 1경 만경낙조, 2경 신창지정, 3경 사수곡류, 4경 백구풍월, 5경 비비낙안, 6경 신천옥결, 7경 봉동인락, 8경 세심청류이다.

 

만경강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만경강을 걷기 전에 참가자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남겼다. 만경강 야행 1차 때 평가가 좋았던 영향인지 참가자 숫자가 늘었다.

 

 

 

만경강 야행

기념사진 촬영을 마치고 참가자들은 목적지인 삼례 비비정을 향해 길을 나섰다. 익산천을 건너는데 익산천 수풀 사이로 고라니 한 마리 보인다. 사람들이 익숙한 듯 놀라는 기색이 없이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수풀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이런 동물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만경강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익산천을 건너면서 제방 아래쪽에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를 이용했다. 자전거 도로 입구부터 기생초꽃이 반갑게 맞이한다. 기생초꽃은 노란색 꽃잎도 두드러지지만 꽃잎 안쪽에 진하게 화장을 한 문양이 눈길을 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기생초 이름이 붙여진 사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만경강은 계절에 따라 분위기가 바뀌는데 이 시기의 특징은 기생초 꽃길이다. 중간중간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하면서 예쁜 꽃길을 만들어 놓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흐린 날씨였지만 오히려 걷기에는 좋았다. 날씨 좋고, 꽃도 좋고 여름철 걷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강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분명 길인데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아서 기생초가 무성해졌다. 생각지도 않았던 기생초 꽃길이 되었다. 이 길은 가을철 억새꽃이 피면 탐방로로 이용된다. 만경강 노전백리는 예부터 널리 알려진 명소였는데 그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억새꽃 군락지이다. 억새 군락이 끝없이 펼쳐진 풍경이 장관이다. 지금 보아도 이 정도일진대 가을에 억새꽃이 핀 풍경은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된다. 물길이 멀리 있어 잘 볼 수 없었지만 대신 시원하게 펼쳐진 억새 풍경을 보면서 걷는 구간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두와 후미 사이 간격이 벌어지곤 한다. 어느 걷기 행사에서라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면 중간중간 잠시 멈추어 손안나 회장이 설명을 하는 사이 흩어졌던 행렬이 자연스럽게 다시 모이게 된다. 만경강의 조선시대 이름인 사수강(泗水江) 이야기에서 전주 객사 현판인 풍패지관 이야기로 이어져 명나라 문장가였던 주지번과 익산 출신 송영구에 관련된 이야기로 이어졌다. 익산 이야기가 나온 김에 사랑 이야기 한 토막도 소개해 주었다. 소세양과 황진이와의 사랑 이야기였다.

 

이야기가 끝나고 다시 출발했다. 코스 중간까지는 비를 의식하지 않고 걸었는데 중간쯤 지날 무렵부터 빗방울이 부담스러웠다. 참가자들은 서둘러 우산과 비옷으로 방어막을 쳤다. 우산도 비옷도 걷는데 조금은 거추장스러웠지만 이 또한 만경강 야행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만경강변에 색색의 우산이 궤적을 남기며 걸어간다. 보기 좋은 풍경이다.

 

멀리 보이던 다리가 가까워졌다. 삼례를 우회해서 지나는 1번 국도가 통과하는 다리이다. 다리 너머로 비비정 정자가 보인다. 그다지 멀어 보이지 않는다. 이제 곧 도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다리 아래에서 쉬면서 마지막 컨디션을 점검했다.

 

 

비비정예술열차 버스킹, 세미콜론

목적지인 비비정에 도착하자 빗방울은 다시 시들해졌다. 길을 잃을까 봐 안내를 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왔었나 보다. 비비정은 소문난 노을 맛집이다. 맑은 날씨였다면 멋진 노을을 기대해도 좋으련만 이번에는 그 기대를 접어야 했다.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으면서 강 언덕에 우뚝 선 비비정 정자에 조명이 켜졌다.  운치 있는 풍경이다.

 

구 만경강 철교 위에 놓인 비비정예술열차 야외무대에는 이번 만경강 야행의 하이라이트인 버스킹이 준비되어 있다. 치킨, 김밥, 과일, 음료에 맥주까지 곁들여 가벼운 식사를 하면서 즐기는 작은 음악회이다. 규모는 작지만 분위기만은 최고다. 만경강 걷기를 마치고 행사 마무리를 버스킹으로 한다는 발상이 마음에 든다. 버스킹은 완주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미콜론 팀이 진행해 주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완주군 군민들에게 쉼을 제공하기 위해 버스킹 활동을 하고 있는 팀이다. 

 

 

편안한 식사를 위해 처음 몇 곡은 조용한 노래를 선곡해서 불러주었다. 덕분에 감미로운 노래를 들으며 우아하게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번 만경강 야행 참가자 연령층을 보면 초등학생부터 칠십 대 어른까지 폭넓게 참가했다. 그만큼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코스였다는 의미이고, 향후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참가자들은 가까운 지인들이 함께 참가하기도 했고, 가족 단위로 참석한 팀도 있었다.  참가 팀의 인적 구성이 서로 다르긴 해도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버스킹이 진행되면 될수록 만경강 야행 참가자들의 흥이 점차 고조된다. 공연자와 참가자가 한 팀이 되어 훌륭한 버스킹을 만들어 간다. 그런 훈훈한 분위기에서 즐거운 공연이 무르익어 갔다. 

 

 

만경강 야행을 마치고. . .

버스킹을 마지막으로 만경강 야행이 마무리되었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행사였다. 기회가 될 때마다 만경강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경강, 아름다운 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