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폭하다: 몹시 상하거나 불끈불끈 화가 치미는 듯하다. 전북 지방의 방언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나는 서울로 취직했다. 지방대 졸업예정자가 서울로 취직했으니 누구는 거창한 미래를 그렸고 IMF 때였으므로 누구는 지독한 질투를 하기도 했다. 거창한 곳도 아니었다. 작은 잡지사 취재기자였을 뿐. 물론 수습 3개월이란 꼬리표가 붙어있었다. 서울살이라고는 1년 남짓 재수 시절과 방학 때 아주 가아끔 상경했던 것이 전부였으니 나는 여전히 촌놈이었다. “허허, 사투리가 구수하고만”, ‘누가? 내가?’ 가끔 들려오는 말이었지만 나는 애써 내가 아니라고 최면 아닌 최면을 걸었다. 나는 표준어만 구사하는 거라고. 입사 후 첫 회식, 왁자지껄한 연탄구이집에서 껍데기와 갈매기살이 먹음직스럽게 불판을 오르내렸고 연거푸 따라주는 술잔을 넙죽넙죽 잘 받아넘겼다. 주위 소음 때문에 목소리는 자꾸 올라가고 나는 편집장과 선배 기자들에게 이쁨 아닌 이쁨을 떨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툭툭 두드리는 것 아닌가. 뒤돌아보자 초면인 사내가, 나보다 5~6살 위쯤 보이는 사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고향이 어디세요?”, “저요? 고향은 군산인데 자란 곳은 익산이에요.” 대답을 듣
“수면제 좀 주세요. 요즘 갱년기인지 너무 잠들기 힘드네요.” “수면제 많이 먹으면 안 좋죠?” 요즘 이런 질문을 물어오시는 분들이 부쩍 많아졌다. 나도 답이 궁색하다. ‘저도 어젯밤에 잠깐 잠들었다 새벽에 깨서 계속 망상만 하다 출근했어요.’ 속 이야기를 감추고 “잠들기가 힘드세요? 잠이 자주 깨세요? 혹시 최근에 드시기 시작한 약이 있으세요? 수면제 드신 지 오래 되셨어요?” 질문 공세를 해댄다. 잠을 푹 자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꿀잠을 자고 싶다. 신생아처럼 밤낮을 모르고 자고 싶다. 정말? 출근했다가 쏟아지는 잠을 못 이겨 누울 자리를 찾는다면? 태어나서 뇌가 여물어가면 아기는 낮에 자는 시간이 줄고 밤에 자는 하루 사이클을 익히게 된다. 노인이 되어 뇌가 퇴화를 거듭해 치매가 찾아오면 낮과 밤을 구분하기 힘들어 밤에도 불쑥 집을 나서게 된다. 그렇다면 뇌에 수면의 비밀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저 높고도 귀하신 뇌에는 수면, 식욕 등 기본 욕구를 조절하는 시상하부라는 중추가 있다. 노화는 피부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노안이 오고, 청력이 약해지고, 입맛이 변하듯 신경에도 노화가 온다. 시상하부에 신경의 퇴화가 와서
까페 마실 임은아 사장님은 이번이 첫 장사이고 올해로 3년차에 접어들었다. 원래 직장 생활을 하다가 역시 직장인의 ‘로망’인 까페를 창업했다. 그래도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지인의 까페에서 알바로 일하면서 2년을 준비했다고. 그 성실함이 드러난 것은 이번 거리두기 기간이었다. 사장님은 테이크아웃만 가능한데도 꼭 가게를 열었다. 삼례 신시장 건물에 위치한 <까페 마실> 임은아 사장님(사진=변두리 기자) “가게 문을 열어도 유지비가 더 나가죠. 하루에 정말 두세 잔 팔았어요. 연세 많으신 분들은 커피를 어디서 마시냐고 역정을 내신다니까요. 그래도 직장 생활할 때 습관대로 출근 하나만큼은 꼭 했어요.” 커피 맛이 좋다는 기자의 말에 반색을 하신다. “사실 테이크아웃이 1,500원이면 저렴한 편이잖아요. 그래도 원두는 제가 알바하던 가게에서 쓰던 비싼 거 그대로예요. 제가 커피 맛에는 자부심이 있어요. 얼마 전에는 커피머신 엔지니어 자격증도 땄어요. 사실 바리스타 하면서 기계를 분해해서 청소할 줄 모르는 경우도 많거든요. 손님들이 맛으로 거의 구별이 안 될지는 몰라도 저는 양심껏 기계도 관리하려고요.” 최근에 삼례시장 건물의 가게들이 벽을 터서
지난 해 군에서 <완주 기네스 재발견>을 발간했다. 각 분야에서 가장 최고의 기록들만을 모은 것이다. 그중에서 삼례에 있는 ‘최고 기록’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자. 시계점 개업은 경찰서에 신고 명화당을 운영하는 장동용 님은 우체국 맞은편에 있던 형님 가게에서 기술을 배워 1977년 현재의 자리에 개업을 하였답니다. 당시엔 시계가 귀중품이라 영업 신고를 경찰서에 했는데요. 업태가 고물상이었대요. 지금이야 시계가 흔전만전이지만 당시만 해도 혼수품으로 가격이 제법 나갔고 혹시 도둑맞거나 하면 장물로 나올 수 있어서 경찰서에서 관리를 했다고 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 43년째 영업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혼수품을 팔아 도망가려는 아줌마에게 ‘남편이 용서를 빌고 합칠 수도 있으니 사지 않고 보관해 주겠다.’고 하며 필요한 금액을 빌려 주었대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주머니가 다시 와서 남편이랑 화해했다고 물건을 찾아 갔답니다. 몇 번씩이나 고맙다고 인사하면서요. 가게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본의 아니게 인생 상담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답니다. (사진=손안나 기자) 4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 무거운 것을 털어 내야 한다는 것 /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지 않고 / 가벼이 가진 것을 내어 주는 것 /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 단단한 뿌리와 기둥만으로 / 겨울을 준비하는 것. 채유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중에서 겨울바람이 매섭다. 여름 태풍처럼 눈보라를 몰아 때린다. 남자는 바람에 쓰러진 쓰레기 봉지를 일으켜 세우며 마당 구석에 선 감나무를 쳐다본다. 하나 남은 까치밥마저 없어져 버린 감나무 가지에서 칼바람 소리가 난다. 이제 나도 다 벗고 저렇게 서야 하는가? 내 나이가 벌써? 남자가 쓸쓸해진다. 작은 창에 기댄 노을이 남기고 간 짙은 고독이 벌써 내 곁에 다가와 더없이 외로워져 남자는 얼른 나이 먹고 어른이 되고 싶었던 시절을 떠올린다. 별 맛도 없는 떡국을 후루룩 후루룩 마시면서 나이를 키웠던 시절이 있었지. 남자가 웃는다. 그렇다고 옛날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삶도, 뭐,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찮은 것 같다. 남자가 부르르 떨면서 집 안으로 들어간다. 보이는 건 어둠이 깔린 작은 하늘뿐이지만 내게 열려 있는 것 같아 다시 날 꿈꾸게 해 다들 그렇듯이, 남자는 나이
대아수목원 가는 길 완주 대아수목원을 찾아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다. 예쁜 꽃을 보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아수목원으로 가기 위해 지나는 길이 너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안남마을 앞을 지날 때 만나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줄지어 있는 풍경도 좋고, 대아저수지를 끼고 달리는 호반길의 고즈넉함도 훌륭하다. 이런 아름다운 길이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대아수목원을 가게 된다. 봄꽃과 눈맟춤하기 대아수목원에 들어서면 언제나 습관처럼 분재원을 먼저 돌아본다. 잘 가꾼 다양한 분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또 봄이 오기 전에 미리 봄꽃과 눈 맞춤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분재들 사이로 매화가 하얀 꽃잎을 드러낸다. 아직 바깥 날씨는 영하를 오르내리지만 기대했던 대로 매화가 꽃을 피웠다. 매화 향기를 탐하고 위쪽에 있는 열대식물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열대식물원 현관에 들어서자 꽃내음이 확 전해온다. 열대식물인 부겐베리아를 비롯해서 화사한 빛깔이 일품인 철쭉, 시클라멘 등등. 여러 꽃이 함께 피어 있어 현관이 환하다. 열대식물원 안에는 식물을 특성별로 분류해서 전시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사계절 언제 찾아도 꽃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생태와 건강 삼례에서 살면서 자랑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만경강이다. 호남평야의 ‘생명의 젖줄’이라는 경이로운 수식어가 참 따뜻하다. 우리 몸에도 만경강 같이 흐르는 것들이 있다. 태어나서 살아온 날 동안 끊임없이 혈관을 따라 피도 흐르고, 입에서 항문까지 우리가 먹은 음식을 따라가다보면 소화액도 흐른다. 겉껍질인 피부에도 물과 기름인 땀과 피지가 흘러 촉촉하고 윤기나게 보호하고 있다. 물론 콧물, 눈물, 소변도 다 흐르는 것들이다. 다 아는 것들인가? 그럼 혈관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볼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세포에 혈관이 다다르는데 이 가느다란 혈관을 모세혈관이라 부른다. 이곳에 이른 혈액은 혈관을 벗어나 세포사이로 흘러들어가고 종국에 세포에 필요한 물질을 넣어주고 세포가 만든 찌꺼기들을 받아 돌아온다. 이 미세한 흐름들은 무심히 일어나는 게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일 초도 게으름 없이 조절된다. 혈관에 흐르는 혈액, 세포 사이의 세포간질액, 림프관을 흐르는 림프액, 세포 안에 담긴 세포액 모두를 일컬어 체액이라 한다. 우리 몸 곳곳에는 체액의 양과 질을 감지하는 수용체가 있고, 여기서 감지된 정보를 뇌 깊숙한 시상하부 조절
지난 해 군에서 <완주 기네스 재발견>을 발간했다. 각 분야에서 가장 최고의 기록들만을 모은 것이다. 그중에서 삼례에 있는 ‘최고 기록’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자.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삼례에도 40년 이상 영업을 하고 있는 가게들이 있습니다. 5번 이사를 하였지만 여전히 '일진사'라는 이름으로 60년째 영업을 하고 있는 세탁소, 한자리에서 43년째 영업을 하고 있는 '명화당' 등 입니다. 기회가 닿는 데로 40년 이상 영업한 노포를 찾아가 인터뷰를 해 보려고 해요. 가장 먼저 60년 동안 영업하신 일진사세탁소 이락교님을 만나서 60년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일진사'세탁소는 1961년 처음 문을 열었는데요. 내 집이 아니니까 집주인이 집을 비우라고 하면 옮길 수밖에 없었대요. 이사를 5번이나 하였지만 읍내를 벗어나지 않고 여전히 삼례에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 일진사세탁소 가게를 처음 시작할 때는 사람들이 먹고 살기도 힘들어 세탁소를 찾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고 해요.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사장님은 새로운 영업 기법을 개발하여 돌파구를 마련했답니다. “아는 사람이 말하기를, 세탁물을 수거해서 세탁한 후 배달을 하라고 하더군. 바로
원등사 약사전 멀리 보이는 등불을 보고 지은 절 완주군 소양면에는 송광사, 위봉사와 같은 잘 알려진 절이 있다. 그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가볼 만한 절이 또 있다. 원등사(遠燈寺)이다. 원등사(遠燈寺)는 신라 문성왕 2년(840) 고승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이 세운 천년 고찰이다. 그 후 임진왜란를 거치면서 폐허가 되었다가 진묵대사(1563~1633)에 의해 중창되었다. 중창 당시 일화가 의미 있게 다가온다. 진묵대사가 변산에 있는 월명암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멀리서 등불이 보여 백 리 길을 찾아왔다. 불빛은 원등사 터에 남아 있던 석등에서 나오는 불빛이었다. 진묵대사는 이곳이 성지임을 알고 절을 중창하고 이름을 원등사(遠燈寺)라고 했다. 멀리(遠) 비추는 등불(燈)을 보고 절터를 찾아 지은 절(寺)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원등사는 한국전쟁 때 다시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1985년부터 수련보살에 의해 재건되었다. 숨어 있는 천년 고찰 원등사는 천년 고찰이면서도 송광사나 위봉사만큼 알려지지 않은 것은 절이 청량산(715m, 원등산이라고도 부름) 정상 바로 아래에 있어 접근하기 어려워 그런가 보다. 원등사(遠燈寺)는 소양면 소재지를 빠져나와 전북체육고등
나무와 마을 이야기 ▲ 하리 용전마을에 있는 느티나무 (사진=변두리 기자) 삼례나들목에서 전주 전미동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만경강에 들어서기 전에 하리(下里)가 있다. 예전에 회포면의 제일 아래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리에는 하리교회가 있다. 교회의 시초는 1950년 4월 16일 유정례 씨와 백한나 씨가 논에 천막을 치고서 건평 20평의 기공식을 가졌던 때에서 비롯했다. 1950년 7월 10일, 당시 임광호 전도사는 잠깐이면 된다고 하면서 런닝샤쓰 바람으로 삼례초등학교 치안대로 끌려갔다. 그때가 나이 27세로서 결혼한 지 4개월만이었다. 사모님이 수소문 끝에 찾아가니 그 와중에도 신자들의 안부를 먼저 물으셨다고 한다. 그 누가 알았으랴, 사모님은 유복자를 낳으시고 그로부터 3년간 교회를 지키셨다. 그 뒤로 아드님은 훌륭하게 성장하여 경기 지방에서 선친과 같은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삼례우체국 앞에서 열쇠를 깎으시는 하리교회 장로님에 따르면 그 나무의 수령이 약 3백년은 된다고 한다. 그러니 둥그나무가 그때의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들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러한 노목을 우리는 거목(巨木)이라고 한다. 내 고장 이야기를 말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