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어원 술은 알코올 성분이 있어 마시면 사람을 취하게 하는 음료로 주세법상 알코올 함량이 1% 이상이면 모두 술이다. 1103년 송나라 사신 손목이 고려에 다녀간 후 저술한 계림유사에 "고려에서는 술을 '수발(酥孛)'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 때 만들어진 《석보상절(1447)》에는 '수을'로 기록되어 있다. 수을은 수울로 다시 술(수발→수ᄇᆞᆯ→수을→수울→술)로 변화하였다. 酒(술 주)는 물 수(水)와 닭 유(酉) 자가 합해져 만들어졌다. 닭 유(酉) 자는 술을 담는 그릇을, 물 수(水)는 액체를 나타낸다. 酒(술 주)는 술 그릇에 담긴 액체를 의미하고 있다. 술은 언제,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아마도 술은 인류가 만든 가공 음료 중 가장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과일이나 우유는 조건만 맞는다면 자연적으로 발효가 진행되기에 수렵, 채집 시기부터 자연 발효된 술을 먹어 본 인류가 술 만드는 법을 찾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술의 처음은 원숭이와 관련이 있다. 보름달 아래 원숭이들이 바위나 나무 둥지의 오목한 곳에 잘 익은 산포도를 넣어두고 그 위에서 뛰놀다가 다음 달 보름날에 다시 찾아와서 술을 마시며 논다는 전설이 여러 나라에 있다. 원숭이
흉터 명사1 상처가 아물고 남은 자국 대여섯 살 무렵, 할아버지 댁에는 큰 개가 살았다. 곧게 솟은 꼬리마저 늠름했으니 덩치야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우직했다. 어린 꼬마의 눈에도 늠름함과 우직함은 경이롭게 다가왔고 직접 손으로 끌어봐야겠다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어른들이야 대여섯 살 사내아이에게 개를 직접 끌게 할 리 없었으므로 나는 때를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다. 살아있는 먹이 향해 웅크린 사자처럼, 소리 지운 치타처럼. 집안 가득 모인 어른들이 제사상으로 우르르 몰려들 무렵, 소리 없이 현관으로 향했고 입 벌린 신발 아무거나 발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 물소처럼 얌전한 개의 목줄을 풀었다. 그리고는 의기양양 대문을 여는 순간, 개는 순식간에 자신의 숨겨둔 엔진을 가동했다. 어설픈 어린 맹수를 흉내 낸 꼬마쯤은 안중에도 없었다. 허나 아이도 사내인 법, 목줄을 움켜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부지불식간, 움켜쥘 새도 없이 목줄과 함께 날았다. 늠름한 개의 반동에 마른 사내아이쯤이야. 거기에 더해 급히 신은 신발마저도 문제였다. 젊은 고모의 굽 높은 구두 아니었던가. 개는 놓쳤고 대문 앞 계단에서 구른 나는 벌떡 일어섰다. 자유를 만끽하며 이리저
고양이 동물. 고양잇과의 하나. 원래 아프리카의 리비아살쾡이를 길들인 것으로, 턱과 송곳니가 특히 발달해서 육식을 주로 한다. 발톱은 자유롭게 감추거나 드러낼 수 있으며, 눈은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볼 수 있다. 애완동물로도 육종하여 여러 품종이 있다. 창밖에서 튕긴 빗방울 하나가 이마를 적신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자동차의 경적이 내리기 시작하는 빗방울처럼 소란스럽다. 친구는 떠난 제 여인에 대해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친구의 음성 너머로 들려오는 경적소리에 귀를 세운다. 울음과 경적과 비. 나의 일상 속으로 느닷없이 뛰어든 몇 마리의 고양이들을 생각한다. 나는 동물들과의 친분관계가 그리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이모 댁에서 키우는 하얀 바탕에 검정 무늬를 지닌 나비라는 녀석은 잔정이 많은 이모부 덕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암컷 고양이였다. 나보다 2살 아래인 사촌에게 나비라는 녀석은 부하이자 때론 적군이었다. 거실 한가운데로 나비를 유인한 뒤, 허리춤에 찬 권총을 뒹굴며 멋지게 빼 들고선 탕탕. 나비는 퇴로를 차단한 거실 구석에 박힌 채 비비탄 총알을 맞을 때마다 움찔대고 있었다. 총알이 다 떨어져 장전하고 있는 사
기억 1. 과거의 사물에 대한 것이나 지식 따위를 머릿속에 새겨 두어 보존하거나 되살려 생각해 냄 2. 머릿속에 새겨 두어 보존되거나 되살려 생각해 내어지다. 기억은 쉽게 변질된다. 체형에 맞춘 옷처럼 나에게 맞게 변형된 채 기억은 저장되는 법. 누군가와 기억을 맞추는 날이면 ‘그랬던가?’라는 의문에 우리는 쉽게 노출되지 않던가. 또한 비슷한 상황과 상황이 기억 속에서는 쉽게 버무려진다. 맞다고 자신했던 기억이 다른 상황과 겹쳐지며 엉뚱한 기억으로 나를 인도하기도 한다. 어쩌면 내가 당신을 기억하는 방법 또한 변질과 변형과 버무려짐이지 않을까? 내가 나의 기억 속 당신을 나의 바람대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현듯 이러한 의문이 들기 시작하자 기억 속 모든 것들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만난 사람, 내가 겪은 일, 내가 처했던 상황, 상황, 상황들. 기억들을 꺼내어 나열하면 좋은 기억들이 지천이다. 물론 나쁜 기억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열된 기억들을 집어 올리면 웬만해서는 좋은 기억 아니던가. 당신과 나는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쁜 기억은 행방불명이 되었거나 회신 없는 편지 같다. 아마 당신은 나에게 눈을 흘기기도 했고 때로는
놀이 1. 여러 사람이 모여서 즐겁게 노는 일. 또는 그런 활동 2. 굿, 풍물, 인형극 따위의 우리나라 전통적인 연희를 통틀어 이르는 말 3. 일정한 규칙 또는 방법에 따라 노는 일 운동장에는 햇볕이 푸짐했다. 푸짐한 햇볕 따라 담벼락엔 줄줄이 책가방이 놓였고 시끌벅적한 웃음들이 가득 뛰놀았다. 땅따먹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비석 치기, 나이 먹기, 손 야구, 축구, 자치기, 구슬치기 등등. 왜 그리 놀 것들이 많았던지. 하나 끝나고 또 하나, 또 하나 끝내고 또 하나. 운동장은 심심할 틈이 없었다. 누구와 누가 다투기라도 한다면 우르르 몰려 싸움 구경도 하다가 이내 둘을 갈라놓기도 비일비재했다. 운동장에는 웃음과 땀과 가끔은 욕과 그리고 누군가의 울음과…. 깽깽이걸음으로 하던 오징어 게임(우리 동네에서는 오징어 마이로 불렀지만), 38선 게임은 조금은 사나웠다. 우리 편이 아니면 자빠뜨리거나 못 넘어가게 해야만 했다. 다리도 걸고 우악스럽게 멱살을 잡거나 밀치고 흔드는 일도 흔했다. 누군가가 씩씩거리거나 누군가가 울어야만 끝나는 놀이들. 그뿐만 아녔다. 여자애들이 고무줄놀이할 때쯤엔 고무줄 끊고 도망치기, 갈래머리 잡아당기기. 마치 맹수의 새끼들이 물
생각 1.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 2. 어떤 사람이나 일 따위에 대한 기억 3.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거나 관심을 가짐. 또는 그런 일 새해 벽두에는 의당 생각이 많아야 한다. 한해 농사의 기본인 계획 세우기부터 지난해의 마무리까지, 거기에 더해 도움의 손길이나 혹은 도움 받은 감사의 인사까지. 그것뿐일까? 사실 계획은 내가 하기 싫거나 이루기 힘든 일의 속성을 지녔다. 그러기에 차곡차곡 정성을 들여야 하며 단계를 밟아나가는 일 아니던가. 그러므로 계획은 생각이란 속성에 넣어두면 안 된다. 생각은 경계가 없고 제약이 없지 않던가. 오미크론 변이 덕에 새해 벽두를 책상에서 보냈다. 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하고 싶은 일이나 할 일을 미뤄두고 우두커니 앉았다. 벽두부터 나를 마주한 일이 없었기에…. 깨끗한 A4 한 장을 두고 펜을 들었다. 그리고 가감 없이 내 생각의 밑천을 보자고 했다. 1월 1일을 맞이한 새벽,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는 생각을 적어보자는 것이었다. 물론 거기에 원칙도 몇 가지 정했다. 자아가 개입하지 말 것. 든 생각을 고스란히 받아적을 것. 새해 나는 라면을 처음 먹고 싶다. 새해 나는 당신을 처음 만나고 싶다. 새해
한옥 : 한옥 우리나라 고유의 형식으로 지은 집을 양식 건물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나는 전주를 모른다. 복잡한 서울 지리도 한 번 지나간 길은 어림잡아 짐작하기도 하고 때론 정확하게 되짚어가기도 한다. 헌데 전주라는 도시는 나를 쉽게 길치로 만든다. 몇 번 다녔던 길도 이상하리만치 낯설고, 왔던 곳도 갔던 곳도 쉽게 길을 잃는다. 내비게이션이 생활화되었지만 나는 내비게이션을 믿지 않는다. 차를 세워 길을 묻고 손가락을 가리키며 길을 안내하는 우리의 역할을 앗아가 버린 이기적인 현대문물이라 치부하기 일쑤다. 물론 길에서 만나는 짧은 인연도 기대할 수도 없겠지만. 한옥마을로 향한다. 책상 서랍을 뒤져 예전에 얻어놓은 한옥마을 지도를 챙기고 카메라도 챙긴 뒤, 문을 열었다가 다시 들어와 지도며 카메라며 모두 내려놓는다. 아무것도 없이 운동화를 신고 휴대폰에 내장된 카메라만 들고선 한옥마을로 가기로 한다. 계획도 없고 대책도 없이 어스름이 깔린 초저녁 한옥마을로 간다. 어둑시니가 내려앉은 한옥마을, 골목골목이 오늘의 계획이고 여행의 목표이다. 시내버스에서 내리자 저녁의 향이 물씬 풍긴다. 장마는 아직 올라오지 않았고 저녁 바람은 한낮의 더위를 식히기 충분했다. 무
아파트 [명사] 공동 주택 양식의 하나. 오 층 이상의 건물을 층마다 여러 집으로 일정하게 구획하여 각각의 독립된 가구가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든 주거 형태이다. 북한어-고층살림집 나는 방금 13층 아파트를 삼켰다. 13층 아파트의 맛은 맵고 짜다. 좀 더 쉽게 말한다면 뜨겁고 매우므로 얼큰하다. 우리네 입맛에 뜨겁고 맵고 짜야만 하지 않던가. 그러므로 아파트를 씹고 삼킬 때 알싸한 얼큰함에 취해 땀이 봉긋 맺히는 이도 있고 허겁함에 기침부터 뱉는 이도 있다. 이 13층 아파트를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 ‘아, 전원주택 혹은 마당 있는 집을 선호하는 사람이겠군.’이라는 상상은 하지 마시길.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에서도 나는 즐긴다. 이 13층 아파트를. 아파트, 이 반듯하고 네모난 정형적인 틀을 가진 것들의 이야기가 뉴스에서 넘쳐난다. 몇 년 사이 누구는 억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리는가 하면 떨어진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사지 않고 버틴 사람들은 정부를 원망하며 아예 편을 갈아탔다라는 말도 들린다. 인구는 자꾸 줄어들어 국가의 존폐마저 위협한다는데 아파트들은 죽순처럼 대나무처럼 쑥쑥 들어서지 않던가. 집 맞은편 고층아
번역 [명사]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김. 얼마 전 한국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외국인 교수를 만났다. 떠듬거리는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프랑스어 사이를 눈치껏 오가며 서로 소통하며 웃고 떠들었다. 물론 약간의 술이 가미되었음은 물론. 술은 때로 사람을 과감하게 만들지 않던가. 영어는 귀동냥하는 수준이고 프랑스어는 귀머거리 수준이었으므로. 시를 이야기했고 이방인이 한국 생활에서 오는 낯섦과 한국어 음절이 외국인에게 들리는 묘한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인에게 프랑스어가 들리는 리듬감처럼 한국어도 외국인의 귀에 들리는 즐거움은 상당하다고 했다. 그러다 한국어의 깊이를 이야기했고 한국시의 깊이를 이야기 했으며 그로 인하여 얻는 번역의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다 그녀가 던진 말‘번역은 반역이다’. ‘그렇지, 번역은 반역이지. 한국인만의 정서를 프랑스어로 바꾼다고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해? 한국어의 뉘앙스를 프랑스어의 뉘앙스로 바꿀 수 있어야만 진정한 번역이지 않을까?’ 술김도 있었고 번역에 대한 여러 가지 상상의 나래가 펼쳐져 그녀의 말은 이제 들리지 않는다. ‘문학작품만 번역하지 않고 나를 번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정말 어
대동세상 大同世上 명사,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울려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 진안 천반산에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정여립(1546~1589)이 있다.‘천하의 주인이 따로 없다’는, 왕권체제하에서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언사를 서슴지 않았던 반체제적인 인물 정여립. 금방이라도 폭발할 화약처럼 위험한 사상으로 장전되어‘대동세상’을 꿈꾸던 인물이었지만 한편으론 개혁과 실용을 앞세운 조선왕조 최초의 공화주의자이다. 그의 말은 선비사회인 조선에게는 벼락 치는 소리였고 천둥소리였다. ‘어찌 임금 한 사람이 주인이 될 수 있는가? 누구든 섬기면 임금 아니겠는가!’ ‘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랴 ‘인민에게 해가 되는 임금은 죽여도 괜찮고, 올바름을 실행하기에 부족한 지아비는 떠나도 괜찮다’ ‘백성과 땅이 이미 조조와 사마씨에게 돌아갔는데, 한구석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유현덕의 정통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여립. 그는 서인(西人)의 수장이었던 율곡 이이의 후원으로 승승장구했다. 거칠 게 없었으며 선조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이율곡도 그를‘당대 천재’라 말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율곡이 죽자 그는 동인(東人)으로 정치노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