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상상력 사전

생각

1.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

2. 어떤 사람이나 일 따위에 대한 기억

3.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거나 관심을 가짐. 또는 그런 일

 

새해 벽두에는 의당 생각이 많아야 한다. 한해 농사의 기본인 계획 세우기부터 지난해의 마무리까지, 거기에 더해 도움의 손길이나 혹은 도움 받은 감사의 인사까지. 그것뿐일까?

 

사실 계획은 내가 하기 싫거나 이루기 힘든 일의 속성을 지녔다. 그러기에 차곡차곡 정성을 들여야 하며 단계를 밟아나가는 일 아니던가. 그러므로 계획은 생각이란 속성에 넣어두면 안 된다. 생각은 경계가 없고 제약이 없지 않던가. 오미크론 변이 덕에 새해 벽두를 책상에서 보냈다. 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하고 싶은 일이나 할 일을 미뤄두고 우두커니 앉았다. 벽두부터 나를 마주한 일이 없었기에….

 

깨끗한 A4 한 장을 두고 펜을 들었다. 그리고 가감 없이 내 생각의 밑천을 보자고 했다. 1월 1일을 맞이한 새벽,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는 생각을 적어보자는 것이었다. 물론 거기에 원칙도 몇 가지 정했다.

자아가 개입하지 말 것.

든 생각을 고스란히 받아적을 것.

 

새해 나는 라면을 처음 먹고 싶다.

새해 나는 당신을 처음 만나고 싶다.

새해 뜬금없는 짓.

새해 문자로 인사하는 짓 좀 제발 그만둬.

새해새해새해, 새해가 어제와 다른 게 뭐라고?

머릿속에 사는 너의 정체는 뭐냐?

...

기하학적 도형들과 함께 10여 분만에 종이는 가득 찼다. 금세 까매졌고 순식간에 잡다한 글씨들로 종이는 번잡해졌다. 뭔 생각들이 그리 많을까?

 

생각에는 진중함이 없었다. 나는 진중하지 못한 생각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가볍다. 새해에는 무겁지 말 것. 가볍되 경망하지 말 것. 아니 말 것 말 것이 아니라 생각나는 것들 중심으로 살아갈 것.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끔은 하기 싫은 것도 할 것. 생각에 몹쓸 근심, 걱정은 내쫓고 지금처럼 쉬운 것만 넣을 것.

 

새해 벽두에는 이렇게 가벼워서 좋다, 라고 건성건성 A4 끝자락에 썼다.

 

김성철 시인, 시집으로 『달이 기우는 비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