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강 상장기 마실길 산책

봉동교에서 상장기 공원까지

 

한낮의 햇빛이 아직은 따갑게 느껴지지만, 그늘에 들어서면 시원하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이다. 여름철 덥다는 이유로 잠시 걷기를 중단했다면 이제는 서서히 시동을 걸어도 좋은 철이 되었다. 완주군은 만경강이 동서로 길게 흐르고 있어 만경강 산책을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만경강 여러 산책로 구간 중에서 봉동교에서 상장기공원(봉동읍) 구간을 걸어보았다.

 

봉동교 근처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하고 만경강 제방에 섰다. 건너편 제방 쪽을 바라보았다. 원구만마을로 이어지는 길이다. 한때는 코스모스 꽃길로 유명했던 곳이다. 원구만마을 주민들이 코스모스 꽃길을 가꾸고, 꽃이 피면 마을축제를 열어 많은 사람이 찾아와 코스모스꽃 아름다움을 즐겼었다. 지금은 코스모스 대신 조팝나무를 심어 가꾸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노령화되면서 매년 코스모스를 가꾸는 일이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지금도 부분적으로 피어있는 코스모스꽃을 볼 수는 있지만, 예전에 보았던 코스모스 꽃길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제방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제방 왼쪽에 낮은 산이 보인다. 원구만마을은 이 산 뒤쪽에 있다. 지금의 제방이 있기 전에는 만경강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천내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원구만마을은 조선 개국 초기 2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태종)에게 패한 이방간(회안대군)이 유배 와서 살았던 마을이다. 이방간의 묘는 전주시 금상동 법사산 자락에 있지만, 마을에 있는 봉강서원에서는 이방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마을에는 전주이씨 재실이 있는데 이곳에는 이방간의 넷째 아들인 금산군(金山君) 위패를 모신다. 재실 앞에는 금산군 신도비도 있다. 바라보이는 산 중간이 금산군과 후손 묘역이다. 묘역 앞으로 물길이 지나는데 물가에 왕버들나무 보호수 한 그루가 서 있다. 수령이 200년쯤 된 나무이다.

 

 

만경강 제방에서 봉동교 방향으로 내려갔다. 봉동교 옆으로 징검다리가 있어 반대쪽 제방으로 건너갈 수 있었는데 물이 불어나 징검다리가 물에 잠겼다. 중간에 있는 나무로 만든 데크길도 장마에 손실되어 더는 건널 수 없다. 징검다리를 건너 반대쪽으로 건너며 주변 생태를 관찰하는 재미가 있는 곳인데 아쉽게 되었다. 곧 복구가 되리라고 기대하며 봉동교 밑을 통과했다. 산책로 옆에는 꽃밭이 조성되어 있다. 자주색 버들마편초꽃이 예쁘다. 함께 있는 키가 작은 해바라기는 이제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꽃 구경을 하고 다시 제방 위로 올라갔다. 이곳부터는 제방길을 따라 걷는 구간이다.

 

입구에는 벚나무 가로수가 심겨 있다. 벚나무는 아직 단풍 구경도 못 했는데 대부분 잎을 떨구었다. 벚나무는 봄에 일찍 꽃을 피우는 대신 겨울 준비도 빠른 편이다. 나무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나뭇잎을 떨군다. 벚꽃이 활짝 핀 시기에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벚나무 아래쪽에는 풀꽃이 보인다. 줄기에는 가시가 달려있는데 분홍빛이 감도는 작은 꽃은 예쁘다.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을 가진 풀이다. 옛날 시어머니들은 얼마나 며느리가 미웠으면 가시가 달린 풀을 밑씻개로 사용하라고 했을까? 이름을 듣는 순간 섬뜩해진다. 나팔꽃을 닮은 앙증맞은 꽃들도 보인다. 애기나팔꽃과 유홍초꽃이다.

 

 

 

만경강이 자랑하는 쥐방울덩굴 군락지도 있다. 쥐방울덩굴이 반가운 이유는 이 주변에서 꼬리명주나비가 살기 때문이다. 꼬리명주나비 애벌레는 쥐방울덩굴 잎을 먹고 자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쥐방울덩굴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쥐방울덩굴 잎 뒤쪽에 애벌레가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애벌레가 있다면 꼬리명주나비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찬찬히 스캔해 보았다. 정말 꼬리명주나비가 살랑살랑 날아다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하지만 좀처럼 사진 찍을 기회까지는 주지 않는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만경강 제방에는 고산에서 삼례까지 군데군데 쥐방울덩굴 군락지가 있어 산책하다가 운이 좋으면 이렇게 예쁜 꼬리명주나비를 만나게 된다.

 

꼬리명주나비를 뒤로하고 제방길을 따라 걸었다. 이 구간은 제방 좌·우측에 나무가 줄지어 있어 시원하다. 여름철에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구간이다. 제방길에서 강 쪽을 바라보니 보가 보인다. 보는 강물을 막아 농업용수로 활용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 저수지와 달리 일정 높이로 물을 가두고 남은 물을 넘쳐흐르도록 하고 있다. 물고기들이 올라갈 수 있는 어도도 만들어져 있다. 제방길 바깥에는 산에서 자라는 으름덩굴이 우거져 있다. 덩굴 사이로 열매가 보인다. 으름 열매는 국산 바나나라고 부르기도 한다. 크기는 바나나와 비교해서 훨씬 작지만 잘 익으면 껍질이 갈라져 하얀 속살이 보이는데 바나나가 연상되는 모양을 하고 있다.

 

 

만경강 제방 산책로를 걷다 보면 중간에 철제 아치 구조물이 있다. 덩굴 식물을 올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은데 텅 비어 있다. 그저 깔끔하다. 오히려 조형미가 있어 포토존으로 사용해도 좋겠다. 산책로에는 중간중간 쉼터가 있어 만경강 풍경을 바라보면서 잠깐씩 쉬었다 갈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하늘빛이 파란 날에는 강물조차 파랗게 물들어 멋진 풍경이 된다.

 

잠시 쉬었다 걷는데 다리가 보인다. 봉신교이다. 다리 근처에는 코스모스꽃이 많이 피었다. 파란 하늘과 코스모스꽃을 보니 가을이 찾아왔음을 실감한다. 코스모스꽃을 자세히 보면 긴 꽃잎의 설상화(舌狀花)와 가운데 노란색의 잔잔한 꽃들로 구성된 관상화(冠狀花)로 되어 있다. 노란 관상화는 작은 꽃 하나하나가 마치 별을 모아놓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왜 코스모스꽃이라 부르는지 이해가 된다. 봉신교 앞쪽에는 넓은 평지가 있다. 평지에는 씨름장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번 장마에 엉망이 되었다. 봉동은 예부터 씨름이 강했던 지역이다. 현재 표준이 된 왼씨름이 아닌 다리 샅바를 오른손으로 잡는 오른씨름을 했었다.

 

 

씨름장을 지나 봉신교를 지나면 멀지 않은 곳에 상장기공원이 있다. 상장기(上場基)는 윗장터를 한자로 표기한 지명이다. 예전에는 일반적으로 강가 넓은 공터에 장이 열렸었다. 상장기공원 부근의 만경강 제방은 멍에방천이라 불렀다. 마치 멍에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고산에서 흘러온 강물이 비봉 물길과 합해져 흐르다 앞대산에 부딪쳐 방향을 바꾸어 봉동읍 소재지 방향으로 흐른다. 물이 거셀 때는 제방이 무너져 물이 넘치는 위험이 있었다. 예부터 멍에방천 홍수를 예방하는 것이 큰일이었다. 제방을 튼튼하게 쌓고, 제방 바깥에 느티나무, 팽나무를 심어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했다. 지금도 상장기공원에 노거수들이 많이 남이 있는 이유이다. 줄지어 서 있는 선정비 역시 대부분 홍수 예방과 관련이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당산제를 지내며 무사 안녕을 빌었다. 그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

 

상장기공원을 마지막으로 만경강 산책을 마무리했다. 거리가 짧아서 왕복 코스로 이용해도 무리가 없겠다. 만경강 산책로는 어느 구간이나 공통으로 생태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걷는다면 더 의미가 있겠다. 특히 맑은 날을 선택해서 걷는다면 만경강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탐할 수 있을 것이다. 봉동교에서 상장기공원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대부분 그늘이 있어 시간과 관계없이 걸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걷기 좋은 계절이다. 만경강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가을을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