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의 농업유산 대간선수로를 걷다(1)

고산 어우보에서 삼례 찰방교까지

 

완주군 고산면 어우보에서 시작되는 대간선수로는 익산을 거쳐 군산 옥구저수지까지 가는 63km나 되는 물길이다. 1922년 완공된(준공식 1923년) 대아저수지와 같은 시기에 정비되어 대아저수지에서 공급된 물을 익산과 군산 지역 들판으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능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고 오히려 처음 목적과는 달리 완주 지역 들판을 적시는 역할이 추가되었다. 지나온 과정을 돌아보면 대간선수로는 분명 완주를 포함한 익산, 군산의 소중한 농업유산임에 틀림이 없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부분인데 마침 대간선수로 연구 팀 답사 일정에 동행하게 되어 함께 돌아보았다.

 

-고산면 어우보 어우취입수문

 

고산면 어우리 앞에 서서 고산면 소재지 방향으로 바라보면 만경강에 물이 가득한 것을 볼 수 있다. 보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부터 강에 보를 설치해서 물을 가둬 농사철 농업용으로 사용해 왔었다. 시멘트가 없던 시절에는 강을 가로질러 나무 말뚝을 박아 물막이를 해서 한시적으로 사용했다. 어우보에는 대간선수로로 물을 공급하는 취입문(어우취입수문)이 있다. 어우취입수문을 빠져나온 물은 어우마을을 지난다. 대간선수로의 시작이다. 대간선수로 옆으로 난 길을 이용해서 물길을 따라 걸었다. 마을 앞에는 빨래터 흔적이 보인다. 예전에는 빨래터 역할도 했나 보다. 마을 끝부분부터 일부 구간은 길이 없다. 수풀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대간선수로 서쪽 옆으로 옛 마을이 있었는데 홍수로 물에 잠겨 이전했다고 전해진다. 1920~30년대 지도를 보면 용암(龍岩)으로 표기된 마을인가 보다. 당시와 비교하면 대간선수로 서쪽에 있던 용암마을이 사라지고 대간선수로 동쪽과 어우취입수문 부근에 마을에 생겼다.

 

 

어우마을을 빠져나간 물길은 비봉면 방향에서 흘러온 천호천과 만난다. 천호천을 만나는 지점부터는 잠관(潛管)을 통해 천호천 밑으로 흐르다가 봉동읍 율소리 방향으로 빠져나간다. 잠관은 두 물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서로 물이 합해지지 않고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 한쪽 물길을 관을 통해 다른 하천 아래쪽으로 흐르도록 할 때 사용한다. 잠관 출구가 있는 건너편 천호천 제방은 석축으로 보강되어 있어 멀리서 보아도 구분된다. 그 앞쪽을 흐르는 천호천 물에서 흰뺨검둥오리 가족이 노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평화로운 풍경이다. 용암교를 건너 천호천 제방 반대쪽으로 가서 잠관 출구를 확인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대간선수로 물길이 힘차게 율소리 방향으로 흘러 나간다.

 

 

이곳에서 율소리까지는 대간선수로 제방을 걷기 어려웠다. 할 수 없이 도로를 따라 걸었다. 잠시 대간선수로와 멀어진 사이 답사 일행 중 한 사람인 농업 전문가의 강의를 들었다. 도로와 대간선수로 사이에 있는 논은 우렁이를 사용한 친환경 농법으로 벼를 키우고 있다. 우렁이는 물 위로 올라온 풀은 먹지 않기 때문에 논에 제초제를 뿌리지 않아도 논을 깔끔하게 관리할 수 있는데 올해는 폭염으로 우렁이들이 견디지 못하고 폐사하면서 논에는 잡초들이 불쑥불쑥 올라와 있다. 도로 동쪽 편으로는 옥수수밭이 길을 따라 나란히 있다. 옥수수대에는 달랑 1개 옥수수만 달려 있다. 옥수수를 조밀하게 심어 영양분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서 심고, 거름을 충분히 주면 옥수수가 2~3개 정도 달린단다.

 

 

농사 관련 공부를 하며 걷다 보니 율소리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 대간선수로 옆으로 넓은 주차장도 있고, 카페도 보인다. 대간선수로 전 구간에서 수로 옆에 있는 유일한 카페라고 귀띔해 준다. 예전에는 마을 앞을 지나는 대간선수로 물길은 여름철 물놀이 장소였다. 여름철 내내 아이들은 이곳에서 물장구를 치며 더위를 식혔다. 물론 지금은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은 이야기가 되었다. 물길은 마을 중간쯤에 있는 율소제수문(制水門)에서 잠시 주춤한다. 제수문에서는 물을 가두어 분수문(分水門)을 통해 작은 수로에 물을 나누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물흐름을 조절하기도 한다.

 

대간선수로를 정비하고 초기에는 완주지역 농민들은 이 물을 지금같이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대간선수로를 관리하는 수리조합이 관할하는 익산, 군산 지역 농지에만 물을 공급했기 때문이다. 1940년 수리조합이 통합되면서 그제서야 완주지역도 대간선수로 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 현 제수문은 1987년 대간선수로 정비 사업을 진행하면서 만들었다. 그때 수로를 정비하면서 제방 하단부를 시멘트 옹벽으로 처리했다. 이전 자연 하천 수로에는 수초가 있어 물고기가 많았는데 수로 정비 공사 이후 마을 주민들은 물고기 잡는 재미를 잃어버렸다.

 

 

대간선수로는 율소리를 지나 은하리 앞을 지난다. 잔잔하게 흐르던 물길이 거친 물소리를 토해낸다. 낙차공에서 들리는 물소리이다. 완주 구간은 물길의 높이 차이가 있어 중간중간 제수문과 이런 낙차공을 설치해서 조정해 주고 있다. 낙차공을 지나자 나뭇가지 일부를 물에 담그고 있는 버드나무가 보인다. 마치 더위를 식히려고 물놀이를 나온 듯한 분위기이다. 반영 효과도 있어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물길은 봉동읍에서 익산IC로 이어지는 큰 도로와 마주친다. 물길은 도로 아래로 통과해서 삼례 방향으로 향한다. 도로 양쪽으로는 배롱나무꽃이 활짝 피어 꽃길을 이루었다. 아름다운 꽃길이 되었다. 여름 내내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아름다움을 선사할 것이다.

 

도로를 건너온 물길은 다시 장기제수문에서 잠시 머무른다. 농사철에는 제수문에서 물 흐름 속도를 늦추고 제방 좌우측으로 물을 공급해 주려는 조치이다. 배수문을 통해서 흘러나가지 못한 물은 보를 넘어 자연스럽게 아래로 흘러 물길에 합류한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와 물 위에 비친 하늘 반영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이 되었다. 장기배수문을 지난 물길은 봉동읍 서두리 앞을 지난다. 마을 앞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에 모정이 있다. 옛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더위에 지친 답사팀 일행 모두는 사막을 걷다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잠시 이곳에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다행히 마을 주민들이 모정을 이용하지 않는 시간이라 편하게 쉬면서 땀을 식힐 수 있었다.

 

 

꿀 같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물길은 서쪽을 향해 유유히 흘러간다. 서두르는 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는다.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그렇게 흐른다. 물길은 봉동읍 구미리 구호서원 앞을 지난다. 구미리는 반남 박씨가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으로 구호서원은 박씨 집안에서 세운 서원이다. 서원 앞에는 수령이 약 4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은행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말해준다. 구미리 앞 대간선수로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

 

1980년대 수로 개선 공사를 진행하면서 물길에 쌓여 있던 자갈이 사라져 마을 주민들 사이에 소동이 발생되었다. 주민들은 마을 형상이 거북이 꼬리에 해당되고 하천 바닥에 있던 둥글둥글한 자갈은 거북이 알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천 바닥에 거북이 알이 많이 있어야 마을이 번창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공사 후에 거북이 알이 보이지 않으니까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다행히 공사를 주관했던 기관에서 자갈을 외부로 반출한 것이 아니고 하천 바닥에 묻혀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나서야 주민이 이해하게 되었다.

 

 

구미리를 지나면 송천동 방향에서 완주산업단지로 향하는 도로와 만난다. 물길은 청완교 아래로 흘러간다. 대간선수로 중간중간에 수문이 있는데 이곳에도 또 하나의 수문이 있다. 수계제수문이다. 제수문 옆쪽으로는 완주산업단지가 보인다. 도로를 지나온 물길은 삼봉지구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서 한국농어촌공사 신정양수장 앞에서 석탑천과 합수된다. 석탑천은 봉동읍 제내리 탑제에서 흘러온 물길이다. 일반적으로 고산면 어우리에서 이곳 석탑천 합수부까지 대간선수로는 자연하천을 활용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도 지도상에는 우선천으로 표기하고 있다.

 

석탑천과 합수되면서 물길은 더 넓어졌다. 물길은 봉동읍과 삼례읍을 잇는 삼봉로 아래로 흘러 삼례 방향으로 흘러간다. 삼봉로 별산교 직전에 보면 대간선수로 위를 가로질러 놓인 시멘트로 만든 수로가 있다. 이를 통교라고 부른다. 수로를 통해서 물을 공급하기 어려운 지역은 통교를 설치해서 이용했다. 별산교를 지나 신금제수문으로 향하는 물길이 넓어졌다. 고질적인 침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7년부터 1996년까지 10년간에 걸친 수로 개선 공사를 진행한 결과이다. 신금제수문을 지난 물길은 삼례읍 마전 방향으로 흘러 찰방교를 지나면서 두 개 물길로 나누어진다. 이번 답사는 찰방교까지 진행하고 마쳤다. 다음 답사는 찰방교에서 시작해서 익산 만경강문화관까지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