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공평하게 치료했어요”

장수한의원 이윤구 원장

“나는 항상 삼례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내 고향은 석전리이니까 석전초등학교(삼례동초등학교) 다니면서 전주로 통학했어요. 교통이 안 좋아서 자전차 타고 삼례역전까지 와서 기차 타고 학교 다녔어요. 기차가 연착하면 어떨 때는 학교를 12시에 가곤 했어요. 그때는 힘든 줄도 몰랐죠. 우체국 옆에는 삼례극장이 있었어요. 석전리에서 걸어와서 극장에 영화 보러 다니고 그랬는데. 군대생활하고 한의대 졸업하고 1년 서울에서 수련생활 한 거 빼면 거의 삼례를 떠난 적은 없어요. 지금 집은 전주지만 거의 삼례사람인 거죠.

 

완주에서 가장 오래된 한의원

 

84년 6월에 오픈했으니까 37년쯤 됐나? 원래는 천일약국 앞에 석전시계당에서 1년 하다가 시장 안으로 들어와서 대우슈퍼 있죠. 그 옆에서 좀 하다가 93년도에 이쪽에 집을 지어서 왔어요. 여기 와서 한 지도 거의 20년 되네요. 그때 여기는 시장이 아니었고. 이쪽은 아주 황망했어요.

 

의료기관이 귀할 때인데 큰 역할을 하셨겠네요

 

제가 개업했을 때 단독으로 개업한 사람은 나 혼자였어요. 한약방은 있었지만 한의원은 한두 군데 있다가 없어지고…. 완주군에서 거의 혼자 칠팔 년, 한 십 년 있었나? 완주군에서 거의 나 혼자 하다시피 했어요. 나중에 봉동에 하나 생기고. 그 후로 한참 있다가 한의원이 생겼어요.

 

그때는 병원이 삼성병원인가 하나 있었어요. 결혼하고 처음 개업했을 때였는데 자고 있으면 문 두드리면서 응급환자도 오고 그랬어요. 배 아프다고 오는 사람들도 있고. 임신 안 되는 사람들 약 지어줘서 임신 되게 해 준 적도 있었고. 한의원에서는 금전적인 것이 아니라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해서 낫게 할 때가 젤 좋죠.

 

 

 

원광대 한의학과 2기로 입학

 

옛날에는 한의원을 한약방하고 구분을 못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은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침 같은 경우도 한의원 아닌 곳에서 놓고 그랬으니까.

 

제가 한의대를 어떻게 갔느나면… 옛날에 닉슨이 중국 갔죠? 그때부터 한방이 앞으로 괜찮다는 인식이 많이 생겼거든. 원광대 한의대 생기고 제가 2기로 입학을 했어요. 내가 한의사로서 3천번 대니까 상당히 고참인 셈이죠. 우리 큰 할아버지가 석전리 약방집이었어요. 우리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집안을 거의 이끌다시피 하셨죠.

 

한의원 하면서 고향이니 좋고, 잘 알고. 크게 공과 없이 온 것만 해도 감사하고 고맙고 그래요. 밥 먹고 살고, 애들 가르치고. 치료 철학이라고 하면 뭐하지만 환자 빈부 귀천에 구애하지 않고 평등하게 진료해줬다는 자부심은 있어요. 어려운 환자라도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공평하게 환자를 봤어요. 돈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변두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