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은 따뜻했다. 그녀와 나는 서로를 탐닉했고 우리는 서로가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오직 그녀의 숨소리에 온 신경을 쏟아부었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살았다. 그땐 그랬다. 그러나 그쪽 집에서는 무엇 하나 빠질 것 없는 딸이 직장도 없는 가난한 놈과 붙어 다니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만나면서도 선을 보아야 했다. 새봄이 되면서 추위가 몰려왔다.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녀 집 주변을 배회하면서 그녀 얼굴 한 번 보기를 소망했다. 꿈일 뿐이었다. 나는 좌절했다. 겨우 취직을 해서 적응하기에 바빠야 할 신참은 날마다 술 냄새를 풍기며 출근했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 새와 작별하듯 /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 눈물 나누나 (류근 시, 김광석 곡) 하필 농약집 딸이었던 그녀는 가끔 이상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고 했었다. 그냥 얼굴을 보면 안다고 했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에게서 농약을 사고 싶었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수소문하여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녀는 서울로 시집을 갔다고, 이제 그만 마음을 추스르라고. 아버지는 어서 출근이나 하라고 내 구두를 닦아 주면서 세월이 약이라고 중얼
폭폭하다: 몹시 상하거나 불끈불끈 화가 치미는 듯하다. 전북 지방의 방언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나는 서울로 취직했다. 지방대 졸업예정자가 서울로 취직했으니 누구는 거창한 미래를 그렸고 IMF 때였으므로 누구는 지독한 질투를 하기도 했다. 거창한 곳도 아니었다. 작은 잡지사 취재기자였을 뿐. 물론 수습 3개월이란 꼬리표가 붙어있었다. 서울살이라고는 1년 남짓 재수 시절과 방학 때 아주 가아끔 상경했던 것이 전부였으니 나는 여전히 촌놈이었다. “허허, 사투리가 구수하고만”, ‘누가? 내가?’ 가끔 들려오는 말이었지만 나는 애써 내가 아니라고 최면 아닌 최면을 걸었다. 나는 표준어만 구사하는 거라고. 입사 후 첫 회식, 왁자지껄한 연탄구이집에서 껍데기와 갈매기살이 먹음직스럽게 불판을 오르내렸고 연거푸 따라주는 술잔을 넙죽넙죽 잘 받아넘겼다. 주위 소음 때문에 목소리는 자꾸 올라가고 나는 편집장과 선배 기자들에게 이쁨 아닌 이쁨을 떨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툭툭 두드리는 것 아닌가. 뒤돌아보자 초면인 사내가, 나보다 5~6살 위쯤 보이는 사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고향이 어디세요?”, “저요? 고향은 군산인데 자란 곳은 익산이에요.” 대답을 듣
“수면제 좀 주세요. 요즘 갱년기인지 너무 잠들기 힘드네요.” “수면제 많이 먹으면 안 좋죠?” 요즘 이런 질문을 물어오시는 분들이 부쩍 많아졌다. 나도 답이 궁색하다. ‘저도 어젯밤에 잠깐 잠들었다 새벽에 깨서 계속 망상만 하다 출근했어요.’ 속 이야기를 감추고 “잠들기가 힘드세요? 잠이 자주 깨세요? 혹시 최근에 드시기 시작한 약이 있으세요? 수면제 드신 지 오래 되셨어요?” 질문 공세를 해댄다. 잠을 푹 자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꿀잠을 자고 싶다. 신생아처럼 밤낮을 모르고 자고 싶다. 정말? 출근했다가 쏟아지는 잠을 못 이겨 누울 자리를 찾는다면? 태어나서 뇌가 여물어가면 아기는 낮에 자는 시간이 줄고 밤에 자는 하루 사이클을 익히게 된다. 노인이 되어 뇌가 퇴화를 거듭해 치매가 찾아오면 낮과 밤을 구분하기 힘들어 밤에도 불쑥 집을 나서게 된다. 그렇다면 뇌에 수면의 비밀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저 높고도 귀하신 뇌에는 수면, 식욕 등 기본 욕구를 조절하는 시상하부라는 중추가 있다. 노화는 피부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노안이 오고, 청력이 약해지고, 입맛이 변하듯 신경에도 노화가 온다. 시상하부에 신경의 퇴화가 와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 무거운 것을 털어 내야 한다는 것 /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지 않고 / 가벼이 가진 것을 내어 주는 것 /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 단단한 뿌리와 기둥만으로 / 겨울을 준비하는 것. 채유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중에서 겨울바람이 매섭다. 여름 태풍처럼 눈보라를 몰아 때린다. 남자는 바람에 쓰러진 쓰레기 봉지를 일으켜 세우며 마당 구석에 선 감나무를 쳐다본다. 하나 남은 까치밥마저 없어져 버린 감나무 가지에서 칼바람 소리가 난다. 이제 나도 다 벗고 저렇게 서야 하는가? 내 나이가 벌써? 남자가 쓸쓸해진다. 작은 창에 기댄 노을이 남기고 간 짙은 고독이 벌써 내 곁에 다가와 더없이 외로워져 남자는 얼른 나이 먹고 어른이 되고 싶었던 시절을 떠올린다. 별 맛도 없는 떡국을 후루룩 후루룩 마시면서 나이를 키웠던 시절이 있었지. 남자가 웃는다. 그렇다고 옛날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삶도, 뭐,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찮은 것 같다. 남자가 부르르 떨면서 집 안으로 들어간다. 보이는 건 어둠이 깔린 작은 하늘뿐이지만 내게 열려 있는 것 같아 다시 날 꿈꾸게 해 다들 그렇듯이, 남자는 나이
대아수목원 가는 길 완주 대아수목원을 찾아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다. 예쁜 꽃을 보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아수목원으로 가기 위해 지나는 길이 너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안남마을 앞을 지날 때 만나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줄지어 있는 풍경도 좋고, 대아저수지를 끼고 달리는 호반길의 고즈넉함도 훌륭하다. 이런 아름다운 길이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대아수목원을 가게 된다. 봄꽃과 눈맟춤하기 대아수목원에 들어서면 언제나 습관처럼 분재원을 먼저 돌아본다. 잘 가꾼 다양한 분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또 봄이 오기 전에 미리 봄꽃과 눈 맞춤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분재들 사이로 매화가 하얀 꽃잎을 드러낸다. 아직 바깥 날씨는 영하를 오르내리지만 기대했던 대로 매화가 꽃을 피웠다. 매화 향기를 탐하고 위쪽에 있는 열대식물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열대식물원 현관에 들어서자 꽃내음이 확 전해온다. 열대식물인 부겐베리아를 비롯해서 화사한 빛깔이 일품인 철쭉, 시클라멘 등등. 여러 꽃이 함께 피어 있어 현관이 환하다. 열대식물원 안에는 식물을 특성별로 분류해서 전시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사계절 언제 찾아도 꽃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봄맞이 [명사] 1. 봄을 맞는 일. 또는 봄을 맞아서 베푸는 놀이.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개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빠나나 빠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대여섯 살의 나는 어디서 배웠는지 원숭이 똥꾸멍 노래를 잘 따라 불렀었지. 똥꾸멍을 똥꾸녁이라 했던가? 아니면 빨개를 빨가라고 했었던가? 그러고 보면 기억은 늘 쉽게 변질된다. 옛 기억들이 내 몸에 맞게 체형을 바꾸거나 답답한 생활 속에서 왜곡되는 일들은 얼마나 많은가. 역사(驛舍)만 남은 춘포역으로 향한다. 봄춘(春)에 개 포(浦), 우리말로 하면 봄개고, 봄나루인 춘포. 봄개, 봄나루 얼마나 예쁜 이름이던가. 지독한 한파에서 벗어나 봄을 맞기에 이만한 지명이 또 있을까? 사랑하는 당신이 있다면 당신을 봄나루라 부르고 싶은. 나를 놓고 떠나는 111번 버스가 날린 먼지가 채 가라앉기도 전 춘포면내를 둘러본다. 60년대 혹은 70년대가 고스란히 앉아있는 듯한 풍광. 웅크린 어깨를 가진 단층 건물들과 낡은 입간판들이 나를 순식간에 아날로그 세상으로 옮겨놓았다. 짧은 여행은 시공간을 넘나든다. 춘포역으로 향하는 골목으로 들어서자 패망한 일본인들이 남겨놓은 듯한 적산가옥들이 눈에 띄었다.
생태와 건강 삼례에서 살면서 자랑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만경강이다. 호남평야의 ‘생명의 젖줄’이라는 경이로운 수식어가 참 따뜻하다. 우리 몸에도 만경강 같이 흐르는 것들이 있다. 태어나서 살아온 날 동안 끊임없이 혈관을 따라 피도 흐르고, 입에서 항문까지 우리가 먹은 음식을 따라가다보면 소화액도 흐른다. 겉껍질인 피부에도 물과 기름인 땀과 피지가 흘러 촉촉하고 윤기나게 보호하고 있다. 물론 콧물, 눈물, 소변도 다 흐르는 것들이다. 다 아는 것들인가? 그럼 혈관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볼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세포에 혈관이 다다르는데 이 가느다란 혈관을 모세혈관이라 부른다. 이곳에 이른 혈액은 혈관을 벗어나 세포사이로 흘러들어가고 종국에 세포에 필요한 물질을 넣어주고 세포가 만든 찌꺼기들을 받아 돌아온다. 이 미세한 흐름들은 무심히 일어나는 게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일 초도 게으름 없이 조절된다. 혈관에 흐르는 혈액, 세포 사이의 세포간질액, 림프관을 흐르는 림프액, 세포 안에 담긴 세포액 모두를 일컬어 체액이라 한다. 우리 몸 곳곳에는 체액의 양과 질을 감지하는 수용체가 있고, 여기서 감지된 정보를 뇌 깊숙한 시상하부 조절
원등사 약사전 멀리 보이는 등불을 보고 지은 절 완주군 소양면에는 송광사, 위봉사와 같은 잘 알려진 절이 있다. 그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가볼 만한 절이 또 있다. 원등사(遠燈寺)이다. 원등사(遠燈寺)는 신라 문성왕 2년(840) 고승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이 세운 천년 고찰이다. 그 후 임진왜란를 거치면서 폐허가 되었다가 진묵대사(1563~1633)에 의해 중창되었다. 중창 당시 일화가 의미 있게 다가온다. 진묵대사가 변산에 있는 월명암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멀리서 등불이 보여 백 리 길을 찾아왔다. 불빛은 원등사 터에 남아 있던 석등에서 나오는 불빛이었다. 진묵대사는 이곳이 성지임을 알고 절을 중창하고 이름을 원등사(遠燈寺)라고 했다. 멀리(遠) 비추는 등불(燈)을 보고 절터를 찾아 지은 절(寺)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원등사는 한국전쟁 때 다시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1985년부터 수련보살에 의해 재건되었다. 숨어 있는 천년 고찰 원등사는 천년 고찰이면서도 송광사나 위봉사만큼 알려지지 않은 것은 절이 청량산(715m, 원등산이라고도 부름) 정상 바로 아래에 있어 접근하기 어려워 그런가 보다. 원등사(遠燈寺)는 소양면 소재지를 빠져나와 전북체육고등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 당신의 쉴 곳 없네 /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 당신의 편할 곳 없네 ‘가시나무’는 하덕규가 가사와 곡을 쓰고 ‘시인과 촌장’ 두 사람이 처음 불렀던 노래다. 많은 가수들이 제각각 다른 해석을 담아 노래했는데, 시인과 촌장의 앨범을 들을 때에는 스산한 바람 소리가 내 속까지 후벼파는 기분이었고, 자우림의 드라마틱한 구성과 호소력 짙은 가창력은 압권이었으며, 조성모의 감성는 클래식하게 아름답고 진지했다. 그러나 무명가수 윤설하가 부를 때처럼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왜 그랬는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 어린 새들도 /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 슬픈 노래를 /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우리 안에는 참 많은 ‘자아’가 있다.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고 싶은 ‘나’도 있고, 다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나’도 있다. 학교에 가야한다는 ‘나’도 있고, 여자 친구랑 땡땡이치고 싶은 ‘나’도 있다. 담배를 끊겠다고 맹세를 하는 ‘나’도 있고, 남들 눈치 보며 사는 내가 불쌍한 ‘나’도 있다. 이들은 모두 조금씩 다
생태와 건강 며칠 전 월요일, 병원마다 환자들이 넘쳤다. 유명 맛집마냥 병원과 약국 앞이 북적인다. 뭐지? 매년 이즈음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올해는 코로나 19 때문에 여느 해보다 훨씬 더 심했다. 독감과 코로나 동시 감염되면 치명적 만약 당신이 작년에 독감을 앓고 다행히 극복하셨다면, 한 해 독감 사망자 수 30만~65만 명(세계보건기구추산)에 속하지 않은 복을 누린 것이다. 코로나 19 사망자 114만 명에 비해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망자 수이다. 독감백신은 코로나를 예방할 수 있을까? 본질적으로 두 질병의 혈통이 다르기 때문에 항체의 종류도 다르다. 즉, 독감백신을 맞는다고 코로나를 예방할 수 없다. 그렇지만 독감과 코로나 19에 동시에 감염되면 사망 확률이 6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것처럼 독감과 코로나 동시 감염은 막아야 한다. 백신 종류에 따라 효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 정부는 독감 예방을 위해 지원 대상을 생후 6개월~만 18세 어린이·청소년, 임신부 및 만 62세 이상 고령자로 확대하고, 기존 3가 백신에서 4가 백신으로 변경했다. 3가 백신은 2종류의 A형 바이러스와 1종류의 B형 바이러스가 포함돼 있다. 4가는 여기에 B