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꽃은 내 무덤에 놓지 마세요”

전북의 시인들이 미얀마 민주화 연대 시집 발간해

붉은 꽃은 놓지 말아요

 

김성철

 

엄마, 가슴에 붉게 꽃이 폈네요

총부리에서 건넨 꽃이 환하게 폈어요

뜨거운 가슴이 사랑을 앓는 듯해요

어쩌면 나도 모르는 열병이 순식간에

폈나 봐요

 

엄마, 가슴을 꽉 채우는 이 뜨거움은

뭘까요?

막내는 여전히 골목을 돌고 뛰고

어리고 어린 동심 풀고 있나 봐요

막내를 잡아 두세요 꽃은 옮고 옮아

눈물로 핀대요

 

엄마, 혁명이 자유가 가슴에서

불타올라요

가슴이 불에 오른 것마냥 뜨거워요

차가운 총부리에서 옮아온 꽃은 붉고 붉어서

눈물도 사랑도 말랐어요

 

막내가 가슴 꽃을 보고 울어요

붉은 꽃은 왜 눈물로 필까요

내가 부르는 자유와 평화와 푸름이

막내 눈을 덮을 때까지

붉은 꽃을 내 무덤에 놓지 마세요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전북 시인들의 미얀마 민주화 연대시집 『붉은 꽃을 내 무덤에 놓지 마세요』가 출간되었다. 시집에는 전북작가회의 회원들이 창작한 미얀마 민주화 연대시 20편과 산문 1편이 수록되었다. 수록할 작품의 선정과 번역 과정에서 미얀마 현지의 작가, 번역가가 참여하였다. 시집은 한국어-미얀마어-영어 3개 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책은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십시일반 독자들의 뜻을 모아 제작되었다. 인터넷 서점 등에서 구입 할 수 있다.

미안마어 옮긴이 SDM은 미얀마에서 태어나고 자라 한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전라북도에서 대학 생활을 하였고, 한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한국어를 체득하였으며 졸업 후 고국인 미얀마로 돌아가 생업과 함께 틈틈이 미얀마문학(소설)을 한국어로 번역 소개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계기로 전북작가회의 의 『붉은 꽃을 내 무덤에 놓지 마세요』 번역을 담당하였으며 미얀마 현지 시인들과 함께 번역 시를 감수하였다. 군부의 감시 때문에 본명은 밝히지 않고 미상의 이니셜 SDM으로 명명하였다.

 

다음은 본지 칼럼 저자인 시집에 수록된 「시인들의 말」, 이병초(전북작가회의 회장) 시인의 「발문」 옮겨놓는다. 시인들이 뜻을 세우고 시집으로 묶여 나오게 된 과정이 잘 담겨 있다.

 

시인들의 말

 

움직은 모든 것들을 향해 쏘라

어제 들려온 미얀마에서의 군부 명령이었다죠

다섯 살 아이가 정치범수용이 되었고

두 살배기 아이도 수용되었다는 소문이 들려옵니다

미얀마에서는 흰 국화가 아닌 붉은 꽃이 

죽음의 주인이랍니다

사랑 고백의 상징이 미얀마에서는 죽음의 상징이죠

사랑, 희망이 부디 붉은 꽃 피우지 말기를

 

 

 

발문

 

미얀마의 봄!

 

이병초(시인, 전북작가회의 회장)

 

미얀마의 오늘이 절박하다. 2021년 2월, 미얀마 군부는 총을 들고 민주 정권을 찬달한 뒤 시민 1,000여 명의 목숨을 사살했다. 사망 공식 집계가 1,000명이라는 것은 더 많은 민주시민이 죽임을 당했다고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미얀마는 현재 물이 부족하고 코로나19가 들끓는 상황이며 산소 또한 부족하다. 생필품을 구해야 할 돈도 필요하다. 아니, 미얀마의 이 절박한 상황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미얀마 시민의 목숨을 틀어쥔 군부는 통신망을 차단했고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할 산소를 공급하기는커녕 물조차 주지 않았다. 은행 거래를 꽉꽉 틀어막았다. 미얀마는 고립되었다. 수천의 시민이 죽거나 다쳤고, 시민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인데도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입을 닫은 데다 중국은 미얀마 정부를 지지하고 있다. 미얀마 민주 진영은 9월 6일 쿠데타 세력에 정면 대응할 것을 천명했다. 여기에 국민통합정부(NUG) 두와 라시 라 대통령 대행도 대국민 연설에서 “군 테러리스트 통치에 반기를 들 것”이라며 미얀마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미얀마는 사실상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전북지회(이하 전북작가회의)는 2021년 2월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것을 묵과할 수 없었다. 전북작가회의 대다수 회원이 미얀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이 불행을 결코 좌시할 수 없다는 참여의 뜻이 형성되었다 이에 최우선적 사업으로 미얀마와 연대를 모색하게 되었다. 이얀마의 처참한 현상을 시의 정면에 두기 시작했고 이를 <전북일보>와 <전북포스트>에 연달아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말로 된 시를 한국의 전주에서 발표한다는 것은 한계가 분명했다. 전북작가회의 창작물을 세계에 알림으로써 미얀마의 오늘이 얼마나 생지옥인지를 호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저절로 생성되었다.

 

전북작가회의 지면에 발표된 ‘미얀마 연대시’를 먼저 영어로 번역하여 미얀마 현지의 시인 작가 및 번역가에게 전달했다. 한국어를 잘 아는 미얀마 시인들에게 우리말로 된 시가 먼저 당도하기도했다. 그들은 우리말과 영어로번역된 한국의 시편들을 미얀마어로 번역하여 그들의 지면과 게릴라 잡지 등에 게재하였다. 전북작가회의의 시인들은 치열하게 시를 써서 집행부에 보내왔다. 미얀마 시인들도 자기네 언어로 번역한 한국어 시편들을 보내왔다. 전북작가회의 집행부는 미얀마 현지의 시인 작가들, 번역가들과 긴밀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미얀마 연대시’ 총 38편 중 20편을 공동으로 선정, 책으로 출간하기(3개 국어: 한국어, 영어, 미얀마어)로 결정했다. 나머지 작품들은 e-book 또는 전북작가회의 기관지인 《작가의 눈》(2021년, 통권 28호)에 게재하기로 했다.

 

미얀마의 처참한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전북작가회의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성금을 집행부에 보내왔다. 지금도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있을 미얀마에 우리의 정성이 어서 전달되기를 바랐다. 집행부는 전북교육청과 연대하여 전북의 각 중학교에 시인들을 파견, 학생들에게 미얀마의 오늘을 알리는 데 주력했는데 시인들은 교육청에서 받은 원고료와 강연료를 성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집행부와 미얀마 현지 시인들과의 긴밀한 유대감은 지속되었다. 전북작가회의가 마련한 성금은 미얀마 작가 및 작가의 가족(군부에 의한 사망, 군부에 의한 행방불명)들의 생계비에 쓰이도록 하자는 데 합의했다. 미얀마 현지에서는 외화 유입에 대한 감시가 심해졌지만 전북작가회의 집행부는 안전 계좌를 확보하여 송금을 완료했다. 여기에 ‘미얀마 연대시집’을 출간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선뜻 시집 출간 비용을 보탠 분들도 있다.

 

현재 미얀마의 상황은 1980년 광주의 비극 그 자체이다. 군부는 헌법마저 개악하여 장기 집권 체제를 마련했고 중국, 러시아 등의 비호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은 죽음 앞에 노출되다시피 한 상황이다. 그러나 미얀마의 민주 시민들은 생계를 포기하고 지금 이 시각에도 투쟁에 나서고 있다. 자신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 한 개밖에 없는 자신의 목숨을 내놔야 하는 불행한 시대의 파수꾼이 되기를 자처하고 있다. 혁명은 사람의 가슴 속에 있다는 시인의 말을 듣고, 그렇게 말한 시인의 가슴을 칼로 도려낸 군부를 향해 기꺼이 죽음의 길로 가고 있다. 누구는 구식 총을 들었고, 누구눈 철판을 펴서 방패를 들었으며, 누구는 몽둥이를, 누구는 맨주먹으로 군부와 저항하는 것이다.

 

미얀마는 전시 상황이다. 현재 미얀마에서는 무고한 시민이 죽임을 당하고 있다. 정말이지 “민주주의는 염원이 아니라 의무”라고 울부짖던 미얀마 여대생의 피맺힌 목소리가 더는 세계인에게 소외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출간한다. 전북작가회의는 전라북도 및 전주시와 소통하여 SNS 등의 통신망을 확보해서 미얀마의 현실을 세계인에게 알리고자 한다. 양심을 가진 세계인들이 미얀마 현실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줄 것을 호소한다. 전북작가회의는 미얀마 쿠데타 세력이 미얀마 민주시민의 손에 이끌려 땅바닥에 패대기쳐지는 그날까지, 미얀마에 새봄이 오는 그날까지 이분들과 긴밀하게 연대할 것이며 지원할 것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