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리, 유리
구와리에는 전와마을과 함께 전주유씨 집성촌이 한 곳 더 있다. 바로 버드리라 불리는 유리이다. 전와마을에서 뒷내를 따라 만경강 쪽으로 걷다 보면 만나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빨래터가 있었는데 지금은 집에 상수도가 들어오고 세탁기가 보급되면서 폐허로 남아 있다. 유리는 버드나무가 많은 마을이어서 유리, '버들 유(柳)‘자를 쓰는 전주 유씨가 모여 사는 마을이어서 유리라고 부른다. 지금은 버드나무가 없지만 3, 40년 전만 해도 이 마을엔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마을에서 딸기 농장을 운영하는 유흥옥 씨는 농장 이름을 ’버들피리‘라고 소개하였다. 지금은 사라진 버드나무를 추억하며 농장 이름을 지었단다.
현재도 유리는 버들 유(柳)‘자를 쓰는 유씨 집성촌으로 다른 성씨들은 외지에서 새롭게 들어온 사람이거나 고종사촌들이다. 마을 전체가 한 가족인 셈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매우 이색적인 모습을 보게 되는데 강돌을 쌓아 만든 담이다. 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마을 어른들이 손수레로 마을 앞내인 만경강에서 강 돌을 실어와 손수 만들었다. 마을이 현대화되면서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제 역할을 감당하는 담장이 남아 있어 외지에서 온 나그네를 즐겁게 한다. 어느 곳에서나 흔하게 볼 수 없는 골목 풍경이라 더 흥미로우며 슬로시티를 걷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담장을 유지하고 가꾸어서 유리도 슬로시티에 이름을 올리면 좋겠다.
한국의 담은 오고 가는 사람과 소통하고 자연과 소통한다. 담이 높지 않으니 오고 가는 사람과 소통하고 물길이 흐르면 담 밑으로 물길이 지나도록 한다. 길이 지나면 길이 막히지 않도록 담을 터놓아 사람이 지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았다. 막힌 듯 트여 있고 닫힌 듯 열린 공간이 담이 가진 멋이고 자연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담이 외부와 소통하듯 여행은 새로운 세계와 소통한다. 동네 골목을 걸으면 마을의 이야기와 거기서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골목 답사는 마을과 사람의 이야기를 나에게 체화시키는 과정이기에 많은 이들이 열광한다. 더 많은 사람이 완주를 완주하며 힐링과 치유를 경험하길 기대한다.
우루재(愚陋齋) 유병량(柳秉養)
유리는 조선 말 시와 예학에 능했던 한학자 유병량(柳秉養:1864∼1940)선생의 고향이다. ‘우루(愚陋齋)’는 유병량 선생의 호로 ‘어리석고 누추한 집’이라는 뜻이다. 16세에 부친을 여의고 3년 시묘살이를 했으며,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공부하여 2,000석 부자의 반열에 올랐다. 1905년 느티나무 아래 창화재라는 강당을 짓고 문중 자제들을 교육하는 등 유학 진흥에 힘을 기울였다. 1913년 4월 20일(음력) 과거제 폐지 이후 시름에 잠긴 선비들을 모아 만경강 둔치에서 개인재산을 털어 전국 백일장을 열었는데 구경꾼을 포함 1만5천 명이 모였다고 전해진다. 이때 뽑은 시를 모아 편찬한 책이 우루재창화편(愚陋齋唱和編) 상·하이다. 유병량은 우루재원고(愚陋齋原稿)라는 저서를 남겼다.
우루재 선생의 시 만흥(晩興)에 등장하는 느티나무 아래 창화재가 있었다. 원래 두 그루가 있었는데 한 그루는 오래되어 고사하였고 남아 있는 느티나무마저 썩어서 죽어가는 중이라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노괴(老槐)는 늙은 괴목을 일컫는 말로 보통 괴목은 느티나무나 회화나무를 가리킨다. 우루재 선생의 시 만흥(晩興)은 다음과 같다.
碧澗日千里(벽간일천리)/ 老槐春百年(노괴춘백년)
對時觀物化(대시관물화)/ 一喜一悽然(일희일처연)
날마다 흐르는 푸른 물길 천리인데/ 늙은 느티나무 봄을 맞기 백 년이구나
때때로 대하는 조화로운 사물마다/ 하나는 기쁨 다른 하나는 슬픔이구나
신천습지
버드리(유리) 앞에는 신천습지가 있다. 신천습지는 흔치 않은 하도습지로 만경강과 소양천이 만나면서 강폭이 넓어지면서 유속이 느려져 많은 하중도가 만들어졌다. 이 하중도는 새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환경부에서는 신천습지를 국가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해 부처 협의 중이라고 하며 협의가 완료되면 지자체 의견, 토지주 의견 등을 조사하고 그 후에 지정 여부가 결정된다고 한다. 신천습지는 생물다양성이 높고 희귀식물이 매년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이 찾아오는 철새도래지로 보호가 필요한 곳이다. 또한 용담댐 차가운 물이 만경강으로 유입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완주군 환경과에 확인한 결과 추가 유입계획이 아직은 없다고 한다.
생태와 환경은 미래 세대의 자원을 미리 당겨쓰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고 보호하는 일에 동참하여야 한다. 또한 만경강 개발은 최소한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자연 그대로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후손들에게 좋은 상태의 만경강을 전해주기 위해서는 만경강에 어떤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지 생태자원 조사가 필요하다. 일회성, 단발성이 아닌 일 년에 4번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진행되어야 하고 매년 실시하여 생태환경과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변화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100년 뒤에도 만경강이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