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고양이

동물. 고양잇과의 하나. 원래 아프리카의 리비아살쾡이를 길들인 것으로, 턱과 송곳니가 특히 발달해서 육식을 주로 한다. 발톱은 자유롭게 감추거나 드러낼 수 있으며, 눈은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볼 수 있다. 애완동물로도 육종하여 여러 품종이 있다.

 

 

창밖에서 튕긴 빗방울 하나가 이마를 적신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자동차의 경적이 내리기 시작하는 빗방울처럼 소란스럽다. 친구는 떠난 제 여인에 대해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친구의 음성 너머로 들려오는 경적소리에 귀를 세운다. 울음과 경적과 비. 나의 일상 속으로 느닷없이 뛰어든 몇 마리의 고양이들을 생각한다.

 

나는 동물들과의 친분관계가 그리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이모 댁에서 키우는 하얀 바탕에 검정 무늬를 지닌 나비라는 녀석은 잔정이 많은 이모부 덕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암컷 고양이였다. 나보다 2살 아래인 사촌에게 나비라는 녀석은 부하이자 때론 적군이었다. 거실 한가운데로 나비를 유인한 뒤, 허리춤에 찬 권총을 뒹굴며 멋지게 빼 들고선 탕탕. 나비는 퇴로를 차단한 거실 구석에 박힌 채 비비탄 총알을 맞을 때마다 움찔대고 있었다. 총알이 다 떨어져 장전하고 있는 사촌 동생을 뒤로한 채 겁에 질린 나비를 안으려 하자 날카롭게 스치는 괴성이 손등을 할퀴었다. 나비는 구하러 온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서너 줄기의 상처가 어린 손등에 각인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입학한 뒤 나는 군대에 자원입대했다. 작대기 한 개, 이등병 계급장이 초라하게 빛을 발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고참은 유류 창고 구석에서 새끼고양이를 입양해 왔다며 졸병들에게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머리 위엔 상병 계급장이 본드와 함께 붙어 있고 몇몇 졸병들은 기상과 함께 ‘필승’ 경례를 붙이곤 했다.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졸병들의 경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미를 잃은 새끼는 날카로운 쇳소리를 질러댔고 그럴 때마다 야생의 발톱이 고참의 검정 가죽장갑 위로 날아들었다. 나일론 끈이 작은 녀석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새끼고양이는 군대라는 집단문화에 대한 반감을 단식으로 표명했고, 며칠 뒤 싸늘한 내무반 바닥에 누운 채 빳빳해져 있었다. 그 녀석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졸병이 짊어져야만 했다. 고양이의 아버지라 불리길 원했던 고참은 눈물도 흘리지 않은 채 슬퍼하며 우리 탓을 했었다. 밤마다 욱신대는 꿈이 나를 눌렀다.

 

눈 내린 어느 새벽. 아파트에서 내려가 밤새 내린 눈 위를 걸었다. 5m 남짓한 집 앞 골목을 막 벗어나려는 찰나, 발 앞으로 새카만 고양이가 나보다 먼저 눈 위로 발 도장을 찍고선 1톤 트럭 밑으로 숨는 것이었다. 관계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마흔 몇 해를 넘긴 발자국이 거북스럽게도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가슴을 꼬집었다. 아직 엔진이 식지 않은 용달차 앞에 웅크린 채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바퀴 축 밑에 쪼그려 앉은 채 나를 훔치는 고양이를 나도 같이 바라봤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그에겐 경계 대상이었다. 그의 경계가 풀리지 않자 나는 일어나 동네를 헤매었다. 고양이에게도 자기만의 영역이 있는 법. 나도 고양이를 따라 발자국의 경계를 그렸다. 집 앞에 도착할 즈음 가로등 밑에 앉아 나를 바라보던 고양이가 느긋한 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새해를 맞이하는 가슴 속엔 그 누구와도 편한 관계를 그리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다.

 

며칠 전 컴퓨터를 하다 문득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졌다. 인터넷을 뒤지며 기르기 쉬운 종들에 대해 알아보고 만나는 사람마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졌노라고 말을 한다. 나를 아는 몇몇 사람들은 허황된 고양이의 복수담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도시에서 외롭게 야성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어떤 이는 외로움이 그리움을 만든다며 애인의 필요성에 대해 말을 한다. 술잔을 받고 주고 그러는 사이 얼큰한 취기가 내 몸을 감싸고 나는 집으로 향하며 고양이에 대해 생각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느닷없이 내 일상으로 뛰어 들어오는 고양이들. 살아 숨 쉬는 것들. 꿈틀대는 것들. 어두운 뒷골목에서 그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란다. 문득 거울 속의 발가벗은 내 모습을 본 듯도 하고, 얼굴을 마주하면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모습이 못난 놈들끼리는 서로들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 내일 혹은 모레쯤 그 어떤 고양이가 다시 내게 덤벼들까? 고양이 그리고 나.

 

 

김성철

시인, 시집으로 『달이 기우는 비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