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결정하다

마당에 새싹이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봄이 왔다. 영하 17도까지 내려가는 강추위는 어디로 갔는지 봄은 오고야 말았다. 하지만, 내 마음엔 아직 봄을 맞을 여유가 없다. 내 소중한 친구가 죽음에 임박해 있기 때문이다. 말기암 판정을 받은 것은 불과 10주 전. 그 엄중한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했는데 발가락은 괴사되고, 폐에는 물이 차고, 흉수, 복수, 오른손은 마비, 간성혼수, 투석, 혈압은 곤두박질치고, 욕창, 끝도 모를 통증으로 마약성 진통제 없이는 잠 한숨 편하게 잘 수 없다. 하루하루가 삶에 대한 도전이다. 10주 전에 멀쩡히 약국에서 열정적으로 근무하던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몰골이다. 뼈와 피부가 붙어버린 모습이 안쓰럽다.

 

이놈의 암 덩어리가 온몸을 잠식하고서 먹고, 자고, 싸는 것, 숨 쉬고 소화 흡수시키는 것, 혈액을 돌리고 노폐물을 빼내는 생체 기능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비위관, 승압제 주입장치, 알부민과 영양수액제, 혈액투석으로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며칠 전부터 주치의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재촉한다. 마약성 진통제 때문에도 그렇고 투석을 하는 중간에도 혹시라도 심정지가 오면 심폐소생술을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를 1년처럼 죽음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중인데 그때가 오면 움켜쥔 손을 활짝 열어 삶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으란다. 환자에겐 사형선고처럼 처절한 요구이지만, 주치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이런 결정은 해줘야 한다.

 

2017년부터 발효된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해도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네 가지 연명의료를 중단하여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환자는 담당의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1명에게 말기·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진단을 받을 경우, 연명치료 지속·중단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이때 환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나타내야 한다. 그러나 환자 의식이 없고 환자가 연명의료계획서 등을 미리 작성하지 않은 경우에는 환자 가족 2인이 연명의료에 관한 환자의 의사를 진술하고, 그것도 없을 경우 환자 가족 전원이 합의해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

혼수와 각성을 오가는 중에도 친구는 연명의료계획서에 단호하게 치료중단 서명을 했다. 보내는 마음이 아리지만, 존엄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숭고한 결정을 눈물을 머금고 응원한다.

 

김선화 천일약국 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