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폭하다: 몹시 상하거나 불끈불끈 화가 치미는 듯하다. 전북 지방의 방언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나는 서울로 취직했다. 지방대 졸업예정자가 서울로 취직했으니 누구는 거창한 미래를 그렸고 IMF 때였으므로 누구는 지독한 질투를 하기도 했다. 거창한 곳도 아니었다. 작은 잡지사 취재기자였을 뿐. 물론 수습 3개월이란 꼬리표가 붙어있었다. 서울살이라고는 1년 남짓 재수 시절과 방학 때 아주 가아끔 상경했던 것이 전부였으니 나는 여전히 촌놈이었다. “허허, 사투리가 구수하고만”, ‘누가? 내가?’ 가끔 들려오는 말이었지만 나는 애써 내가 아니라고 최면 아닌 최면을 걸었다. 나는 표준어만 구사하는 거라고. 입사 후 첫 회식, 왁자지껄한 연탄구이집에서 껍데기와 갈매기살이 먹음직스럽게 불판을 오르내렸고 연거푸 따라주는 술잔을 넙죽넙죽 잘 받아넘겼다. 주위 소음 때문에 목소리는 자꾸 올라가고 나는 편집장과 선배 기자들에게 이쁨 아닌 이쁨을 떨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툭툭 두드리는 것 아닌가. 뒤돌아보자 초면인 사내가, 나보다 5~6살 위쯤 보이는 사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고향이 어디세요?”, “저요? 고향은 군산인데 자란 곳은 익산이에요.” 대답을 듣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 무거운 것을 털어 내야 한다는 것 /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지 않고 / 가벼이 가진 것을 내어 주는 것 /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 단단한 뿌리와 기둥만으로 / 겨울을 준비하는 것. 채유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중에서 겨울바람이 매섭다. 여름 태풍처럼 눈보라를 몰아 때린다. 남자는 바람에 쓰러진 쓰레기 봉지를 일으켜 세우며 마당 구석에 선 감나무를 쳐다본다. 하나 남은 까치밥마저 없어져 버린 감나무 가지에서 칼바람 소리가 난다. 이제 나도 다 벗고 저렇게 서야 하는가? 내 나이가 벌써? 남자가 쓸쓸해진다. 작은 창에 기댄 노을이 남기고 간 짙은 고독이 벌써 내 곁에 다가와 더없이 외로워져 남자는 얼른 나이 먹고 어른이 되고 싶었던 시절을 떠올린다. 별 맛도 없는 떡국을 후루룩 후루룩 마시면서 나이를 키웠던 시절이 있었지. 남자가 웃는다. 그렇다고 옛날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삶도, 뭐,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찮은 것 같다. 남자가 부르르 떨면서 집 안으로 들어간다. 보이는 건 어둠이 깔린 작은 하늘뿐이지만 내게 열려 있는 것 같아 다시 날 꿈꾸게 해 다들 그렇듯이, 남자는 나이
나무와 마을 이야기 당산나무라고 하면은 보통 하나의 나무를 가리키지요. 삼례 원후정마을에는 하나의 당산나무가 아니라 여러 나무가 모여 있는 당산나무숲이 있습니다. 우석대학교 왼편으로 후정교회 근처입니다. 당산나무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부터 너무나 나약한 인간의 삶을 우리가 어찌할 수 없으니까 새해가 되면 남보다 먼저 당산나무를 찾아가 소원을 빌었습니다. 당산나무가 아니라면 마을 앞에 있는 나무나 뒤꼍에 있는 나무라도 붙잡고 매달리는 것이지요. 누구에게 말로 할 수 없고 냉가슴을 안고 살아온 우리 할머니로부터 어머니들의 애환을 알아 달라고 간절하게 비는 마음이 담긴 당산나무이기에 당산나무 앞으로는 상여도 지나가면 안 되었습니다. 원후정마을 당산나무 숲 (사진=임옥균) 한 번은 당산나무가 있는 땅이 넓으니 외지인이 매입하려고 하는 어이없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 누가 먼저 말할 것도 없이 너도나도 뜻이 합하여 우리의 당산나무를 지켜냈습니다. 당산나무를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각 지역에 산재해 있는 선조들의 생활 및 신앙 공간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산나무는 그 지역의 여러 신들과 더불어 지금까지 지내온 것입니다. 2021년 새해를
우리가 완주군에 내는 세금은 어떻게 쓰일까?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육활동, 독서동아리 지원 같은 군에서 하는 모든 일은 세금으로 만들어진 예산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갑자기 교육 예산이 삭감되고, 군민의 생활과 직접 관련이 없는 곳에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면? 모르면 몰랐지 알고 나서는 가만히 있기 힘들다. <완주군의회모니터링네트워크 봄봄>(이하 <봄봄>)은 완주군에서 군민이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모니터링하고 감시하는 순수 시민단체이다. 기자는 <봄봄>의 이현숙(회사원) 대표와 신명진(농업) 운영팀장을 만나보았다. ▲완주군의회모니터링네트워크 이현숙 대표와 신명진 운영팀장(왼쪽부터) ▲2020년 11월 행정사무감사 때 방청 금지에 항의하는 피켓시위 언제부터 활동하셨나요? 작년 행정사무감사 예산심사할 때 방청 모니터링부터 시작했어요. 올해는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서 회원(현재 회원 20명) 모집하고 있어요. 군민들이 군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살펴보는 것 없이는 군정이 난맥상이 있을 수 있지요. 번거롭고 힘든 일상 때문에 못 하는데, 이런 일들을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봐요. 완주군의 8천억 예산이 제대로 쓰여
일제강점기 삼례보 취입구 통수식 현재의 삼례보 조선을 일본의 쌀 공급 기지로 만들다 조선 총독부는 1920년부터 경지 정리, 수리 시설 확충 등을 통하여 미곡 생산량을 증대시키려는 산미 증식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는 토지 조사 사업이 완료되어 내적 조건이 구비된 상황에서, 조선을 일본의 식량 공급 기지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1910년대 말 일본은 중화학 공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쌀 생산이 정체되었고 1918년에는 ‘쌀 소동’까지 발생하는 지경에 이르자, 일본 정부는 식민지 중에서도 특히 조선에서의 미곡 증산을 통해 일본 국내의 쌀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호남평야에 축조한 수리시설 중의 하나인 완주 삼례보 한반도 최고의 곡창 지대인 전북 호남 평야에서도 다양한 수리시설들이 축조되었다. 특히 익옥 수리 조합은 거대한 대아 저수지를 축조하였고, 그 준공식에는 총독부 당국자들까지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 밖에도 완주에는 고산의 어우보, 삼례의 삼례보 등 농업 기반 시설이 대거 확충되었다. ※이 내용은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 자료에서 인용하였습니다. 변두리 기자
▲삼례성당(ⓒ송지호) 37.8×45.5㎝ acrylic on 장지 2020 한적한 시골 마을길에 만난 아담한 공간. 소소하지만 고딕양식의 전형을 볼 수 있는 공간. 가을의 문턱을 지나 겨울로 접어들었지만 차가움보다는 따스함이 느껴지는 공간. 잠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쉼터 같은 공간. 삼례예술촌 마실길에서 만난 보물 같은 공간 삼례성당이 가슴에 스며든다. -송지호 작업노트-
송하진 도지사가 전주시장이던 2013년 전주와 완주의 행정통합을 시도했으나 완주군민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런데 송하진 도지사가 최근 내년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전주완주 통합 카드를 다시 꺼냈다. 마치 전주완주가 통합이 되지 않아 전북 인구가 줄고 낙후 일로를 걷고 있다는 투다. 참여정부(노무현 대통령)시절 지역균형발전을 선언하고 국가기관과 공기업을 지역으로 이전하여 혁신도시 건설에 나섰으나 그 효과는 아직 미미하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후퇴하면서 수도권 인구집중은 더욱 심해져 국토의 10% 남짓 면적에 국민의 절반이 넘는 인구가 북적이며 살고 있다. 반면 전북 등 비수도권은 청년층 인구의 대도시 이주로 인구가 갈수록 줄고 있다. 여기에 농업소득의 악화 등으로 지역 경제 기반도 축소되고 있다. 이와 같이 전북지역 낙후 원인은 청년층의 일자리 부족과 교육, 의료, 문화를 비롯한 정주여건의 열악 등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이 얽혀 있다. 그럼에도 그 원인을 대도시의 부재 그리고 해결책을 전주완주 통합에서 찾는 것은 짧은 생각이라 하겠다. 만약 전주완주가 통합된다 하더라도 그 인구는 75만 명 정도로 광역시 기준에 미치지
생태와 건강 삼례에서 살면서 자랑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만경강이다. 호남평야의 ‘생명의 젖줄’이라는 경이로운 수식어가 참 따뜻하다. 우리 몸에도 만경강 같이 흐르는 것들이 있다. 태어나서 살아온 날 동안 끊임없이 혈관을 따라 피도 흐르고, 입에서 항문까지 우리가 먹은 음식을 따라가다보면 소화액도 흐른다. 겉껍질인 피부에도 물과 기름인 땀과 피지가 흘러 촉촉하고 윤기나게 보호하고 있다. 물론 콧물, 눈물, 소변도 다 흐르는 것들이다. 다 아는 것들인가? 그럼 혈관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볼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세포에 혈관이 다다르는데 이 가느다란 혈관을 모세혈관이라 부른다. 이곳에 이른 혈액은 혈관을 벗어나 세포사이로 흘러들어가고 종국에 세포에 필요한 물질을 넣어주고 세포가 만든 찌꺼기들을 받아 돌아온다. 이 미세한 흐름들은 무심히 일어나는 게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일 초도 게으름 없이 조절된다. 혈관에 흐르는 혈액, 세포 사이의 세포간질액, 림프관을 흐르는 림프액, 세포 안에 담긴 세포액 모두를 일컬어 체액이라 한다. 우리 몸 곳곳에는 체액의 양과 질을 감지하는 수용체가 있고, 여기서 감지된 정보를 뇌 깊숙한 시상하부 조절
“완주 문화도시 지정, 기적을 쏘았다…” 문체부에서는 지난 1월 7일 <지역문화진흥법>에 따른 제2차 문화도시로 완주군과 경남 김해시, 인천 부평구, 강원 춘천시와 강릉시 등 5곳을 선정했다. 이번에 완주군이 문화도시로 지정된 것은 지자체 가운데 군 단위에서는 최초이고, 호남에서는 유일하다. 박성일 군수는 “완주군은 지역문화 시설이나 프로그램 구축을 평가하는 문체부의 지역문화지표 평가에서 2015년 군 지역 5위, 2017년 군 지역 3위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왔다. 이번 문화도시 선정은 지역문화 활동가와 행정, 의회 등이 합심해 이룬 성과를 인정받은 것이어서 더욱 특별하다.”고 밝혔다. ▲구 삼례역 자리에 들어선 완주도시문화지원센터 (사진=변두리 기자) 문화도시 구축에 총 200억 투입 문화도시에 지정되면 국비 100억 원을 5년에 걸쳐 지원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자부담 100억 원을 더해 총 200억 원이 문화도시 구축에 투입된다. 군은 단순히 문화 영역에 지원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로컬푸드와 사회적 경제,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한 문화도시 사업으로 파급효과 극대화할 계획이다. 군은 이를 위해 로컬푸드·소셜굿즈 사업의 경제적 영역과 문
완주 이서면 빙등제와 함께 삼례읍 월산제가 생태보전공간으로 탈바꿈된다.완주군은 2021년도 생태계보전협력금 사업에 이서면 빙등제와 삼례읍 월산제가 선정돼 국비 9억 1천만 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토사가 쌓여 생태 기능이 상실되어 가던 이서 빙등제는 현재 포크레인 두 대가 투입되어 한창 준설작업을 벌이고 있다. 삼례의 월산제 역시 오랜 기간 뻘이 마른 땅으로 변하는 육화 현상으로 저수지의 기능이 상실되어 있어 식생정비를 통한 개방수면확보, 수질개선 등 생태적 기능을 향상시킬 방침이다. ▲삼례 월산제 군은 월산제에 생물 서식처를 조성하고 생태교육 및 체험공간으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그렇게 되면 신금리는 동학혁명기념공원, 삼례도서관, 신금공원과 함께 생태 공간인 월산제까지 갖추게 되어 역사와 생태를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될 전망이다. ※월산제: 심금리 월산마을에 있는 저수지이다. 월산마을은 달 모양을 닮은 월산 아래 있는 동네를 뜻한다. 변두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