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반마을에 도로 개통 공사… 석지장은 이전해서 보존키로

금반마을 새로 생기는 도로에 돌부처 자리해

삼례역과 대명아파트 사이에 금반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에 마을 아래쪽을 지나는 수로를 따라 도로가 새로 뚫릴 예정이다. 현재 공사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이다.

그런데 도로가 나는 자리 한복판에 돌부처 하나가 세워져 있다. 마을 어르신들에 따르면 이 돌부처는 당신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이 돌부처는 석지장(돌 지장보살)이라고 불린다. 돌부처라고 하지만 크기도 아기 부처인 듯 자그마하고 얼굴과 몸통도 윤곽만 남아 있을 뿐이다.

 

▲ 도로 공사 현장의 석지장 (사진=변두리 기자)

 

삼례 농업 역사의 일면을 보여주는 마을 문화재

수풀에 가려 방치되어 있던 석지장을 알린 손안나 작가에 따르면 석지장은 수로 공사와 관련이 있는 ‘마을 문화재’이다. 1770년에 삼례에 백대석이라는 부자가 있었는데 만경강의 물을 끌어오는 수로 공사를 했다. 공사 규모가 커서 큰 어려움을 겪다가 꿈에 송아지가 달리는 방향으로 수로를 파서 간신히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독주항(犢走項)이라는 수로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그때 땅 속에서 돌부처가 나와서 모셔놓고 제사를 지냈다. 세월이 지나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후지이 간타로의 불이농장에서 수로 확장공사를 할 때 같은 돌부처가 다시 나왔다. 땅 속에 있다가 두 번이나 발견된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 금반마을의 석지장은 1770년대에 발견되었다가 한 때 땅에 다시 묻혔고, 1930년대에 다시 발견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석지장은 현재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삼례의 농업사, 그 중에서도 수로 공사라는 큰 사건의 한 일면을 보여 준다. 수로를 새로 내는 것은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나 크고 어려운 공사였고, 그것을 대변하는 것이 독주항의 석지장인 것이다.

 

(사진=변두리 기자)

 

표지판 설치 등 지속적인 관심 필요

군청 도시계획과에 따르면 도로 공사를 할 때 이 석지장은 위치를 옮겨 온전하게 보존될 것이라 한다. 옮기는 위치도 수로의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재의 취지에 맞게 수로와 가까운 자리에 놓게 될 거라 한다. 이를 위해 금반 마을 주민과 협의를 하고, 예산에 반영하는 등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참에 표지판까지 달아서 석지장이라는 마을 문화재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변두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