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사장은 조용히 6호 닭 한 마리를 꺼낸다. 오늘은 카레 치킨이다. 150도로 예열된 기름에 넣고 중불로 15분. 침착하게 여유 있게, 시간을 최대한 소비해야 한다. 180도 기름에 센 불로 잠깐. 기름을 뺀 뒤 카레 가루를 뿌린다. 오늘 처음 튀긴 닭. 생맥주도 한 잔 따른다. 오래 돼서 그런지 호프 향이 삭았다. 맛이 별로다. 한숨이 나온다. 김 사장이 닭을 튀겨서 생맥주를 혼자 마시는 것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아니다. 그건 핑계다. 실은, 오지 않는 손님을 마냥 기다리는 자신이 불쌍해서 그러는 것뿐이다. 외롭다.
이 작은 소읍에 치킨집이 너무 많다 싶었어도 김 사장은 자신 있었다. 배달도 제법 있었고, 무엇보다도 단골 주객들이 테이블과 영업시간을 채워 주었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 유명 메이커 치킨집이 들어오고부터는 배달 주문이 뚝 끊겼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주객들의 발길도 끊어졌다. 전단지도 돌리고 스티커도 붙이고 다녀봤지만 떠나간 첫사랑처럼 손님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치킨집 사장이 치킨 튀기는 법을 잊어버려서야 되나. 그래도 외롭다 젠장.
그대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하필 라디오에서 이런 노래가 나온다. 이렇게 간절하게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렸던 적이 언제였던가? 첫사랑의 전화를 기다릴 때도 이보다 초조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 그때는 화장실에 갈 때도 전화기를 가지고 다녔지. 전화기가 고장 났는지 몇 번이고 수화기를 들어 발신음을 확인하곤 했었지. 첫사랑 그녀와 열정을 불사를 때가 좋았어. 김 사장은 전화통을 바라보며 잠시 웃어 본다.
그대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가끔씩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신다 /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외롭다는 것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 느끼는 단절감이다. 격리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 실제로 뇌에서 통증 반응을 보인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 김 사장은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다. 첫사랑의 그녀가 내 진정을 알아주지 않았을 때도 아팠었다. 지금은 내 진정을 몰라주는 손님들이 야속하여 아픈 건가 보다. 무엇보다도 이놈의 코로난지 뭔지 하는 유행병, 정말 원망스럽다.
눈이 내리면 눈길 걸어가고 /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라 / (중략) / 산 그림자도 외로움에 겨워 한 번씩은 마을로 향하며 / (중략) / 그대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 그대 울지 마라
(‘수선화에게’, 정호승 시 / 이지상 곡 / 안치환 노래)
산 그림자도 외롭다잖아. 하느님도 외로움을 탄다잖아. 혼자 태어나 혼자 죽는 인생, 외롭지 않으면 이상하지. 평생 제 마음대로 된 일이 얼마 되나. 그래도 살아왔는데 뭘. 김 사장은 맥주를 홀짝이다가 거울을 들여다본다. 아직은 허우대가 멀쩡해 보인다. 그럼 됐지 뭐. 이참에 가게 내부 수리나 해 볼까? 김 사장이 라디오 볼륨을 올리면서 웅얼거린다. 그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장진규(조경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