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 무거운 것을 털어 내야 한다는 것 /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지 않고 / 가벼이 가진 것을 내어 주는 것 /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 단단한 뿌리와 기둥만으로 / 겨울을 준비하는 것. 채유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중에서 겨울바람이 매섭다. 여름 태풍처럼 눈보라를 몰아 때린다. 남자는 바람에 쓰러진 쓰레기 봉지를 일으켜 세우며 마당 구석에 선 감나무를 쳐다본다. 하나 남은 까치밥마저 없어져 버린 감나무 가지에서 칼바람 소리가 난다. 이제 나도 다 벗고 저렇게 서야 하는가? 내 나이가 벌써? 남자가 쓸쓸해진다. 작은 창에 기댄 노을이 남기고 간 짙은 고독이 벌써 내 곁에 다가와 더없이 외로워져 남자는 얼른 나이 먹고 어른이 되고 싶었던 시절을 떠올린다. 별 맛도 없는 떡국을 후루룩 후루룩 마시면서 나이를 키웠던 시절이 있었지. 남자가 웃는다. 그렇다고 옛날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삶도, 뭐,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찮은 것 같다. 남자가 부르르 떨면서 집 안으로 들어간다. 보이는 건 어둠이 깔린 작은 하늘뿐이지만 내게 열려 있는 것 같아 다시 날 꿈꾸게 해 다들 그렇듯이, 남자는 나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 당신의 쉴 곳 없네 /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 당신의 편할 곳 없네 ‘가시나무’는 하덕규가 가사와 곡을 쓰고 ‘시인과 촌장’ 두 사람이 처음 불렀던 노래다. 많은 가수들이 제각각 다른 해석을 담아 노래했는데, 시인과 촌장의 앨범을 들을 때에는 스산한 바람 소리가 내 속까지 후벼파는 기분이었고, 자우림의 드라마틱한 구성과 호소력 짙은 가창력은 압권이었으며, 조성모의 감성는 클래식하게 아름답고 진지했다. 그러나 무명가수 윤설하가 부를 때처럼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왜 그랬는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 어린 새들도 /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 슬픈 노래를 /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우리 안에는 참 많은 ‘자아’가 있다.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고 싶은 ‘나’도 있고, 다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나’도 있다. 학교에 가야한다는 ‘나’도 있고, 여자 친구랑 땡땡이치고 싶은 ‘나’도 있다. 담배를 끊겠다고 맹세를 하는 ‘나’도 있고, 남들 눈치 보며 사는 내가 불쌍한 ‘나’도 있다. 이들은 모두 조금씩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