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 역사(驛舍)의 변신, 쉬어가삼[례:]

 

삼례역이라 하면 기차가 정차하는 역이라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역사 기록으로 보면 1914년 처음 기차역이 생겼던 것보다 아주 많이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려사에는 제8대 현종顯宗(1010~1031 재위)이 1010년(현종 원년) 거란의 침입을 받아 나주로 몽진하는 과정에서 삼례를 거쳐 갔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현종은 1010년 12월 28일에 몽진길에 올라 그 다음 해 1월 8일 삼례역에 도착했다. 당시 전주절도사 조용겸은 현종이 전주에 머물기를 청했지만 물리치고 장곡역(長谷驛, 후에 앵곡역으로 바뀜)에서 유숙하고 나주로 향했다.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 1168∼1241)에 관련된 기록도 있다. 전주목 사록겸장서기(司錄兼掌書記)로 있던 이규보는 1200년 5월 제20대 신종神宗(1197~1204 재위)에게서 새로운 관직 하사표를 받고 서울로 올라가면서 삼례역에 들러 말을 갈아타고 지은 시를 남겼다. 이렇듯 삼례역의 역사는 기록에 남아 있는 기간만 보더라도 천 년이 넘는다. 삼례가 예부터 지리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일대의 역로를 관활하던 삼례도의 중심이 되는 찰방이 주재하는 역이었다. 당시 삼례역은 전주 반석역·앵곡역, 임실 오원역·갈담역, 임피 소안역, 함열 재곡역, 여산 양재역, 태인 거산역, 정읍 천원역, 고부 영원역, 부안 부흥역, 김제 내재역 등 12개 역을 거느렸다. 한양에서 전라도로 들어서는 초입에 있는 삼례는 반석역과 앵곡역으로 갈라져 통영과 해남으로 나아가는 통로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 1914년 이리(익산)에서 전주를 잇는 협궤철도(폭 762mm)인 전북경편철도가 개통되면서 지금의 삼례역이 탄생되었다. 전북경편철도는 당시 일본인 농장에서 생산한 쌀을 포함한 농작물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행을 시작했다. 1927년 조선총독부는 사철인 전북경편철도를 매입해서 국철로 변경하고 선로 이름도 경전북부선(慶全北部線)으로 명명했다. 이후 협궤철도를 표준 광궤(폭 1,435㎜)철도로 바꾸면서 이리역(현 익산역) 호남선 선로와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삼례 역사(驛舍)는 일본 양식이었다. 인근 춘포역에 남아있는 역사(驛舍)와 비슷한 구조였다. 1997년 오랫동안 사용했던 일본식 건물을 철거하고 현대식으로 재건축했다. 당시 우뚝 선 신 역사는 발전하는 삼례의 상징이기도 했다. 2013년 삼례역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구 역사(驛舍)는 100년 동안 지속해 왔던 역할에서 물러났다. 완주군에서는 비어 있던 구 역사(驛舍)를 매입해서 2013년 ~ 2017년 기간 막사발전시관으로 사용했고, 2021년 ~ 2022년은 완주문화 공유 공간으로 활용했다. 2023년에는 완주역사문화 전시 공간인 ‘쉬어가삼[례:]’으로 개관해서 운영하고 있다.

 

 

‘쉬어가삼[례:]’은 삼례역 100년 역사와 의병, 동학농민혁명, 독립운동 역사 관련 콘텐츠를 전시하고, 완주 여행자에게 관광 정보를 제공하고 쉼터가 되어주고 있다. 역사 관련 전시장에는 나라를 지킨 완주의 의병(義兵)과 역참(驛站)을 주제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글씨가 빼곡하게 담겨있어 느긋하게 볼 필요가 있다. 쓱 지나가면 남는 것이 없을 수 있다.

 

완주 의병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웅치전투이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한양을 점령하고, 평양까지 차지한 왜군이 전쟁이 장기전으로 갈 것을 예상되자 조선을 분할통치하려는 계획에서 전라도를 공격하게 된다. 금산, 용담, 진안을 차례로 점령하고 웅치를 통해 전주성으로 진출하고자 했다. 관군과 의병들은 웅치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했다. 비록 왜군이 웅치를 넘어 안덕원까지 진출했지만 이곳 전투에서는 왜군을 크게 무찔러 전주성을 지켜낼 수 있었다. 웅치전투를 이끌었던 김제군수 정담, 해남군수 변응정, 의병장 황박 장군에 관련된 이야기도 소개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내용도 보여주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기 전 1892년 11월 2차 교조신원운동이 삼례에서 열렸고, 1894년 1차 동학농민혁명 봉기 때에는 완주에서 최초 동학교도로 알려진 박치경이 고산지역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1894년 9월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 때에는 삼례에서 동학농민군을 재조직하여 공주 우금치로 향했다. 동학농민군은 우금치 전투에서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패하게 된다. 우금치전투에서 패한 후 후퇴하던 일부 동학농민군은 고산현 산천리와 고산읍에서 두 차례 전투를 벌였으나 다시 패배한 후에 대둔산으로 들어가 최후까지 항전을 했다.

 

이렇듯 삼례를 포함한 완주군 곳곳에 동학농민혁명의 숨결이 스며있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완주 인물도 소개하고 있다. 1919년 3월 13일 전주 남문시장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봉동읍 출신의 김병학, 책을 통해 항일을 하기 위해 삼례독서회를 이끌었던 삼례읍 출신 정병은, 삼례 학생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삼례읍 출신 장금암, 한 가문에서 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일문구의사(一門九義士) 등에 관련된 자료를 보여 준다.

 

 

 

 

삼례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휴식을 하면서 잠시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중간중간 정리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여행 기록을 남겨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절실하다. 이런 경우 카페를 이용하기도 하겠지만 복잡한 시간에는 편하게 앉아있기 불편하다. ‘쉬어가삼[례:]’은 여행 도중 정리하는 공간으로 활용해도 좋겠다.

 

쉼터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모든 사람들의 취향에 다 맞춰 책을 구비할 수는 없었지만, 잠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충분하다. 의자도 자유롭다. 의자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의자가 몸에 맞춰 대응해 준다. 몸이 움직이는 대로 다 받아주어 편안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휴식을 해도 된다. 여행에서 지쳐 있을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쉼의 시간이 필요하다. 쉬어가삼[례:]’은 그런 여행객들에게 유용한 공간이 될 것이다.

 

 

 

쉬어가삼[례:]’건물은 예전에는 삼례역으로 사용되면서 삼례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했다면 이제는 완주 역사를 공부하는 장이면서 여행객들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다. 삼례를 찾는 많은 사람이 쉬어가삼[례:]’을 이용하면서 즐거움을 공유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