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사전 14

독재 

민주적인 절차를 부정하고 통치자의 독단으로 행하는 정치. 고대 로마의 체제,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 따위가 그 전형이다.

 

독재자는 견제 받지 않는 절대 권력을 가진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의미한다. 보통 총리, 당수, 군 최고사령관, 주석 같은 칭호를 달고 있으며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다는 경우도 있다. 또한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경향의 사람을 빗대어 일컫기도 한다. 원래의 뜻은 ‘홀로(獨) 재단(裁)하는 자(者)’라는 뜻이다. 옷감을 자기 멋대로 가위질 하는 사람. 여기서 ‘재단하다’는 ‘옳고 그름을 가르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서슬 퍼런 가윗날로 스스로 옳고 그름을 가르는 자. 아니 어쩌면 가윗날을 쥔 당신의 손을 내가 마음대로 휘두르는.

 

어느 날 불쑥, 독재자는 나타나게 마련이다. 항거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벚꽃잎 같은 화사함과 달콤함으로 또는 자신의 개성을 바탕으로 이상적 세계관이나 사고관 혹은 그만의 독특함으로. 한번 들어앉은 이 몰상식한 독재자는 항거하면 항거할수록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내가 패배할 수밖에 없는 감정선을 만든다. 이 독재로 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스스로 피지배자가 되어 종속되고 마는, 그런 잔인함. 하지만 이 잔인함은 처연하면서도 기쁘고 슬프면서 황홀하다. 느닷없이 무슨 말이냐고? 나는 지금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수많은 사랑 중 아릿하고 막막하면서 애틋한, 첫사랑. 첫사랑은 독재다.

 

독재의 가장 치명적인 면은 독재의 잔인한 지배 아래 피지배자들은 스스로 종속되는 이념을 지닌다는 점이다. 체제를 거부하고 항거를 거듭할수록 혹독하리만치 되돌아오는 폭력-물질적, 정신적인 모든 것-은 육체는 물론이고 정신적인 피폐함마저 남긴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은 무기력한 체제 순응의 결과뿐만 아니라 목적과 이상 혹은 대상에 대한 사리 분별마저 무감각하게 만드는 법.

 

첫사랑을 품었던 나와 당신은 순박했고 깨끗했다. 아니 더러웠을지라도 그 더러움의 농도는 옅고 얕았으며 손으로 닦으면 쓰윽 닦아서 원래의 모습으로 쉽게 돌아왔다. 첫사랑의 이름만 가물대는 이 몹쓸 세월은 천진난만과 순박을 잃은 채 또 다른 독재로 가득하다. 물욕의 독재, 나태와 변주 없는 교만과 변화 없는 체제 순응으로 교착되어버린 독재. 나와 당신은 언제부터 이런 나태를 끌어안고 있었을까?

 

이런 못된 독재와 나와 당신이 씨름하는 동안, 동아시아 한 나라는 우리의 80년대보다 더 지독한 독재와의 투쟁을 하고 있다. 세 손가락을 펼치고 냄비를 두드리고 총과 대포에 맞서 맨몸으로 부딪히는 사람들. 그들의 절박한 투쟁과 자유를 나는 전적으로 응원한다. 우리가 금욕과 물질의 독재에 몰상식하게 순종하고 울부짖는 동안 자유와 민주라는 대의명분에 뛰어든 그들의 눈물겨운 싸움을 지지한다. 2021년 봄, 총칼의 독재와 싸우는 미얀마, 너는 봄이고 우리고 우리가 잃은 순박한 사랑이다. 핏빛 사랑이 아닌 따뜻하고 뜨거운 자유의 사랑을 찾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김성철 시인, 시집 『달이 기우는 비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