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129주년 기념행사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129주년 기념행사가 완주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주관으로 11월 4일 삼례봉기 역사광장이 있는 삼례문화체육센터에서 진행되었다.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완주에서 열린 아주 뜻깊은 행사였다. 완주는 동학농민혁명 역사에서 여러 번 조명 받았다.

 

동학(東學)은 1860년 최재우가 창도했다. 천주교 확산을 우려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서 서학이라 불렀던 천주교와 반해 동학이라 칭했다. 동학의 기본 사상은 인내천(人乃天)이다. 사람은 하늘처럼 떠받들어야 할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동학을 창시한 이후 포교를 시작하자 교세가 빠르게 확장되었다. 지배계층에게 철저하게 배척당하고 핍박을 받고 살아온 민중들에게 희망의 빛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조정에서는 동학이 사회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창시자인 최제우를 체포해서 1894년 처형했다. 최제우가 처형된 이후에도 동학의 교세는 꺾이지 않고 확대되었다. 최시형이 2대 교조가 되어 포교활동을 지속하면서 1892년~1893년에는 교조신원운동을 벌이게 된다. 동학을 창시한 교조 최제우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달라는 요구였다. 동학을 인정하고 포교를 허용해 달라는 의미였다. 1892년 10월 공주에서 첫 교조신원운동이 있었고, 그해 11월 1일 삼례에서 두 번째 교조신원운동이 열렸다. 삼례 집회에는 동학 지도부의 공식 승인을 받아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 수천 명의 교도들이 모였다. 삼례에서 이런 집회를 열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이곳은 예부터 교통 중심지로 역참을 관리하던 찰방이 있었고, 넓은 들판이 있어 추수가 끝나면 먹고 자는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삼례 지역은 동학이 일찍 전파되어 동학교도가 많았었다는 것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 이후 경복궁 복합 상소(1893년 2월 9일), 보은 집회(1893년 3월~4월), 금구(원평) 집회(1893년 3월)를 거쳐 고부 농민 봉기(1894년 1월 10일)로 이어졌다. 고부 농민 봉기가 일어난 배경은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이었다. 만석보가 제 기능을 하고 있는데 새로운 보를 주민들 위해 만든다며 백성들을 동원해서 일을 시킨 후에 보를 이용하는 농가에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이런 군수의 학정에 반기를 들어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고부 농민 봉기를 조사하러 내려온 안핵사 이용태는 민란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죄 없는 농민을 함부로 체포하고, 부녀자를 능욕하고, 재산을 약탈하는 가혹한 탄압이 계속되자 3월 13일 농민군은 해산하고 전봉준과 지도부는 인근에 있는 무장으로 피신했다가 무장 농민 봉기(1894년 3월 21일)를 일으켰다.

 

전봉준은 무장지역 대접주 손화중과 손을 잡고 다시 수천 명을 모집하여 최시형 탄생일에 맞춰 봉기하였다. 전면 봉기한 무장 동학농민군은 전주성을 점령하게 된다. 전주성 점령 직후 청일 양국의 군대가 출병했다는 소식을 듣고 화약을 맺고 자진 해산했다. 그 이후 전봉준은 일본군이 경복궁을 불법으로 침입했다는 변란 소식을 접하고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한 재기포를 준비했다. 삼례에 대도소(大都所)를 설치하고 동학농민군을 재조직하여 1894년 9월 말 2차 봉기를 하게 된다.

 

삼례를 출발한 동학농민군은 충청 경상도 농민군과 논산에서 합류하여 공주로 향했다. 동학농민연합군은 서울로 진격하기 위해 최대 관문인 공주를 전령해야 했다. 동학농민군의 봉기를 알게 된 조선 관군과 일본군은 공주 우금치 주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동학농민군은 수적인 우세에 있으면서도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을 이길 수 없었다. 우금치에서 크게 패한 동학농민군은 후퇴하면서 저항을 했지만 계속된 전투에서 패하고 일부가 대둔산으로 피신해서 끝까지 항전하다 산화했다.

 

완주군에는 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교조신원운동과 2차 삼례봉기가 열렸던 삼례에 삼례봉기 역사광장을 조성하고 대둔산에는 동학농민혁명 대둔산항쟁 전적비를 건립하였다. 이번에 진행된 행사는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129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렸다.

 

 

행사는 크게 1부 기념식과 2부 걷기 행사로 구성되었다. 1부 기념식은 식전 공연으로 시작되었다. 식전공연은 삼례농악팀의 공연으로 문을 열었다. 야외 행사의 경우 행사장 주변 길거리 공연을 통해 널리 행사 시작을 알리고 분위기를 띄워주는 역할을 했겠지만 실내 행사라는 것을 고려해서 행사장 실내를 돌면서 농악을 연주했다. 흥겨운 농악팀의 연주 소리에 행사장 분위기는 활기를 얻었고, 참석자들은 모두 농악팀 움직임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삼례농악팀의 공연이 끝나자 무대에서는 다음 팀이 공연을 준비했다. 4인조로 구성된 아리울고고장구 팀이다. 우리의 전통악기인 장구 연주에 그치지 않고 퓨전댄스를 겸비한 발랄한 장구 연주를 선사했다. 이어서 올라온 팀은 구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리로 노세 민요팀이었다. 소리로 노세 팀은 8년 전 구이면 상학마을 주민들이 서로 어울리기 위해 시작해서 지금은 주변 마을 주민들까지 합세해서 17명이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재능기부 공연을 하고, 국내외 단체와 교류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팀이다. 우리 민요를 구성지게 불러주어 식장의 분위기를 환하게 해주었다. 민요팀 식전 공연을 마치고 기념식이 진행되었다. 기념식에서는 내빈 축사와 완주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장의 기념사, 삼례봉기 역사광장 조성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감사패 증정이 있었다.

 

 

기념식을 마치고 2부 행사로 동학농민군과 함께하는 가족 건강 걷기대회가 열렸다. 행사 참가자들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가벼운 복장을 하고 삼례문화체육센터를 출발했다. 삼례농악팀이 앞장서 흥겨운 연주를 하면서 걷기대회 참가자들을 인솔했다. 걷기대회 행렬은 도로 앞에서 삼례농악팀의 배웅을 받으며 도로를 따라 봉동읍 방향으로 향했다.

 

허리가 굽은 주민도 참여해서 맨 앞에 서서 걸었다. 굽은 허리를 지탱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기기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걷는 모습을 보면서 동학농민혁명군들을 생각했다. 큰 뜻을 펼치기 위해 삼례를 출발해서 공주로 향하던 2차 봉기 동학농민혁명군의 발걸음을 떠올렸다. 도로 옆길을 따라 걷기 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비록 동학농민혁명군의 거대한 움직임에 비교되지 못할 정도이지만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되새기려는 의지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예상외로 날씨가 더워 땀이 흐르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밝은 모습으로 걷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기념식에서 사진 찍기에 바빴던 사람들의 얼굴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걷기 행렬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동학농민혁명을 기억하려고 스스로 찾아온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지역의 리더들이 함께 참여해서 주민들과 함께 걷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헛된 꿈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걷기 행렬은 삼례동초등학교 입구 육교를 건너 출발지인 삼례문화체육센터로 방향을 틀었다. 걷는 거리가 짧았지만 걷기 체험을 통해서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걷기 행사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했다. 오늘 행사 성격으로 볼 때 주먹밥 한 개 정도로도 충분한데 불고기를 곁들인 푸짐한 차림이 황송했다. 점심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공연도 이어졌다. 첫 번째 순서는 구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색소폰 합주 팀이다. 창단 1년차 신생 동호회이지만 분위기 있는 노래를 능숙하게 연주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다음 순서 역시 구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퍼프리고고장구 팀이었다. 장구의 맛을 살린 신나는 연주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이어 나온 팀은 삼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하모니카 공연 팀이다. 팀을 이끌고 있는 대표는 88세 연세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을 하모니카 연주로 선물해 주었다.

 

초대가수 공연도 있었다. 김유안 초대가수의 수준 높은 노래 덕분에 공연에 멋스러움이 더해졌다. 김유안 가수는 서울 태생이지만 부모님이 삼례에 살고 있어 그런 인연으로 특별히 시간을 할애해서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역을 위해 대단히 고마운 일이었다. 다음 연주는 아름드리오카리나 팀이다. 새소리처럼 소리를 내는 오카리나 연주를 아름답게 들려주었다. 공연의 마지막 무대는 필댄스장구 팀이 장식했다. 화려한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필댄스장구 팀의 재능을 아낌없이 보여준 무대였다.

 

 

공연을 마친 뒤에는 행운권 추첨도 진행되었다. 많은 참가자에게 기념이 될 만한 선물을 안겨주었다. 선물을 받은 사람도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사람도 모두가 흐뭇한 순간이었다. 행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행사를 마치고 비가 내려 다행이었다. 좋은 행사를 위해 날씨도 도와준 느낌이다. 행사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집을 향해 떠났다. 129년 전에 이곳 삼례에서 있었던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를 다시 생각해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