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사전 13

물메기

물메기

물메기 [명사] 꼼칫과의 바닷물고기. 메기와 비슷하며, 반투명하고 연한 푸른 갈색 바탕에 그물 모양의 얼룩무늬가 있다. 배와 등이 지느러미로 둘려 있다. 한국 동해,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나는 초겨울 혹은 겨울 하면 생생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어스름이 질 무렵, 어머니께서 노을을 등지고 걸어오시는 모습. 한 손에는 보험 가방과 다른 손에는 생선 두어 마리를 들고 오시던 초겨울의 풍경이 지금도 생생하다. 엄마를 외치며 엄마 품으로 달려가면 손에 든 생선이 아들의 옷이라도 스칠까봐 조심히 안아주던 어머니의 시리면서 따뜻했던 품.

 

어머니를 따라 집에 들어와서 보니 그 생선은 주둥이가 크고 몸집도 일반 생선의 2~3배 정도는 큰, 아주 못 생기고 징그러운 생선이었다. 입은 터무니없이 크고 넓었으며 몸통은 흐물흐물한 것이 꼭, 물 많이 먹은 밀가루 반죽처럼 손으로 떼어내면 쉽게 떼어질 것 같았던 못난 생선.

 

어머니는 물메기라고 하셨다. 커다란 주둥이에 노끈이 꾄 채 두 마리가 바가지에 누워 있었고, 두 살 터울인 누이와 나는 서로를 닮았다고 놀려대며 퇴근한 어머니의 주위를 맴돌았었다.

저녁 밥상 위에 물메기탕이 올라오자 나는 숟가락으로 덥석 살점을 떠서 먹었다. 그러나 웬걸, 입안에 들어간 살점은 동태나 고등어 혹은 꽁치같이 고소하면서 맛깔난 게 아니라 스르르 녹으면서 사라지는 무덤덤한 맛이라고나 할까? 여하간 고기의 맛은 못생긴 외모 그대로 흐물흐물하며 기분 나쁜 맛이었다.

‘세상에 생선의 살점이 무너지는 맛이라니.’

어린 나는 연방 시원하다라고 외치며 맛있게 드시는 어머니의 입맛을 처음으로 의심했었다. 그 후 나는, 한동안 물메기탕을 좋아하지 않았다.

 

흔하디흔한 값어치가 없었던 물고기, 어머니의 말을 빌리면 한 다라이 가득 몇백 원이면 살 수 있었던 물고기. 보잘것없어 버려지거나 헐값에 팔렸던 물메기를 다시 만난 건 몇 해 전이다.

몇몇 지인들과 함께 겨울 변산을 구경한 다음 날, 숙취의 괴로움에 하나, 둘 깨어날 무렵 부안 지리가 훤한 선배가 우리를 시장 골목으로 안내했었다. 변산 하면 바닷가인데 바닷가가 아닌 시장이라니? 간판도 없는 3~4평의 작은 식당. 앉자마자 메뉴판도 쳐다보지 않고, 선배는 주인아주머니와 밀거래하듯 작은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이윽고 탕이 나오고 우리는 서둘러 숟갈을 탕 속에 담갔다. 한입 떠먹는 순간 왜 어머니가 떠올랐을까? 어렸을 적 맛보았던 스르르 사라지면서 무덤덤한 맛. 아니 무덤덤한 맛은 아니었다. 무덤덤한 듯하지만, 시원한 맛. 어머니께서 한 숟갈 물고선 연방 시원하다 외쳤던 그 맛. 부안에서 어머니께서 어릴 적 끓여주었던 그 맛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한 번 먹어보고 제쳐두었던 물메기탕이 비교할 수 없는 시원함으로 쓰린 속을 다독이고 부안의 겨울 추위를 짓눌렀다.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물메기탕에 대해 묻는다.

“어머니, *회현에서는 물메기를 뭐라고 불렀대요?”

“물메기를 물메기라 부르지 뭐라 부른다냐?”

“어머니는 물메기 좋아하시잖아요. 뭐 때문에 좋아하신대요?”

“아따, 할 일이 징하게 없나보네, 쓰잘데기 없는 걸 물어보고, 아 일이나 열심히 혀. 그리고 이번 주에 물메기탕 시원하게 끓여 놓을텡게 와서 가져가”라며, 전화를 끊으신다.

 

어느 코미디언처럼 못생겨서 죄송합니다가 아닌 못생겨서 그리운 물메기탕. 어머니의 ‘크으’ 감탄사와 시원하다라는 말을 이번 주말이면 듣는다.

 

*회현 : 군산시 회현면.

 

김성철

시인. 시집 『달이 기우는 비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