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론회에 참석한 유의식 의원, 윤수봉 의원, 송병주 대표, 손안나 기자. (좌측부터) ▲ 촬영에 분주한 방송사 관계자들 지난 8월 30일 완주 군의회 자치행정위원회실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원래는 군 의원과 행정 관계자가 있을 자리에 주민과 의원이 마주보고 앉아 지역 현안을 질의하고 토론을 했다. 이름하여 주민의 회 정상회담. “주민의회 정상회담”은 주민과 기초의원이 직접 지역 문제에 대해 소통하는 자리로 만들어졌다. 전북마을미디어네크워크, SK브로드밴드 전주방송에서 기획연출하고, 각 마을미디어가 함께 준비했는데, 전주 노송동과 우아동 편에 이어 세 번째로 <삼례사람들>에 바통이 넘어온 것이다. 의회에서는 유의식(삼례, 이서) 의원과 윤수봉 의원(삼례, 이서)이, 주민패널로는 <삼례사람들> 송병주 대표와 손안나 기자가 참석했다. 논의된 주제는 삼례시장(청년몰) 활성화 대책, 레미콘 공장 산단 입주 관련 문제, 완주 역사 박물관 건립, 신천습지 등 생태 자원 보호방안 등 다양했다. 예정에 없던 질문과 답이 오가면서 회의실의 열기가 뜨거웠다. 그중 가장 중요한 현안인 삼례시장 활성화 주제를 요약해 싣는다. 손안나 기자:
▲ <별이네>의 전별 대표 삼례시장 청년몰에 새로 입점한 가게가 있다. 로컬기프트샵 <별이네>. 별이네 대표 전별 씨는 “저희는 완주군 관광 기념품을 비롯해서 지역의 좋은 상품들을 발굴해서 판매합니다. 저희가 직접 디자인하고요, 또 지역의 알려지지 않은 분들의 상품도 알리려고 해요.” 가게 안에는 직원 두 명이 한창 디자인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고, 한쪽 벽에는 개발을 마친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언뜻 봐도 처음 일을 시작하는 분들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왜 청년몰에 입점하였을까? “지역이 쇠퇴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시장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고, 교류가 일어나는 곳이잖아요. 저는 시장이 갖고 있는 가치를 믿어요. 그거 하나 보고 들어왔어요. 청년몰이 발전하기 위해서 큰 지원보다는 우리가 어떤 제안을 할 때 잘 귀기울여 주시기만 해도 상인들에게는 해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아요.” 별이네 전별 대표는 지역의 상품제작자, 디자이너들이 <별이네>를 통해 자신들이 하고싶은 것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덧붙여 말하길, “적당히 일해서 적당히 사는 건 별로예요. 저는 적
▲ 박기순 농장 사무실. 지금은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 인제정미소 보존되지 않은 후정리의 문화 유산들 일제강점기의 역사 자원이 많지 않은데 삼례후정리에는 농업 수탈의 역사와 관련된 건물들이 남아 있다. 바로 박기순 농장사무실과 인제정미소이다. 특히 인근에 위치한 삼례문화예술촌이 당시 양곡창고였으므로 농장사무실과 정미소가 한데 묶이면 후정리 일대가 일제농업 수탈의 공간으로서 체계적으로 보존될 수 있다. 삼례는 일제 농업수탈 역사의 현장이다 일제는 만경강 주변의 버려진 갈대밭을 개간하여 농토로 만들기 위해 한반도에서 최초로 콘크리트댐인 대야댐을 건설하였고, 옥구에 간척한 평야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경천저수지와 대간선수로를 만들었다. 삼례에는 대간선수로의 일부인 독주항과 독주항을 만들 때 나온 석지장, 수탈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철도(삼례역), 양곡창고, 이리에 사는 일본인에게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양수장 등이 남아 있다. 삼례는 일제가 자행한 수탈의 첫단추이기도 했지만 극심한 수탈에 대항하여 싸운 농민들의 소작쟁의와 삼례역에서 등짐을 져나르던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이 격렬했던 항일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 전국 고등부 대회에서 우승한 후 부모님과 함께 한 윤대일 선수 삼례 사거리에 눈에 띄는 현수막 하나가 걸렸다. 현수막 하면 으레 정치인들의 추석 잘 쇠시라, 코로나 조심하시라는 내용이었는데, ‘누구 아들’ 하는 문구에 눈에 확 띄었다. “축 반도호이스트 윤수기 대표 아들 윤대일 배드민턴 국가대표 발탁”이라는 내용이다. ‘아, 그렇구나’ 하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현재 배드민턴 남자 국가대표가 20여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면 삼례에서 큰 인물이 배출된 경사임을 알 수 있다. 반도호이스트 윤수기 대표는 “원래부터 배드민턴을 좋아해서 삼례문화체육관에서 동호회 활동을 해 왔다. 자연스럽게 아들이 어릴 때부터 함께 배드민턴을 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운동 삼아 시켰는데, 삼례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점차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서 실력이 늘었다. 그래서 배드민턴부가 있는 봉동초등학교로 3학년 때 전학을 가서 본격적으로 선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후 완주중, 한림대학교를 거쳐 수원시청 실업팀에 들어갔고, 이번에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고 한다. 삼례에서 큰 경사가 나서 좋으시겠다고, 앞으로 국가대표로서 윤대일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해서
우리 삼례에도 최근 2~3년 사이에 아시아마트가 여러 곳이 생겼다. 그만큼 이주민이 늘고 있다는 증거이다. 국제결혼을 한 가정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이주 노동자 또한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우석대에 유학 온 외국인도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1990년대 이후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상품만이 아니라 자본과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들도 국경을 넘나드는 이주의 시대이다. 그런데 아직 단일민족 신화를 가진 우리 사회는 이주민 시대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이주민이나 혼혈을 우리와 다르다 하여 차별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인종차별은 가난한 나라에서 이주해 왔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주 노동자에게 더욱 심하다. 우리도 60~70년대 경제 사정이 어렵던 시기에 서독 파견 광부나 간호사 그리고 사우디 등 중동 건설자 파견의 경험이 있다.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 외국인 노동자 아니면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어렵고 힘든 노동 현장에는 일할 사람이 없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우리 삼례도 마찬가지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농업과 서비스업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더불어 우리나라에 와서 가정을 이루고 정착한 분들과 그 자녀들은 그 한 분 한 분이 삼례의 소중한
경작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꼬리명주나비…. 그러나 현재 멸종위기종이다. 먹이식물인 쥐방울덩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만경강 신천습지에는 쥐방울덩굴과 꼬리명주나비가 자생한다.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친구들이다.
방방곡곡 동네TV 전주 ♦️ 3분 49초에 정열을 정려로 정정합니다. 하리교회 뒤편에 있는 버드나무가 있다. 버드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다. 또, 수양아들이었지만 자기 부모를 극진히 모셨던 유영철과 일찍 결혼하였지만 남자를 일찍 여읜 남양홍씨.. 한 여름에는 풀과의 전쟁이기에 직접 들어가서 비석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손안나 기자의 블로그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흔히 교육은 국가백년지대계라고 한다. 오늘의 청소년 문제는 각 가정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며, 오늘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국가문제로 연결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너무너무 바쁘다. 심한 경우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꽉 짜인 일정표대로 사교육을 받기 시작하여 온갖 스펙 쌓기 등 무한경쟁 속으로 내몰린다. 아이들이 소위 내일의 성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포기당하고 있다. 또한 우리 거의 모든 부모들은 돈 들여 학원 보내고, ‘놀지 말고 공부하라’고 채근하면 성적이 오를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리고 자녀의 개성이나 특기는 아랑곳 않고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만 밀어대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일쑤다. 그 몰이해와 과잉기대는 아이들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한다. 어쩌다 아이가 집에서 재밌고 엉뚱한 상상을 털어 놓을라치면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고, ‘넌 어려서 아직 몰라!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돼’라고 강요한다. 영국의 교육학자 알렉산더 닐은 ‘어른들의 간섭 없이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면 스스로 자란다’고 말하였다. 저마다 다른 특징과 능력을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획일적이고 일방
대동세상 大同世上 명사,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울려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 진안 천반산에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정여립(1546~1589)이 있다.‘천하의 주인이 따로 없다’는, 왕권체제하에서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언사를 서슴지 않았던 반체제적인 인물 정여립. 금방이라도 폭발할 화약처럼 위험한 사상으로 장전되어‘대동세상’을 꿈꾸던 인물이었지만 한편으론 개혁과 실용을 앞세운 조선왕조 최초의 공화주의자이다. 그의 말은 선비사회인 조선에게는 벼락 치는 소리였고 천둥소리였다. ‘어찌 임금 한 사람이 주인이 될 수 있는가? 누구든 섬기면 임금 아니겠는가!’ ‘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랴 ‘인민에게 해가 되는 임금은 죽여도 괜찮고, 올바름을 실행하기에 부족한 지아비는 떠나도 괜찮다’ ‘백성과 땅이 이미 조조와 사마씨에게 돌아갔는데, 한구석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유현덕의 정통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여립. 그는 서인(西人)의 수장이었던 율곡 이이의 후원으로 승승장구했다. 거칠 게 없었으며 선조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이율곡도 그를‘당대 천재’라 말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율곡이 죽자 그는 동인(東人)으로 정치노선을
용규 씨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5년째다. 아직 50대 나이에 혼자가 된 용규 씨는 얼굴이 좀 어두워졌을 뿐 별로 달라진 것 없이 살아왔다. 20대인 두 딸은 이제 아빠가 새 여자친구를 만나도 된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도 좋은 사람을 만나서 새 출발 하라고 부추겼다. 그러나 용규 씨는 별로 내키지 않았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한사코 여자를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러던 용규 씨가 친구를 통해 그녀를 수소문한 것은 지난봄부터다. 친구와 같은 업종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근황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막상 연락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놓은 것도 없으면서 그녀 소식이 궁금했다. 친구와 만나 대포 한 잔씩 나눌 때마다 졸라댄 끝에 전화번호를 받았다. 뭐라고 말하지? 그녀도 결혼해서 아이와 남편이 있겠지? 나를 기억하기나 할까? 내가 혼자가 되었다고 하면 그녀의 반응은 어떨까? 장맛비가 몹시 쏟아지는 날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참 조심스럽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우리 한번 만나도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