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사전

기억

기억

1. 과거의 사물에 대한 것이나 지식 따위를 머릿속에 새겨 두어 보존하거나 되살려 생각해 냄

2. 머릿속에 새겨 두어 보존되거나 되살려 생각해 내어지다.

 

기억은 쉽게 변질된다. 체형에 맞춘 옷처럼 나에게 맞게 변형된 채 기억은 저장되는 법. 누군가와 기억을 맞추는 날이면 ‘그랬던가?’라는 의문에 우리는 쉽게 노출되지 않던가. 또한 비슷한 상황과 상황이 기억 속에서는 쉽게 버무려진다. 맞다고 자신했던 기억이 다른 상황과 겹쳐지며 엉뚱한 기억으로 나를 인도하기도 한다.

 

어쩌면 내가 당신을 기억하는 방법 또한 변질과 변형과 버무려짐이지 않을까? 내가 나의 기억 속 당신을 나의 바람대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현듯 이러한 의문이 들기 시작하자 기억 속 모든 것들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만난 사람, 내가 겪은 일, 내가 처했던 상황, 상황, 상황들. 기억들을 꺼내어 나열하면 좋은 기억들이 지천이다. 물론 나쁜 기억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열된 기억들을 집어 올리면 웬만해서는 좋은 기억 아니던가. 당신과 나는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쁜 기억은 행방불명이 되었거나 회신 없는 편지 같다.

 

아마 당신은 나에게 눈을 흘기기도 했고 때로는 짜증 섞인 비속어도 썼을 것이다. 나 역시 당신에게 큰소리를 쳤거나 말도 되지 않는 억지를 피운 날도 있었을 것이고, 당신이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 당신의 흉을 보고나 흠을 잡은 날도 있지 않았을까?

왜 그런 기억들은 죄다 사라지고 당신의 웃음과 맑은 소리와 깊고 단아한 눈동자의 색깔만이 기억날까? 이렇듯 좋은 기억들만 쟁이고 있다는 것은 분명 내 기억 속에 내가 들어가 기억을 오리고 붙이고 떼어내는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 시인이 말한 ‘잔인한 4월’ 도래했다. 당신의 웃음을 닮은 목련과 당신의 불그스레한 낮빛같은 벚꽃과 당신의 웃음소리 같은 청아한 바람이 지천이다. 이 환장할 꽃잎과 바람을 타고 먼 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있다. 여덟 번의 봄을 건너는 동안 여전히 아이들은 봄내음만 간직한 채 4월의 바다에 머물고 있다. 당신의 기억을 오리고 붙이고 떼어냈지만, 절대 건들지 말아야 할 기억도 있는 법.

 

8년이 흐른 지금도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심해의 바닷말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절대 건들지 말아야 할 기억이 있다. 4월이 되면 입김도 없는 심해의 추운 바다가 아이들을 추위에 떨게 하는 건 아닌지.

 

김성철

시인. 시집으로 『달이 기우는 비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