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지나, 사추기

생태와 건강

내게도 ‘사추기(思秋期)’가 왔다. 13세 막 피워낸 꽃봉우리 같던 사춘기(思春期)의 다른 쪽 사추기!

가슴이 봉긋하게 오르고, 허리가 잘록해지던 그 시절과 다르게 복부는 지방으로 차오르고 피부는 얇아지며 콜라겐이 지탱해주던 탄력은 급격하게 꺼지면서 주름이 늘어간다. 점막도 퍼석퍼석 건조하고, 갈라져 당긴다. 내 난소가 노화에 의해 호르몬 생산을 못 하고 있다는 증표를 다 보여주고 있다. 내가 모르고 있었지만, 사춘기 시절부터 여성호르몬이 피부, 점막을 보호했다는 건데, 알고 보니 이것뿐이 아니었다. 혈관, 신경, 뼈, 관절들이 이 귀한 호르몬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50대를 전후한 갱년기 때부터 현저하게 혈중 콜레스테롤량은 많아지고, 혈관의 탄력도 떨어져 고혈압, 협심증, 심근경색 등 심혈관계 질환이 이 나이대 남성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발생한다. 이 시기엔 갑상선 기능도 온전하기 힘든지 먹는 것도 없이 대사량은 줄고, 아랫배가 도톰해지고 체중은 늘어나면서 몸은 무겁고 기운이 없다.

그러니, 짜증스럽고 무기력하고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잠도 들기 힘들다. 이러다 치매 걸리는 것 아닌가 싶게 기억력도 떨어졌다. 앞으로 인생의 1/3을 이렇게 호르몬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게 공포스러운 일이다. 이제 호르몬에게 고별인사를 보내며 홀로서기를 할 것인가? 아님 내 몸에서 만드는 게 아니더라도 바깥 호르몬의 도움을 받을 것이냐 하는 선택을 해야 할 때이다. 아직도 갱년기 호르몬 보충요법은 논란이 많아서 상담해 오는 환자들에게 권하는 게 부담스럽지만, 나는 호르몬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기로 했다. 일단 내겐 유방암, 자궁암 같은 호르몬에 민감한 암 가족력이 없다. 흡연도 안 하고 혈관색전증도 없다. 현재 진행되는 담관질환이 없다. 그래서 해볼 만하다. 도미노처럼 이어질 고지혈증약, 고혈압약, 골다공증약을 먹을 기회를 최대한 늦추고 싶다. 물론 호르몬 보충요법만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매일 하고 있는 요가를 꾸준히 하고, 지금보다 음주를 줄이고, 굶지 않고 잘 먹는 것은 기본! 2019년 국내 여성의 기대수명은 86.3세!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는 사추기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30년이 결정될 수 있다는 진리를 믿는다.

김선화(천일약국 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