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인연’과 헤어지기

슬픈 인연(나미)

오늘은 그와 이별하기 위해 캠프에 입소하는 날이다. 간단히 준비물을 챙기고 정해진 장소를 향해 출발한다. 자동차 속도가 올라갈수록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되는 느낌이다. 군대 가던 날이 생각날 정도로 떨린다. 이번에는 기필코 그를 떨쳐내 버리고 말아야지, 독하게 돌아서야지, 이렇게 마음먹는데도 한편으론 아쉬움이 파고들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인가. 오랜 세월 함께 해온 그를 쉽게 떨쳐낼 수 있을까? 한두 번 실패한 이별도 아니지 않은가. 아, 질긴 인연이여!

 

스무 살 적, 예쁘고 도도하기로 소문난 여자가 내 절친에게 고백을 했다. 담배 피우는 모습이 너무 멋있다고, 데이트 한번 하자고. 친구가 그 아름다운 여자와 연애할 때쯤 나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나에게 담배는 인사이자 위로이자 공감대였다. 용돈이 달린다고 하더라도 멀리하기엔 담배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담배는 헤어나기 힘든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입술을 나누면서 온갖 세월을 함께 했다. 깨어 있는 동안 가장 가까운 동반자였고 나를 위로해 준 친구였다. 그렇게 담배를 만난 지 40년이 지났다.

담배는 아픈 사연이었다. 어떤 여자 앞에서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청자 담배 한 갑을 다 피운 적이 있었다. 그러면 나도 친구처럼 멋있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여자는 눈을 흘기면서 떠났고 나는 어지럼증에 울타리를 붙잡고 속엣것을 게워냈다. 매력은 담배 연기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어떤 여자는 입에서 썩는 냄새가 난다면서 담배와 이별하라고 성화를 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도 차츰 담배를 끊어갔다. 담배를 즐기기엔 너무 척박한 환경이 되어갔다. 수많은 압력이 가해졌다. 한편으론 내가 이런 탄압 속에 버젓이 버티면서 담배를 피우고 산다는 것이 대견할 때도 있었지만 점점 힘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담배와 더불어 사는 일을 끝장내기로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중독물에 끌려가고 싶지 않다. 내가 담배를 피워서 몸에 이상이 생기고 병이 들고 일찍 죽는 것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 내가 피우는 담배 연기가 무조건 싫다는 사람들의 눈초리를 더 이상 견뎌낼 수가 없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나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젊은이의 조심스러운 지적을 그냥 넘길 수 없다. 담배 맛 나는 입술은 싫다는 ‘그녀’의 눈빛을 이겨낼 수가 없다. 그래, 이제 그와의 인연을 끊기로 하자.

 

금연 캠프를 향해 차를 몰고 가면서 나는 ‘슬픈 인연’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자꾸 떨면서, 그래도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면서 ‘슬픈 인연’을 불렀다. 담배와 이별하려니 아쉬운 것인지, 이제 드디어 담배와 이별할 수 있을 것 같아 벅차오르는 것인지, 담배 없이 사는 세월의 허전함을 예견하고 있는 것인지……. 나를 지나쳐 가는 옆 차 사람들이 키득거리는 것도 무시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 다시 올 거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담배, 아, 정말 슬픈 인연이여!

 

멀어져 가는 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 난 아직도 이 순간을 이별이라 하지 않겠네 / 달콤했었지 그 수많았던 추억 속에서 / 흠뻑 젖은 두 마음을 우린 어떻게 잊을까 / 아 다시 올 거야 /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 아 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올 거야 /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 사랑할 수 있을까 / 흐르는 그 세월에 나는 또 얼마나 / 많은 눈물을 흘리려나

(박건호 작사, 오자키 류도 작곡, 나미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