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진 봉서사에 깃든 진묵대사와 중태기 이야기

<필자 소개>

안녕하세요. "완주불교기행"을 연재하게 된 이준호입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완주가 고향인 아버지를 따라 10살 때 완주로 이사와 지금까지 살고 있으며, 2020년도에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전북지부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제 고향이자 조상 대대로 살던 곳인 완주 지역의 전통불교문화를 소개하고자 2022년 5월부터 "삼례사람들"지에 "완주불교기행"을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완주의 다양한 불교 이야기를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중태기라고 부르는 민물고기가 있다. 이걸 서울 사람들은 버들치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중태기는 주로 맑은 물에 살며 크기는 조그마해 주로 매운탕거리로 많이 해 먹는다.

중태기라는 이름은 “중이 태기(胎氣: 임신)한 물고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스님이 물고기를 임신하다니, 참 신묘한 일이다. 하여튼 그 중태기의 ‘중’이 누구냐면 석가모니의 소화신(小化身)이라 불렸던 진묵대사(震黙大師)다. 정확히는 진묵대사가 먹은 물고기가 바로 중태기인데, 이것이 뱃속에서 똥으로 나온 게 아니라 물고기가 산 채로 팔딱이며 튀어나온 데서 유래했다.

 

 

진묵대사가 하루는 절을 떠나 탁발하러 냇가 근처를 지나는데, 동네 불량한 젊은이들이 진묵이 지나가자 스님을 골탕 먹일 작정으로 물고기를 잡아 스님 앞에서 매운탕을 끓여놓고 “스님, 시장하실 텐데 매운탕 한 그릇 공양하시지요.”하며 조롱하였다. 진묵대사가 그들과 어울려 매운탕 한 그릇을 싹 비우고 나서 변을 보는데 매운탕으로 끓였던 물고기가 살아 움직인 채로 나왔다. 이를 본 젊은이들이 스님께 용서를 빌고 불가에 귀의하였다는데, 이 일로 인해 그 물고기는 “중이 태기(胎氣)한 생선”이라며 중태기라고 불렸다 한다.

 

진묵대사는 조선조 명종 17년(1562)에 지금의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에서 태어나 인조 11년(1633)에 완주 봉서사에서 입적했다. 조선 후기 고승인 초의선사가 진묵의 일대기를 모아 저술한 『진묵조사유적고』에 따르면, 진묵대사가 봉서사에서 출가하여 신중(神衆: 불법을 수호하는 신)에게 향을 올리는 일을 맡았을 때, 신중들이 주지의 꿈에 나타나 “부처를 수호하는 우리들이 어찌 감히 부처님께 향을 공양받겠는가, 원컨대 부디 향 올리는 소임자를 바꾸어 우리들이 밤낮으로 편안히 잘 수 있게 해다오.”라고 청했다 한다. 이 일화로 미루어볼 때 동자승 시절부터 진묵은 뛰어난 법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진묵대사가 수행하던 시절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었다.  같은 시기 활동하던 서산대사(西山大師)는 승병을 일으켜 왜군을 토벌하는 데 앞장섰지만 진묵은 깊은 산중으로 은거하여 참선 수도에 정진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전라도, 그 중에서도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진묵대사의 뛰어난 법력과 신통력을 다룬 전설들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는 걸로 볼 때 진묵은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고 홀로 참선수행만 한 것이 아니라, 전란으로 고통받던 조선 민중들을 불법(佛法)으로 위로해주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한 존경심에서 나온 전설 중 하나가 바로 ‘진묵대사와 중태기’ 이야기다.

 

 

  

 

 

 

 

 

 

 

 

 

 

 

 

 

 

 

 

 

 

 

 

 

 

 

 

 

 

 

 

 

 

나는 생선을 싫어해 중태기를 먹어본 일이 없지만, 아버지께서는 어렸을 때 학교 친구들과 냇가에서 중태기를 잡아 매운탕으로 끓여서 잡수셨다고 한다. 부친의 고향인 완주군 용진면 운곡리 지암마을에서 조금만 더 지나 간중리 봉서골로 가면 진묵대사가 출가하고 입적(入寂: 승려의 죽음)한 절인 봉서사(鳳棲寺)가 있다.

 

이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