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놀이

1. 여러 사람이 모여서 즐겁게 노는 일. 또는 그런 활동

2. 굿, 풍물, 인형극 따위의 우리나라 전통적인 연희를 통틀어 이르는 말

3. 일정한 규칙 또는 방법에 따라 노는 일

 

운동장에는 햇볕이 푸짐했다. 푸짐한 햇볕 따라 담벼락엔 줄줄이 책가방이 놓였고 시끌벅적한 웃음들이 가득 뛰놀았다. 땅따먹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비석 치기, 나이 먹기, 손 야구, 축구, 자치기, 구슬치기 등등. 왜 그리 놀 것들이 많았던지. 하나 끝나고 또 하나, 또 하나 끝내고 또 하나. 운동장은 심심할 틈이 없었다. 누구와 누가 다투기라도 한다면 우르르 몰려 싸움 구경도 하다가 이내 둘을 갈라놓기도 비일비재했다. 운동장에는 웃음과 땀과 가끔은 욕과 그리고 누군가의 울음과….

 

깽깽이걸음으로 하던 오징어 게임(우리 동네에서는 오징어 마이로 불렀지만), 38선 게임은 조금은 사나웠다. 우리 편이 아니면 자빠뜨리거나 못 넘어가게 해야만 했다. 다리도 걸고 우악스럽게 멱살을 잡거나 밀치고 흔드는 일도 흔했다. 누군가가 씩씩거리거나 누군가가 울어야만 끝나는 놀이들. 그뿐만 아녔다. 여자애들이 고무줄놀이할 때쯤엔 고무줄 끊고 도망치기, 갈래머리 잡아당기기. 마치 맹수의 새끼들이 물고 뜯고 뒤엉키는 듯한 놀이 아닌 놀이들.

 

운동장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없었다. 물론 방학 때 운동장은 조금은 심심해했지만, 오후쯤엔 으레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여름엔 짧은 그늘 밑이 운동장이었다. 넓은 양지는 더웠으므로 그냥 땅덩어리에 불과할 뿐. 겨울엔 운동장도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지만 몽땅 눈이 내린다면 사정은 달라졌다. 여기저기서 몰려들어 눈싸움하고 처마 밑 고드름을 따 빨아먹거나 칼싸움을 즐겼다. 털장갑은 해지기 일쑤였고 눈을 몇 번 뭉치기라도 하면 축축해지는 요술을 부렸으니 동상은 흔했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시려도 누구 하나 주머니에 손을 넣는 녀석들은 없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면 눈 뭉치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었으므로.

 

그런 운동장에 까까머리 중학생 형아들이 나타나면 일시에 시끌벅적함도 웃음도 울음도 일시에 침묵이었다. 선도부 완장처럼 무서웠다. 누구를 겁주거나 윽박지르지도 않았는데도 긴장감이 운동장에 가득했다. 그러다 형아들이 운동장을 벗어나면 다시 일시에 웃음과 함성과 울음이 다시 뛰놀았다.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제일 걱정이 된 것은 바로 옆에 초등학교 운동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 그 시끌벅적함이 귀를 방해하는 건 아닐까? 라는 걱정. 방학 즈음이었으니 개학을 하면 시끄러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허나 3월이 가고 4월이 가고 5월이 되었는데도 학교 운동장은 종일 침묵만 지녔다. 베란다로 내다본 운동장은 웅크리고 앉아 조용히 땅바닥만 보고 있는 듯했다. 어느 날 불현듯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났다. 이렇게 청명하고 맑은 소리라니. 이런 맑음을 들어본 일이 있었던가. 서둘러 창문을 열고 아이들의 소리를 방안으로 들이고 쟁였다. 운동장에는 한 떼의 아이들이 체육시간을 즐기는 중이었다. 이 청량하고 귀 틔우는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사라졌다. 운동장은 종일 쭈그리고 앉아만 있고 귀찮게 구는 아이들이 없다. 작고 네모 반듯반듯한 학원에는 아이들이 그득하다. 거기에 더해 코로나도 큰 몫을 했다. 햇볕 푸짐한 겨울, 베란다 문을 열어 시원한 햇볕을 구경하다 바라본 운동장은 죽어있었다. 운동장뿐만 아니라 우리가 즐겨하던 놀이들도 죽었다. 운동장이 죽고 놀이가 죽었다는 말은 놀면서 배우는 규칙과 규율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억지를 쓰면 안 되고 땡깡을 피우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는 말.

 

문득 어릴 적 동무들을 죄다 불러 모아 심심해하는 운동장과 신나게 놀고 싶다.

 

김성철

시집으로 『달이 기우는 비향』이 있다.

 

 

 

 

운동장이 죽었다

 

 

운동장 담벼락엔 책가방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지

운동장은 심심할 틈이 없다고 투정 부리기도 했지만 우리는

아랑곳없었어 갈 곳이 어디 있겠어? 그 흔한

영어학원도 없었으니까 믿지 못하겠지?

 

돌도 놀잇감이었고 나뭇가지도 놀잇감이었어

돌을 던져 돌을 맞추고 돌을 튕겨

남의 땅도 따 먹었어 내 땅을 잃은 날엔 분을 못 이겨

친구 돌멩이를 걷어차기도 했지

못된 녀석들은 그런 나를 보며 웃기도 했지만 말야

나뭇가지로는 뭐 했냐고? 땅에 끄시고만 다녀도 재미났어

손으로 벽을 끄시고 집에 돌아가는 것처럼 말야

아무도 없을 땐 나뭇가지로 몰래

좋아하는 아이의 이름도 쓰기도 했지

누가 가까이 오기라도 한다면 발로 쓰윽

운동장은 많은 남자애 여자애의 이름을 꼬옥꼬옥 새겨놓았다고 해

 

가끔 운동장에 중학생 형아들이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운동장의 모든 것들은 멈추지 일시 정지 버튼 알지? 그것처럼 말야

팔뚝 규율부 완장처럼 늠름하면서도 무서운

 

운동장이 심심해질 때는 까만 저녁이 운동장을 배회할 때쯤이었어

누군가의 엄마가 누구야 밥 먹어 외치면 일시에 운동장은 심심해지는 거였지

담벼락 가방들도 죄다 집에 돌아가고

누구누구는 가방이 뒤바뀌기도 했지

가방이 서로를 닮아 똑같거나 비슷비슷했으니까

그러면 엄마 아빠 잔소리 피해 가방 바뀐 건 비밀

 

저녁 운동장은 텅텅 비었지

코로나 때문에 텅 빈 학교처럼 말야

언제부터 운동장이 죽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