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 이것만은 지키자] 금반마을 석지장

삼례역에서 금반마을 앞으로 새로운 도로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 도로를 따라 대명아파트 앞 부근까지 가다 보면 길가에 위태롭게 서 있는 시멘트 구조물이 하나 있다. 안에는 석지장이 모셔져 있다. 도로 공사를 하기 전에는 밭 옆 둔덕에 안전하게 앉아 있었는데 공사를 하면서 밭을 밀어내고나니 길 옆 흙더미에 불안하게 얹혀 있게 되었다.  그래도 폐기되자 않고 이렇게라도 남아 있는 것은 석지장의 역사적 가치를 알고 있는 여러 사람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석지장은 대간선 수로 역사와 관련이 있는 유물이다. 대간선 수로는 고산 어우보에서 시작해서 봉동, 삼례 익산을 거쳐 군산 옥구저수지까지 이어지는 수로이다. 특히 금반마을 앞을 지나는 구간 1.2km를 독주항(㸿走項)이라고 부르는데 이름과 관련해 수로 공사 당시의 일화가 전해진다. “만경강의 숨은 이야기”의 저자 이종진 님이 1930년대 발간된 일본인 후지이 간타로(䕨井寬太郞)의 불이농장 홍보책자인 ‘불이농촌’에서 확인한 내용이다. 1790년경 삼례의 부자 백대석이 야산을 절개해서 수로 공사를 했는데 대단히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는 수작업으로 공사를 해야 하는데 바위가 많이 나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 꿈속에서 송아지가 달리는 방향으로 수로를 파라는 암시를 받고, 그대로 공사를 해서 완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수로를 독주항(㸿走項) 즉, 송아지가 달려간 길목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파낸 돌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는데 바로 지금의 석지장이다. 이 수로는 1909년 일본인과 조선인 지주들이 구입하기 전에는 민영익 소유였는데 당시는 방치된 상태였다. 1910년 지주들이 중심이 되어 전익수리조합을 설립하고 수로 개선 작업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석지장이 발견되어 집을 지어 보존하고 제사를 지내온 것으로 보인다.

 

 

 

석지장은 그동안 수난을 겪으면서 형태가 많이 변형되었다. 얼굴도 몸통도 윤곽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예술적인 가치는 잃었다는 의미이다. 아미 어쩌면 다른 민간 신앙 대상들이 흔히 그렇듯이 처음부터 예술적인 면을 고려하지는 않았을 수 있다. 그래서 석지장을 예술적 관점에서 보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역사적 관점에서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다면 석지장은 독주항(㸿走項)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230년 역사의 대간선수로와 함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문화유산임에 틀림이 없다. 석지장을 잘 보전해서 삼례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로 활용하길 기대한다.  

 

 

김왕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