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사전 9
덩치 -몸의 부피 고백하건대 10여 년 동안 앞만 보고 살았다. 모두 그 녀석 탓이다. 그 녀석과 헤어지고 나는 한참 동안 우울했다. 앞만 보고 살았는데 갑자기 앞이 사라졌다는 상실감. 내 곁에서 사라진 녀석 때문에 나는 투덜거림을 앞세웠고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았다. 다시 녀석과 비슷한 녀석을 만나야겠다는 욕심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렸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녀석과 비슷한 녀석에 대해 수소문했다. 그사이 봄이 왔다. 앞이 사라졌다는 상실이었을까? 아니면 녀석과 헤어진 불편함이었을까? 나는 봄을 외면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앞을 잃었다고 믿었고 여전히 앞만 보았다. 나는 영악하므로 잃은 것을 잃지 않았다고 최면을 걸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그를 만났다. 녀석과는 다른 덩치가 큰. 전주 근교에 위치한 완주군 삼례읍이었다. 모 대학 한국어교사로 있던 나는 일을 마치고 일찍 버스에 올랐다. 삼례발 익산행 좌석버스 111번. 자리에 앉아 시집을 꺼내 읽다가 무심결에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바라본 것이 아니라 훔쳐보았다. 파랗게 올라오는 보릿대의 싱그러움을, 보릿대 잎사귀 사이사이 뛰노는 봄의 기운을. 그러다 덜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