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수탈의 수단으로 건설된 철도 삼례에 철도가 처음 개통된 것은 1914년이다. 처음에는 전북경편철도주식회사가 운영하는 사철(私鐵)로 영업을 시작했다. 일본인 농장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서였다. 1899년 군산항이 개항되면서 군산항을 통해서 농산물을 일본으로 반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일본인들은 내륙 농장에서 생산된 쌀을 군산항을 통해서 일본으로 반출하기를 원했다. 당시 삼례에는 이엽사농장이 있었고, 동산에는 미쯔비시 계열에서 운영했던 동산농장 있었다. 인근 춘포에는 호소카와농장과 이마무라농장, 다사카농장 등이 있어 이들은 서로 뜻을 모아 사철(私鐵)을 운영하게 되었다. 일본인 농장에서 수확한 쌀을 현미로 가공해서 창고에 보관했다가 기차를 이용해서 군산항으로 보내졌고, 그 쌀들은 다시 군산항에서 배를 이용해서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일본인 농장은 쌀 수탈의 전초기지였고, 당시 철도는 수탈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삼례역 주변에 옛 창고들이 많이 남아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경강 철교 준공 경편철도는 그 이후 1927년 조선총독부에서 인수해서 국철로 흡수되었고 명칭도 경전북부선으로 바뀌었다. 1929년에는 협괘 레일을 표준괘로
완주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인 ‘만경강사랑지킴이’ 월례 활동으로 만경강 힐링도보테라피 제4구간 걷기 행사가 있었다. 1구간, 2구간 걷기에 이어 지난 4월에는 5구간인 봉동 상장기공원에서 삼례 비비정까지 벚꽃길을 걸었었다. 만경강 힐링도보테라피는 동상면 사봉리 만경강 발원지인 밤샘에서 시작해서 김제 진봉면에 있는 망해사까지 8개 구간으로 되어 있다. 올해 8개 구간 완주를 목표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번이 네 번째다. 만경강 힐링도보테라피는 1구간부터 순서대로 걸을 필요는 없다. 구간별 특성을 살려 걷는 것이 오히려 좋다. 5구간은 벚꽃이 피는 시기가 좋고, 이번 걷기 행사가 진행된 4구간은 금계국꽃이 피는 지금이 걷기 적당하다. 제4구간 걷기 컨셉은 플로깅이었다. 플로깅(plogging)은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을 말한다. 사실 만경강사랑지킴이는 조깅보다는 걷기를 좋아하는 팀이니까 천천히 걸으면서 만경강 모니터링도 하면서 쓰레기를 줍기로 했다. ‘플로깅’으로 진행된 걷기 행사 걷기 행사는 고산자연휴양림 입구에 있는 와일드푸드축제 주차장에서 시작했다. 야영하는 사람들이 다녀가면서 쓰레기를 버리고 가서 그런지 좀처럼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주차
봄이 찾아오면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은 기지개 켠다. 잠시 멈추어 있던 일들도 하나씩 챙기기 시작한다. 그러다 벚꽃이 필 즈음에는 마음이 바빠진다. 가도 싶은 곳도 많아지고 하고 싶은 일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빠도 빠트리지 말아야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완주가 자랑하는 벚꽃길 걷기이다. 완주에서 유명한 벚꽃길이라면 송광사, 구이저수지를 들 수 있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그곳을 찾는 것은 부담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거리 두기를 지키면서 벚꽃길을 걸을 수 있는 곳은 없을까? 있다! 만경강을 따라 피어있는 벚꽃을 보면서 걷는 길이 있다. 완주군 봉동읍 상장기공원에서 시작해서 삼례읍 비비정까지 가는 만경강 자전거길 구간이 좋겠다. 30리 벚꽃길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지 않는가? 걷기 시작점을 봉동 상장기공원으로 정했다. 만경강 물길을 따라 걷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상장기공원에서 봉동교를 향해 출발했다. 봉동교까지 가는 제방 길은 차가 없는 도로이다. 한쪽은 느티나무, 다른 한쪽은 벚나무 가로수로 되어 있어 묘한 대비를 보여준다. 벚꽃의 화사함에 느티나무는 싱그러움으로 응대한다. 강 둔치에 서 있는 버드나무도 물이 올라 연둣빛으로 물들었다.
(사진=김왕중) 평소 고산에서 대아저수지, 대아수목원, 밤샘 등을 다니면서 자주 만나는 나무가 있습니다. 길가에 늘어서 있어 마치 가로수같이 느껴지는 나무인데 본래 가로수로 심은 나무는 아니었습니다. 나무를 따라 도로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가로수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잘 가꾸어 놓은 가로수 길을 지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는 구간입니다. 고산면 소향리에 있는 안남마을 느티나무 보호수 군락입니다. 안남마을은 만경강이 흐르는 마을 앞쪽은 트여 있지만 마을 뒤쪽은 산이 감싸고 있는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에 마을이 들어섰습니다. 강 건너편 제방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강물이 마을 앞을 지나 활처럼 휘어서 돌아 흐르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요. 그 곡선을 따라 느티나무 군락이 줄지어 있습니다. 느티나무 수령은 200년이 되었고, 나무 둘레는 어른들 두 사람이 마주 잡을 정도입니다. 보호수 안내판에 소개해 놓은 글을 보면 안남마을 느티나무 군락은 깊고 깊은 대아골 물들이 모였던 곳에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나무를 심었답니다. 여기서 풍년을 기원했다는 의미는 홍수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마
수만리 마애석불 (사진=김왕중 기자) 허름한 모습의 안도암은 암자라기보다는 옛 시골집 풍경에 가깝다. 향수를 느끼게 하는 풍경이다. 암자를 지나면서 산 경사가 심해진다. 다행히 얼마 오르지 않아 마애석불이 나타난다. 엄청나게 큰 바위 위에 새겨 놓은 마애석불을 보면서 미소를 짓는다. 작은 목표 하나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의 웃음이다. 수만리 마애석불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4호다. 절벽에 새기는 마애석불은 백제시대부터 있었는데 수만리 마애석불은 통일신라 때 조성되었다. 마애석불 주변에만 유난히 진달래꽃이 활짝 피었다. 큰 바위가 바람을 막아주고, 햇빛이 잘 드는 곳이라서 그런가 보다. 정상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오르는 길이 없다. 할 수 없이 그냥 돌아서 내려갔다. 내려갈 때 보이는 풍경은 올라올 때와는 또 다르다. 발걸음이 한층 가볍다. 김왕중 기자
대아수목원 가는 길 완주 대아수목원을 찾아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다. 예쁜 꽃을 보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아수목원으로 가기 위해 지나는 길이 너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안남마을 앞을 지날 때 만나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줄지어 있는 풍경도 좋고, 대아저수지를 끼고 달리는 호반길의 고즈넉함도 훌륭하다. 이런 아름다운 길이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대아수목원을 가게 된다. 봄꽃과 눈맟춤하기 대아수목원에 들어서면 언제나 습관처럼 분재원을 먼저 돌아본다. 잘 가꾼 다양한 분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또 봄이 오기 전에 미리 봄꽃과 눈 맞춤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분재들 사이로 매화가 하얀 꽃잎을 드러낸다. 아직 바깥 날씨는 영하를 오르내리지만 기대했던 대로 매화가 꽃을 피웠다. 매화 향기를 탐하고 위쪽에 있는 열대식물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열대식물원 현관에 들어서자 꽃내음이 확 전해온다. 열대식물인 부겐베리아를 비롯해서 화사한 빛깔이 일품인 철쭉, 시클라멘 등등. 여러 꽃이 함께 피어 있어 현관이 환하다. 열대식물원 안에는 식물을 특성별로 분류해서 전시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사계절 언제 찾아도 꽃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원등사 약사전 멀리 보이는 등불을 보고 지은 절 완주군 소양면에는 송광사, 위봉사와 같은 잘 알려진 절이 있다. 그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가볼 만한 절이 또 있다. 원등사(遠燈寺)이다. 원등사(遠燈寺)는 신라 문성왕 2년(840) 고승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이 세운 천년 고찰이다. 그 후 임진왜란를 거치면서 폐허가 되었다가 진묵대사(1563~1633)에 의해 중창되었다. 중창 당시 일화가 의미 있게 다가온다. 진묵대사가 변산에 있는 월명암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멀리서 등불이 보여 백 리 길을 찾아왔다. 불빛은 원등사 터에 남아 있던 석등에서 나오는 불빛이었다. 진묵대사는 이곳이 성지임을 알고 절을 중창하고 이름을 원등사(遠燈寺)라고 했다. 멀리(遠) 비추는 등불(燈)을 보고 절터를 찾아 지은 절(寺)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원등사는 한국전쟁 때 다시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1985년부터 수련보살에 의해 재건되었다. 숨어 있는 천년 고찰 원등사는 천년 고찰이면서도 송광사나 위봉사만큼 알려지지 않은 것은 절이 청량산(715m, 원등산이라고도 부름) 정상 바로 아래에 있어 접근하기 어려워 그런가 보다. 원등사(遠燈寺)는 소양면 소재지를 빠져나와 전북체육고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