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사전 12

 

폭폭하다: 몹시 상하거나 불끈불끈 화가 치미는 듯하다. 전북 지방의 방언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나는 서울로 취직했다. 지방대 졸업예정자가 서울로 취직했으니 누구는 거창한 미래를 그렸고 IMF 때였으므로 누구는 지독한 질투를 하기도 했다. 거창한 곳도 아니었다. 작은 잡지사 취재기자였을 뿐. 물론 수습 3개월이란 꼬리표가 붙어있었다.

서울살이라고는 1년 남짓 재수 시절과 방학 때 아주 가아끔 상경했던 것이 전부였으니 나는 여전히 촌놈이었다. “허허, 사투리가 구수하고만”, ‘누가? 내가?’ 가끔 들려오는 말이었지만 나는 애써 내가 아니라고 최면 아닌 최면을 걸었다. 나는 표준어만 구사하는 거라고.

입사 후 첫 회식, 왁자지껄한 연탄구이집에서 껍데기와 갈매기살이 먹음직스럽게 불판을 오르내렸고 연거푸 따라주는 술잔을 넙죽넙죽 잘 받아넘겼다. 주위 소음 때문에 목소리는 자꾸 올라가고 나는 편집장과 선배 기자들에게 이쁨 아닌 이쁨을 떨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툭툭 두드리는 것 아닌가. 뒤돌아보자 초면인 사내가, 나보다 5~6살 위쯤 보이는 사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고향이 어디세요?”, “저요? 고향은 군산인데 자란 곳은 익산이에요.” 대답을 듣자마자 사내는 내게 소주잔을 불쑥 들이밀며 “반갑습니다. 저는 김제예요.”. 그때 알았다. 나는 서울 사람이 아니란 걸. 사내가 따라주는 소주는 달고 달았고 그제서야 나는 입안에 갇힌 말들을 편안하게 풀어놓고 있었다는 것을. 답답한 서울살이가 소주 한잔에 확 풀리는 느낌. 폭폭한 가슴이 대번에 트이는.

전라도 방언인 ‘폭폭하다’는 쉽게 말해 ‘답답하다’다. 하지만 표준어인 ‘답답하다’보다 한층 넓고 폭이 깊다. 나는 사춘기시절 어머니 가슴을 폭폭하게 많이도 만들었다. 폭폭한 가슴을 지닌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

한번은 경상도 사내와 술잔을 기울인 일이 있었다. 사내는 나와 의견이 자주 엇갈렸고 일하던 동료들과도 불협화음을 자아내는 일이 잦았다. 술잔을 사이에 놓고 동료들을 대신해 총대를 멘 것. 허나 이야기는 자꾸 겉돌았다. 말과 말이 꼬리를 물었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 폭폭하네”라고 말이 나왔고 그 말을 이어받은 사내가 “상짐하네” 그랬다. 상짐하네?

나는 사내에게 상짐하네의 뜻을 물었고 사내는 내게 폭폭하다의 뜻을 물었다. 술김이 오른 나는 장황하게 폭폭하네의 뜻을 알렸고 그 뜻에 더해 어머니의 멍든 가슴에 대해 말했다. 물론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그 덕에 경상도 사내는 장황한 설명이었지만 정확하게 폭폭하다의 의미를 알았고 이제 상짐하다의 뜻을 말할 차례였다. 그런데 사내는 “상짐하네라는 말을 아무 뜻도 없어요. 내가 만든 말이에요.” 이러는 것 아닌가. 이유를 묻자 처음 듣는 이상한 말 ‘폭폭하다’가 아무런 의미 없이 만든 말인 줄 알고서 아무 말이나 던진 것이란 것. 나와 그는 한참 웃었지만 폭폭한 내가, 폭폭해 할 동료들만 떠올랐다. 결국 나와 경상도 사내는 서로 폭폭한 가슴만 가지고 그날 술만 마셨다. 말을 하면 할수록 폭폭해졌으므로.

때론 백 마디의 표준어보다 한마디의 사투리가 정확하다. 온갖 미디어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사투리는 자꾸 설 곳을 잃어가고 어투마저도 설 자리가 없다. 오히려 넓고 깊은 사투리보다 좁고 좁은 외국어나 정체불명의 신조어들이 판을 친다.

말들이 폭폭한 일들을 만드는 시대다. 정체불명의 말들 덕에 맴이 짠하고 짠해서 어쩌쓰믄 좋을까. 당신과 나는 우리네 말들을 꼭꼭 쟁여 뻐뻣허니 꼬꼬시 서 있음 조컸다.

김성철

시인. 시집 『달이 기우는 비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