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사장은 조용히 6호 닭 한 마리를 꺼낸다. 오늘은 카레 치킨이다. 150도로 예열된 기름에 넣고 중불로 15분. 침착하게 여유 있게, 시간을 최대한 소비해야 한다. 180도 기름에 센 불로 잠깐. 기름을 뺀 뒤 카레 가루를 뿌린다. 오늘 처음 튀긴 닭. 생맥주도 한 잔 따른다. 오래 돼서 그런지 호프 향이 삭았다. 맛이 별로다. 한숨이 나온다. 김 사장이 닭을 튀겨서 생맥주를 혼자 마시는 것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아니다. 그건 핑계다. 실은, 오지 않는 손님을 마냥 기다리는 자신이 불쌍해서 그러는 것뿐이다. 외롭다. 이 작은 소읍에 치킨집이 너무 많다 싶었어도 김 사장은 자신 있었다. 배달도 제법 있었고, 무엇보다도 단골 주객들이 테이블과 영업시간을 채워 주었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 유명 메이커 치킨집이 들어오고부터는 배달 주문이 뚝 끊겼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주객들의 발길도 끊어졌다. 전단지도 돌리고 스티커도 붙이고 다녀봤지만 떠나간 첫사랑처럼 손님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치킨집 사장이 치킨 튀기는 법을 잊어버려서야 되나. 그래도 외롭다 젠장. 그대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 공연히 오지 않는 전
그해 겨울은 따뜻했다. 그녀와 나는 서로를 탐닉했고 우리는 서로가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오직 그녀의 숨소리에 온 신경을 쏟아부었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살았다. 그땐 그랬다. 그러나 그쪽 집에서는 무엇 하나 빠질 것 없는 딸이 직장도 없는 가난한 놈과 붙어 다니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만나면서도 선을 보아야 했다. 새봄이 되면서 추위가 몰려왔다.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녀 집 주변을 배회하면서 그녀 얼굴 한 번 보기를 소망했다. 꿈일 뿐이었다. 나는 좌절했다. 겨우 취직을 해서 적응하기에 바빠야 할 신참은 날마다 술 냄새를 풍기며 출근했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 새와 작별하듯 /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 눈물 나누나 (류근 시, 김광석 곡) 하필 농약집 딸이었던 그녀는 가끔 이상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고 했었다. 그냥 얼굴을 보면 안다고 했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에게서 농약을 사고 싶었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수소문하여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녀는 서울로 시집을 갔다고, 이제 그만 마음을 추스르라고. 아버지는 어서 출근이나 하라고 내 구두를 닦아 주면서 세월이 약이라고 중얼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 무거운 것을 털어 내야 한다는 것 /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지 않고 / 가벼이 가진 것을 내어 주는 것 /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 단단한 뿌리와 기둥만으로 / 겨울을 준비하는 것. 채유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중에서 겨울바람이 매섭다. 여름 태풍처럼 눈보라를 몰아 때린다. 남자는 바람에 쓰러진 쓰레기 봉지를 일으켜 세우며 마당 구석에 선 감나무를 쳐다본다. 하나 남은 까치밥마저 없어져 버린 감나무 가지에서 칼바람 소리가 난다. 이제 나도 다 벗고 저렇게 서야 하는가? 내 나이가 벌써? 남자가 쓸쓸해진다. 작은 창에 기댄 노을이 남기고 간 짙은 고독이 벌써 내 곁에 다가와 더없이 외로워져 남자는 얼른 나이 먹고 어른이 되고 싶었던 시절을 떠올린다. 별 맛도 없는 떡국을 후루룩 후루룩 마시면서 나이를 키웠던 시절이 있었지. 남자가 웃는다. 그렇다고 옛날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삶도, 뭐,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찮은 것 같다. 남자가 부르르 떨면서 집 안으로 들어간다. 보이는 건 어둠이 깔린 작은 하늘뿐이지만 내게 열려 있는 것 같아 다시 날 꿈꾸게 해 다들 그렇듯이, 남자는 나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 당신의 쉴 곳 없네 /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 당신의 편할 곳 없네 ‘가시나무’는 하덕규가 가사와 곡을 쓰고 ‘시인과 촌장’ 두 사람이 처음 불렀던 노래다. 많은 가수들이 제각각 다른 해석을 담아 노래했는데, 시인과 촌장의 앨범을 들을 때에는 스산한 바람 소리가 내 속까지 후벼파는 기분이었고, 자우림의 드라마틱한 구성과 호소력 짙은 가창력은 압권이었으며, 조성모의 감성는 클래식하게 아름답고 진지했다. 그러나 무명가수 윤설하가 부를 때처럼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왜 그랬는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 어린 새들도 /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 슬픈 노래를 /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우리 안에는 참 많은 ‘자아’가 있다.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고 싶은 ‘나’도 있고, 다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나’도 있다. 학교에 가야한다는 ‘나’도 있고, 여자 친구랑 땡땡이치고 싶은 ‘나’도 있다. 담배를 끊겠다고 맹세를 하는 ‘나’도 있고, 남들 눈치 보며 사는 내가 불쌍한 ‘나’도 있다. 이들은 모두 조금씩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