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 청자, 추자, 그리고 순이

김추자, <님은 먼 곳에>

장진규의 <노래로 보는 세상>

 

 

‘청자 피우는 남자에게는 선도 보지 말고 시집가라.’ 흡연 자체가 질병으로까지 취급되는 요즘 시대에는 참 어처구니없는 말이겠지만 ‘청자’ 담배가 처음 나왔을 때 그 인기가 어땠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표현이다. 워낙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담배 파는 가게에 ‘금일분 청자 매진’이라는 문구는 당연한 일이었고, 보급소에서 담배가 풀리는 날에는 다방에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였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다방에서 담배를 팔았다는 사실도 흥미롭겠지만 말이다.

 

한편, 김추자의 등장은 트로트 일변도의 한국 대중음악계에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었던 모양이다. 음악 스타일뿐만 아니라 무대 의상, 화장법, 몸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생소한 것이어서 대중들의 입에 빠짐없이 오르내리는 논란거리였다고 한다. 더구나 그 당시 다른 가수들과는 전혀 다른 빳빳한 자존심 또한 무수한 가십거리가 되었고 여러 사건 사고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 당시 김추자가 워낙 인기가 높아 생긴 일들이다.

 

‘청자’ 담배와 가수 김추자는 똑같이 1969년에 등장했다. 청자는 한국 최초의 고급 담배라는 타이들을 달고 출시됐고, 김추자는 한국에서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스타일로 바람을 일으켰다. 둘 다 그 당시 최고의 히트 상품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유행어까지 퍼지게 됐다고 한다. 참 어려운 일이지만, 새로운 세계를 여는 건 이렇게 많은 이들을 흥분시킨다.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 님이 아니면 못 산다 할 것을 /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 / 마음 주고 눈물 주고 / 꿈도 주고 멀어져갔네 / 님은 먼 곳에 영원히 먼 곳에 / 망설이다가 님은 먼곳에

님은 먼 곳에(유호 작사, 신중현 작곡, 김추자 노래)

 

김추자 노래 중 최고는 뭐니뭐니 해도 ‘님은 먼 곳에’라는 생각이 든다. 이 노래가 지금까지 꾸준히 소비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면서 재탄생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님은 먼 곳에’를 다층적으로 되살린 작품 중에 영화 ‘님은 먼 곳에’가 있다. 수애 주연의 이 영화는 월남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부모님들의 혼인 결정으로 자기를 쳐다보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한 ‘순이’라는 여자의 이야기다.

 

순이는 부모도 모르게 파월 장병으로 떠나버린 남편을 찾아 월남으로 가기로 마음먹는다. 우여곡절 끝에 위문공연단 일원이 되어 월남에 도착한 순이. 그러나 순이네 밴드는 연줄도 없고 실력도 없어서 공연할 곳을 찾지 못한다. 순이는 힘겹게 노래와 춤을 배우면서 점점 군대에서 통하는 가수 ‘써니’가 되어간다. 결국 써니는 ‘님은 먼 곳에’를 불러서 장병들을 매혹시킨다. 미인계를 써서까지 결국 남편을 찾은 순이는 사선을 넘어 만난 남편의 뺨을 사정없이 갈겨댄다. 그 손길에는 얼마나 많은 애증이 담겨 있었을까.

 

여기서 ‘청자’ 담배를 언급한 것은 김추자가 70년대의 아이콘으로서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를 말하기 위해서고, 영화 ‘님은 먼 곳에’까지 연결시키고 있는 이유는 노래 한 곡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지를 말하기 위해서다. 좋은 노래는 듣는 사람의 노래가 된다. ‘님은 먼 곳에’를 들으면서 어떤 이는 월남전을 떠올리고, 어떤 이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회상할 수도 있다.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할 수도 있고, 내 삶의 회한을 담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심정이랄 것도 없이 자꾸 읊조린다.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장진규(조경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